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왔다. 집 둘레에서 눈썰매를 타던 상상이가 사라졌다. 알고 보니 이웃 늘이네 갔단다. 늘이는 일곱 살, 늘이 오빠 별이는 아홉 살이다. 늘이네를 가보니 마당에서 늘이 아버지는 아이들과 이글루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 상상이도 끼였다.
점차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나름대로 분업체계다. 별이가 눈 벽돌을 만들고, 상상이가 눈 벽돌을 나르고, 늘이 아버지가 마당에서 벽돌을 쌓는다.. 하늘이는 오빠들과 함께 벽돌 만드는 것도 하다가 눈과 물을 바가지에 담아 제 아버지에게 갖다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연신 자랑스럽게 외친다.
“아빠, 여기 눈!”
눈이 많이 왔지만 날이 따뜻해서 눈이 절대 부족하다. 눈 벽돌을 만드는 아이들은 마당 눈이 부족하니 점차 눈을 찾아 멀리 간다. 집 둘레 텃밭까지 진출하고, 나중에는 무덤가 눈까지 필요했다. 재미있으면서 힘도 많이 든다. 상상이는 그 다음날 늦잠을 잘 정도였다.
눈 벽돌을 만드는 요령은 에스키모들과 달리 여기 방식이다. 눈으로만 벽돌을 만들면 쉽게 녹아버리거나 힘이 없어 허물어지기에 눈과 물을 적당히 섞어서 벽돌을 만든다.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벽돌을 만드는 틀로 들통을 쓴다. 에스키모 인들은 사각형 벽돌로 잘라서 쌓는데 여기서는 현장에 맞추어 벽돌이 원통이다. 그러니까 지름이 30센티, 높이가 60센티 정도 되는 통을 이용한다. 이 통에다가 눈을 한 삽 넣고 발로 다진다. 이때 물기가 많은 눈이 좋다. 너무 보드라운 눈이라면 물을 살짝 뿌려가면서 눈을 다진다. 이렇게 한 삽 넣고 발로 다지면서 통 가득 눈을 담는다.
그 다음 통을 뒤집어 흔들면서 눈 벽돌을 통에서 꺼낸다. 제법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아 거들어주었다. 눈을 다진 통을 들어보니 얼추 10키로는 될 듯 하다. 이 통을 뒤집어 몇 번 끄덕이자 벽돌이 쏙하고 빠져나왔다. 벽돌 바닥을 만지던 늘이가 그런다.
“아저씨, 이것 만져 보세요. 맨들맨들 좋아요.”
작고 보드라운 아이 손이 눈 벽돌을 만진다. 벽돌도 아름답지만 아이 손도 아름답다. 아이 말대로 손으로 만져보니 맨들맨들 사랑스럽다. 보통 교육에서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감각교육을 중요시 한다. 오감을 살리려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음이나 눈도 만져보게 하고, 냄새도 맡게 하며, 맛도 보게 하는 교육을 한다. 아이 관심에 다가간 교육이라면 그나마 성공이다. 그러나 아이가 관심이 없는 감각교육이라면 오히려 아이 감각을 왜곡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교육이란 점에서 아주 상징성이 크다. 어른이 ‘해라마라’ 하기 전에 아이 스스로 먼저 감각을 확인하고 익힌다. 이런 감각은 아주 중요하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느낌이다. 감각의 주체성이라고 할까. 먹을 수 있는 지, 자신에게 위험하지는 않는지, 쓸모는 없는 지,..무엇이든 지식으로 배우기 이전에 감각을 통해 먼저 느끼는 것이다. 지식은 감각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기억도 오래간다.
아이들 교육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눈 벽돌이 주는 감각이 좋으니까 이를 나누고 싶어 내게도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때 바쁘다고 지나치거나 다 안다고 무시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입시교육이 아닌 생명교육은 아이 새로운 발견에 공감하고, 아이가 찾은 느낌을 어른도 느껴보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귀중한 발견인가. 눈과 물 그리고 아이들이 발로 누른 힘이 적당히 결합된 느낌. 피부에 닿는 느낌은 차가우면서도 마음으로 오는 느낌은 따스하다. 사진 한 장 찰깍! 어른이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한테 교육을 받는다.
자, 이제 이 벽돌을 마당으로 옮겨야 한다. 벽돌을 만든 곳이 마당에서 10여 미터 아래다. 이렇게 몇 시간 째 벽돌을 찍고 나르는 아이들. 모두가 열심이니 나도 그냥 구경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아니 재미있을 것 같다. 나도 얼른 끼어서 눈 벽돌을 날라주고, 잠깐이나마 이글루를 짓는 일도 거들었다. 일이 아니라 놀이니까 어른인 걸 잊고 동심으로 들어간다. 예전에 책에서 사진으로만 이글루를 볼 때는 신기했다. 어떻게 벽돌을 돔으로 쌓을 수 있는지? 늘이 아버지가 하는 걸 보니까 이해가 된다.
벽돌 사이를 접착 시키는 방법으로 눈과 물을 적당히 섞어 발라주는 것이다. 흙벽돌 쌓은 거와 같은 원리다. 흙벽돌도 벽돌 틈사이 적당한 물기가 있는 흙을 발라주어야 벽돌끼리 단단하게 고정이 된다. 그리도 나서도 벽 안팎에 눈을 계속 덧붙여 보기도 좋고, 튼튼하게 한다. 그러자니 눈이 엄청 든다. 이 일은 하늘이가 부지런히 거든다.
맨 밑단을 쌓고 나면 그 위에 아래 벽돌과는 서로 어긋나게 하면서 약간 안으로 기울기를 준다. 위로 올라갈수록 기울기가 커지고 중력을 많이 받으니까 한 사람이 곁에서 잡아주어야 한다.
점점 모양이 갖추어져 이제 맨 위 한 단만 쌓으면 지붕이 다 된다. 이 때다.
“참 드세요.”
늘이 엄마가 부르는 소리.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말이 있을까. 따스하고 구수한 숭늉이다. 힘들게 일한 뒤끝이라 아이들이 아귀처럼 먹는다. 배도 고팠고, 숭늉도 맛있고, 놀이가 주는 성취감도 좋으니 이래저래 밥맛이 꿀맛이다.
이글루(igloo)는 얼음 또는 눈으로 만든 집이다. 만드는 요령은 여기는 에스키모들처럼 추운 곳이 아니니까 여기 형편에 맞게 한다. 어른 한 사람 들어갈 정도 이글루지만 눈 벽돌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 대충 눈짐작으로 헤아려보니 30개 정도는 필요하다.
이글루는 짓는 단순한 놀이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좀더 많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이글루가 신기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신기한 집이다. 그것도 손수 만드는 재미까지 있는 그런 집. 무슨 집이든 손수 지어보면 배우는 게 많다. 엉성하지만 머릿속 설계가 있고, 이를 눈앞에서 집으로 드러내는 과정이 성취감을 준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아는 만큼 정보와 지식을 나눈다. 어른은 어른 대로 상상이는 형이나 오빠로서. 이를테면 놀이에서 배우는 과학을 보자. 이글루는 춥지 않을까? 난방을 하면 집이 녹을 텐데 어찌 할까?
여기에는 물리현상을 이용한단다. 이글루 안에다가 물을 뿌린다. 액체가 고체로 바뀔 때는 응고열이 나와 따뜻해진다. 이 반대는 용해열. 여름에 얼음이 녹으면 시원하다. 그건 고체가 액체로 바뀌면서 나오는 용해열 때문이다.
능숙한 에스키모는 한 가족이 살 이글루를 만드는 데 두어 시간이면 된단다. 재료가 둘레에 넉넉하니까 벽돌 한 장 크기도 크다. 가로 120㎝, 세로 60㎝이며, 높이는 20㎝. 이를 달팽이 나선처럼 올라가며, 또 기울여가며 쌓는단다. 이글루 실내에는 눈 침대도 있고, 천장에 생활필수품을 놓는 선반도 있으며, 환기 구멍도 낸다. 돔 형태지만 창문도 낸다.
여기 아이들은 눈 침대 대신에 이글로가 작아 그 안에다가 눈 의자를 하나 만들어 두었다. 가만히 앉아본다. 나도 아이가 된다. 눈보라치는 날도 두려워하지 않고, 설렘을 가지는 아이.
'살아가는 이야기 > 아이들은 자연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신의 일자리를 스스로 창출하는 교육 (0) | 2009.04.26 |
---|---|
자녀교육과 임계질량(臨界質量) (0) | 2009.03.29 |
아주 특별한 가족신문, <놏> (0) | 2009.01.16 |
홈스쿨링 10년을 돌아보다, 민들레 잡지 인터뷰 (0) | 2008.12.21 |
사춘기 콧수염 기념 잔치, 대추 찹쌀떡 (0) | 2008.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