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아주 특별한 가족신문, <놏>

모두 빛 2009. 1. 16. 08:07

 

 

아주 특별한 신문을 하나 소개한다. 이름이 <놏>이다. 정확히는 ㄴ 다음에 아래아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쓰는 법을 모르겠다. 그래서 신문 표지는 사진으로 대신하고, 여기 글로는 그냥 놏이라 한다. 제주도에 사는 성학이네 가족 신문이다.

 

처음 나는 이 신문을 받고 읽는 재미도 좋았지만 놏이라는 말 자체가 궁금했다. 그래서 이 집 식구에게 물었다.

 

“제주에선 얼굴을 놏이라고 해요. 세수해라 하는 말을 놏 씻으라~ 하면서. 아주 오래전에 처음 놏을 만들 때 신문 이름을 뭘로 할까 하다가, 졸졸졸이 아마 제안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 자기 얼굴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 되자~’ 하면서. 왜 얼굴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자는 말도 있잖아요? 놏이라는 신문 이름에는 아마 정도(正道)를 가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세상에, 하늘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 하는?’

 

그래서인지 솔직담백한 이 신문이 좋다. 신문을 보다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고, 보고 나서도 한동안 이 집 식구들 사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다.

 

우리 식구와 학이네와는 인연이 어느새 3년이 지나나 보다. 우리 부부가 낸 책 <아이들은 자연이다>로 인연을 맺었으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우리로는 그런 햇수를 헤아리고 싶지 않을 만큼 학이네한테 그 어떤 친밀감을 느낀다. 혈연과는 또 다른 깊이. ‘따로 또 같이’라는 말처럼 각자의 길을 따로 가데, 자연스러운 삶이라는 큰 흐름에서는 같이 가는 관계...

 

학이네 역시 세 아이 모두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빡세게 홈스쿨링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자연스런 삶과 교육을 추구한다고 해야 할까. 삶이 배움이 되며, 성장이 되는 그런 교육.

 

내가 볼 때 가족신문 놏도 바로 그런 삶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이 신문을 이 집 식구들이 1996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데...그리고 보니 우리 식구도 그 비슷한 시기에 가족신문을 처음으로 만든 적이 있다. 서울 살다 처음 산골로 내려온 해가 96년이었고, 외로운 산골에 식구끼리 서로를 알고 또 보듬기 위해 가족신문을 만들기 시작했었다. 우리 가족은 신문 이름을 <처음처럼>이라 했다. 지금도 그 당시 신문 일부를 보관할 만큼 유익하고 소중한 가족 역사로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놏이 더 반갑다. 그동안 놏을 받아보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적어본다.

놏은 우선 읽기가 편하다. 학이네와는 거리가 멀지만 정서적으로는 가까운 이웃이다. 어떤 점에서는 사실 형제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글이 어렵지 않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니 술술 익힌다.

 

둘째는 재미있다. 사진에서 보는 그림부터 그렇다. 이집 막둥이가 그린 가족 그림. 이 그림을 유심히 보면 아버지 졸졸졸과 막둥이가 가장 즐겁다. 아버지는 아내 때리아를 무척 좋아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곁에 있다면 세상에 더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남자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세상을 다 품어줄 듯한 자세. 모든 남자의 로망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막둥이 역시 가족이 다 함께 살아가는 것만 해도 즐겁다.

 

반면에 엄마인 때리아는 조금 신비롭다. 그러니까 이 집은 이사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곳은 난방이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집은 손 볼 곳이 아직 많다. 그림에서 보듯 때리아는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돌돌돌 말아 보온을 철저히 한다. 눈과 코만 내밀고 있다. ㅋㅋ 게다가 손은 호주머니에 넣고, 예쁜 양말을 신고 있다. 맨손 맨발의 남편과 크게 대비된다. 그렇지만 때리아 눈빛은 추위를 두려하거나 하는 눈빛은 아니다. 이제는 추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서 식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신비롭게 지켜보는 그런 눈빛. 

 

이렇게 그림 한 장으로도 많은 걸 읽어내게 한다. 사실 이 집에서 그림은 막둥이도 좋아하지만 둘째 그림은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엄마인 때리아 역시 그림 그리기를 즐긴다. 잘 그려야 그리는 그림이 아닌 삶에서 느끼는 감동을 소박하게 담아낸다. 그렇기에 나로서는 이 신문이 재미있고, 또 기다려진다.

 

셋째는 새로움이다. 보통 신문(新聞)이라면 글자 그대로 새로운 소식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큰 신문들이 날마다 보여주는 새로움이란 좋은 소식보다 안 좋은 소식이 많다. 경제는 어둡고, 정치는 소통이 안 되며, 무한 경쟁 교육은 부모와 아이들을 지치게 만든다.

 

여기 견주어 놏은 새로울 뿐만 아니라 그 소식이 대부분 밝다. 읽는 사람의 얼굴이 저절로 펴지고 삶에 영감을 준다. 나는 그 힘이 아이들 성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성장은 그 자체로 기쁨이다. 몸이 자라고, 마음이 자란다. 글쓰기 실력이 늘고, 그림이나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이 늘어난다. 이렇게 자랄수록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들과 소통하는 힘도 늘어난다.

 

학이는 이제 열일곱 나이. 그런데 또래들과 견줄 수 없이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한다. 아버지 일을 거들며 돈을 벌기도 하고, 제주 환경운동 연합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생태조사를 하며, 이를 토대로 조사보고서를 작성해내기도 했다. 보고서에 쓰인 학이 글을 읽노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세상에 대한 이해가 많고, 글이 유창하다. 딸 둘 역시 풍물을 배워 공연을 하고, 수화를 고급단계까지 소화할 정도로 이웃 삶에 대한 애정이 많다.

 

이렇게 여러 새로운 소식 가운데 내가 가장 신선하게 느낀 건 둘째 딸의 성장이다. 학교를 그만둔 후 하고 싶은 게 없어 한동안 우울하게 지내던 아이가 크게 달라진 것. 기타를 좋아하게 된 거란다. 아이는 그 이전에도 많은 걸 경험하고 요리도 열심히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음악은 강렬하게 다가온 그 무엇이었나 보다. 그 내용을 신문에서 조금 옮겨본다.

 

‘아! 내가 작사 작곡 한 거 있는데! 그냥 대충 고민도 안 하고 완전 빨리 만들긴 했지만 내 생각에 ㅋ 좀 아주 조금 ㅋㅋ 좋은 거 같다 ㅎㅎ ...드디어 홈스쿨링을 해서 보람도 느끼고 학교 안 다녀서 자랑스러운(?) 것을 느낀 연말이 되어서 아주 기쁘다.’

 

아이의 치유와 성장을 한꺼번에 느끼게 해 주는 구절이다. 삷의 목표라고 할까 방향을 잃어버린 아이가 자신만의 등대를 찾았을 때 오는 기쁨이 전해진다.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을 찾고 또 성장해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무척 역동적이다. 길들여진 꿈이 아니라 내면에서 차오르는 열정들. 순간순간 자신의 선택을 즐기고 기뻐하며 몰입하게 된다. 나로서는 아이 스스로 배움의 주체가 되면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본다. 당당한 인격이 된다. 그래서인지 이 집 신문이 대략 한 달에 한 번 꼴로 오지만 그 감동은 한 달 이상 간다.

 

놏이 주는 느낌은 좀더 많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보태자면 가족 사이 소통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신문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소통이다. 게다가 이 번호에는 식구끼리 ‘쪽지 나누기’가 있으니 한결 실감이 난다. 식구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쪽지로 적고, 그 즉석에서 쪽지에 대한 댓글을 달았다. 나도 독자 처지에서 이 댓글을 보는 데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댓글에 같이 참여하고 싶을 만큼. ㅎㅎ

 

그런데 가족 사이 소통은 결코 이 집 식구끼리만이 아니다. 가까운 이웃들에게까지 넓게 미친다. 놏이 오면 우리 식구 네 사람 모두 신문을 빠짐없이 본다. 상상이는 얼마나 킥킥 대면서 보는지, 아이가 보고 있는 걸 내가 빼앗아 보고 싶을 정도다. 가족끼리 소통을 잘 한다는 건 다른 사람과도 소통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소박하지만 아주 특별한 신문, 놏. 정말 든든하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