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몇 사람이 우리 집을 다녀갔다. 다들 첫째 아이는 대학을 다니고 둘째는 대학을 준비하는 중년의 사내들. 이래저래 자식 교육에 고민이 많다. 그 놈의 ‘앞날’이 뭔지, 대학을 보내기 전에는 전이라, 보낸 다음에는 앞날의 취직 고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 친구들은 크게 두 부류. 하나는 직장 생활을 성실히 하는 쪽, 또 한 부류는 자기 사업을 하는 쪽이다.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은 일단 여기서 제외하자. 자기 사업을 하는 친구 가운데 한 친구는 대안학교를 세워 운영중이다. 학교를 세웠으니까 나는 이를 사업이라고 본다. 또 한 친구는 대체에너지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둘 다 나름대로 불황 중임에도 그 나름대로 안정적이고 성장세다. 그런대도 자기 자녀 교육으로 들어가면 마음 깊숙이 숨겨진 두려움을 드러낸다.
친구의 딸 하나는 한국교원대학교에 다닌다. 나름 전망도 밝다. 그런데 이 친구 고민은 딸아이가 졸업한 뒤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줄 것인가다. 또 다른 친구 딸 역시 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할 만큼 사회성이 좋고 공부도 그 나름대로 잘 하는 아이인데 앞날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나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랬다. 자식을 자꾸 대학이나 직장에 들여보낼 생각을 하지 말고 부모가 가진 정신적인 자산을 가르쳐주라고. 자신이 사업을 하는 아버지인데 굳이 직장을 권할 이유가 있겠나.
사업가란 자기 일자리를 스스로 창출하고 넓혀가면서 남들 일자리까지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친구는 그 학교에 교사가 열 댓 명에 가깝다. 대체에너지 사업을 하는 친구 역시 직원들이 여럿이다.
이렇게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굉장한 능력이라 본다. 일자리 창출은 학교에서라면 쉽게 배우기 어려운 능력이 아닌가. 사업가에게는 창의성과 소통능력 그리고 세상 흐름에 대한 직관이 중요하다, 그런데 내 학교생활을 돌아보면 성실 근면 인내들이 주된 정신적 가치였다. 이런 가치를 신봉하게끔 만드는 요인은 학교 자체가 그런 측면도 있지만 교사한테도 일정 정도 영향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교사란 아이들을 가르친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직업은 교사이지만 다달이 임금을 받는 월급쟁이다. 월급쟁이가 아이들에게 사업가적인 감각과 능력을 키워주기는 결코 쉽지 않다. 성실히 일하고 다달이 대가를 받는 삶에 익숙한 사람들, 자기 삶만큼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만일 본인이 이런 삶에 익숙하지 않다면 과감하게 교사를 박차고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서 교사를 한다고? 월급 받는 교사가 아니어도 교육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가르칠 아이들은 많고 가르칠 기회 역시 많지 않은가.
자신의 일자리를 스스로 창출하는 교육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첫째는 불황이 깊어질수록 절실하게 필요한 능력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자신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기 어려운 세상으로 간다.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고 또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둘째는 자신의 일자리를 스스로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시작이자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배운다는 건 곧 자기 밥벌이를 스스로 하는 힘을 키운다는 걸 말한다. 이 밥벌이는 단순히 돈벌이만이 아니라 자기실현을 위한 고리이기도 하다.
자라는 아이들은 부단히 어른이 되고자 한다. 어른이 되도록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은 아이들이 누가 있겠나. 돌만 지나도 제 숟가락은 스스로 집어서 먹으려 한다. 흘리고 제대로 못 먹는다는 것은 어른 기준일 뿐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돈에 눈을 뜨면 스스로 돈을 벌고 싶어 한다. 자신이 돈을 벌어보면 버는 만큼 돈을 쓰는 자세가 된다. 허투로 쓰지 않으며, 그렇다고 돈을 절약만 하는 꽁생원이 되지도 않는다. 원하는 만큼 벌고, 벌 능력을 벗어나는 소비에 대해서는 별다른 욕구가 없다. 능력 밖의 욕구는 스스로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은 자기실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실현을 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일 뿐이다. 이렇게 생명교육을 중심에 놓고 자라는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라는 만큼 돈에 대해 독립적인 사고와 자세를 배운다.
누구나 자기 한 몸 돌보는 데는 그리 많은 돈이 필요치 않다. ‘제 밥그릇은 타고 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많은 돈을 벌어서 많은 소비를 한다는 것은 자칫 자신을 망치고 더 나아가 세상의 에너지를 과소비하게 만든다.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란 어른이 된 다음에 찾아지는 게 아니다. 자라는 순간마다 거기에 맞는 일과 일자리가 있는 게 바로 삶이다, 둘레에 널려 있는 무수히 많은 일 가운데 자신이 몰입해서 하고 싶은 일, 그게 바로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가 된다.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걸 걸기보다 자신을 살리고 돌보는 생명교육이 절실한 요즘이다.
'살아가는 이야기 > 아이들은 자연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맹을 어찌할 것인가? (0) | 2009.05.11 |
---|---|
<아이들은 자연이다>에 대한 이러저러한 서평들 (0) | 2009.05.04 |
자녀교육과 임계질량(臨界質量) (0) | 2009.03.29 |
아이들과 함께 이글루 만들기 (0) | 2009.01.29 |
아주 특별한 가족신문, <놏> (0) | 2009.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