제목이 좀 거창하다. 그래도 한번 정리하고 싶다. 나는 물리학에 대한 지식은 어설프지만 이를 삶에 적용하는 것은 좋아한다. 많이 알고, 깊이 알더라도 이를 삶과 연결을 제대로 못시키면 머리만 복잡하다. 반면에 조금 알더라도 이를 일상에 견주어 해석하면 여러 가지 영감을 받게 된다. <피어라, 남자>에서 이야기한 ‘선택의 빅뱅’도 그렇다.
우선 며칠 전에 상상이랑 했던 일을 하나 소개한다. 밭에 세워둔 비닐집을 옮겨야했다. 먼저 땅에 박힌 하우스 파이프를 뽑아야 한다. 그런데 한 곳에 10여년 그대로 서있어서인지 몇 개는 잘 뽑히지가 않았다. 파이프를 이리저리 돌리고 흔들고 해도 뽑히지가 않는다. 혼자 식식대면서 난감해하는 데 아내가 상상이에게 그런다.
“상상아, 아빠 좀 도와드려!”
나로서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 힘으로 꿈적도 않는 파이프인데 아이 작은 힘이 도움이 될까. 아이가 가까이 오니 힘이나 한번 써보자고 했다. 그런데 쑥 뽑히는 거다. 이럴 수가!
그러면서 떠오른 생각이 임계질량이다. 이는 물리학에서 나온 말로 핵분열 물질이 연쇄 반응을 할 수 있는 최소 질량이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렇다. 수소폭탄이 핵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모두 일곱 개의 원소봉이 필요한데 원자로에 여섯 개의 원소 봉을 집어넣을 때까지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단다. 그러다가 일곱 번째 봉이 들어가면 비로소 핵반응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단다. 내 힘에서 조금만 더 보내주면 파이프가 뽑히고, 이어서 그 다음 일이 순조롭게 착착 진행이 된다. 하여 상상이 힘은 내게 임계질량을 느끼게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상에서 아이가 쏟아내는 에너지는 엄청나다. 아기 때부터 그렇지 않나. 작고 작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이루어진 생명. 작은 아기가 쏟아내는 에너지만 해도 대단하다. 상상이가 어릴 때 기저귀를 내가 손수 빤 적이 있다. 먹일 때와 달리 쏟아지는 빨랫감을 손으로 밀면서 아이란 정말로 엄청난 에너지 덩어리라는 생각을 했었다.
갓난아기가 이 정도니 아이가 자랄수록 뿜어내는 에너지 역시 그만큼 더 커진다. 먹는 것에서 입는 것은 물론 점차 자라면서 배워가는 과정도 다 에너지다. 아이에게 드는 돈 역시 그 많은 에너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아이를 돈으로만 키운다고 생각한다면 그 에너지를 다 측량이나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아이로 인해 뻗어가는 삶을 버겁게 느끼는 사람들은 아예 아이조차 갖지를 않는다.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임계질량을 수동적으로 즉 자기 삶을 포기하는 쪽으로 해석하며, 또 한 부류는 그 반대로 임계질량을 능동적으로 즉 부모 성장 쪽으로 해석한다.
전자는 아이 때문에 뭘 못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려서 여행을 못가며, 아이한테 돈이 많이 들어가기에 삶의 여유가 없다고 한다. 또한 아이 공부에 올인하다보니 정작 부모 자신의 삶은 다 유예를 한다.
후자는 그 반대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에게 집중하면서 그 어떤 인생과정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걸 느끼고 배운다. 이 아이가 부모의 보호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기간을 그리 오래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독립하고자 하는 게 아이들이다. 그러니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 에너지를 받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는 스스로 얻으려고 한다. 그게 생명 본성이다.
나는 여행에 대한 생각이 내면에 잠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일상에서는 까마득히 잊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아이들 덕에 여행을 가끔 한다. 몇 해 전 경주를 다녀온 건 상상이 졸업여행이었으며, 언젠가 또 제주도나 한산도를 다녀온 것 역시 아이들 덕이었다. 이렇게 여행을 갈 때 기본 경비는 각자가 낸다. 아이들이 스스로 다닐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여행을 떠나기에 그게 가능하다.
임계질량 이야기를 마무리 하자면 이렇다. 보통 어른들은 아이에게서 너무 큰 변화를 바란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자라는 작은 움직임에는 둔하다. 그렇게 해서는 평생 긍정적인 임계질량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미 아이한테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헛발만 딛는 셈이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바라볼 때 아이는 엄청난 에너지 덩어리가 된다. 이를 잘 살려갈 때 아이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복 덩어리가 된다.
자녀교육의 임계질량은 바로 아이 눈높이, 아이 힘으로 세상을 보는 데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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