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 동면으로 접어드는 계절이다. 늦게 일어나 느지막이 아침 먹고, 활동을 적게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대신에 겨울은 마음과 영혼의 양식을 얻기에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그동안 사실 내 코가 석자라고 책 원고 마감한다고 독서다운 독서룰 못했다. 그동안 많은 책을 보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쓰는 글에 필요한 내용을 집중해서 보게 된다. 책 읽기를 즐기기보다 일로서 읽는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지금은 책 읽기를 즐긴다. 내용을 즐기고, 글쓴이 마음을 느끼며, 사진과 빈 여백 더 나아가 디자인까지 여유롭게 본다. 요즘 즐겁게 보는 책이 박준이 지은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다. 캄보디아 여행기다.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는 것도 잠자리도 불편하다. 가끔 여행지에 만나는 여러 신기한 모습에 흥미를 느끼기는 하지만 이는 잠깐이다. 오히려 실망할 때가 많다. 그 이유는 나보다 먼저 여행지를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이다. 사진가나 다큐멘터리 촬영자들이 잘 찍은 모습을 보고 현장을 가보면 그 감동을 누리기가 어렵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가장 감동스러운 순간을 영상으로 남긴다. 글로서 꼼꼼히 기록한 여행기를 읽어도 마찬가지. 여행기를 읽고 여행기보다 더 감동이 되는 여행을 하기는 어렵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여행보다 여행자들이 남긴 기록을 더 좋아한다.
써바이는 캄보디아 말로 ‘행복하다, 즐겁다’라는 말이란다. 가난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저자의 눈으로 잠잠하게 펼쳐진다. 한비야 여행기가 격정적이라면 박준의 여행기는 관조적이다. 자신의 내면에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이 메아리가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를 읽다보니 나로서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러니까 캄보디아 사람들이 겪는 가난과 행복은 우리네 60년대와 조금은 비슷하다. 돈 벌기는 지독히 어렵지만 돈으로 인해 궁핍한 삶이 아닌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삶.
이를 테면 내 어린 시절과 비슷한 내용으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캄보디아인들이 귀한 음식으로 쥐고기와 뱀고기를 먹는다고.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쥐는 먹지 않았지만 참개구리를 열심히 잡아먹었다. 내 동무들 가운데는 뱀 고기를 잘 먹는 아이도 있었다. 과자가 없어도 아이스크림이 없어도 배고프면 산딸기나 오디를 따먹고, 아카시 꽃도 즐겨 먹었다. 밤이 긴 겨울에는 무를 깎아먹고 너도나도 방귀를 뀌면서 즐거워하곤 했다.
그럼에도 캄보디아 아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우리는 ‘즐겁다’는 표현을 안 했다. 그냥 말없이 만족했다. 그런데 이 곳 아이들은 저자 말을 빌리면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라고 자신들의 느낌을 표현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건 아주 좋은 훈련이라고 나는 믿는다. 힘든 감정은 드러내면서 풀어버리고, 좋은 감정은 나누면서 둘레를 밝게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캄보디아 사람들 삶을 직접 보여주기 보다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캄보디아에 가서 봉사하며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 했다. 굶는 아이들에게 밥 퍼주는 사람, 이빨을 고쳐주는 사람, 우리말을 가르쳐주는 사람...그 하나하나 삶이 다 귀하고 흥미롭다. 어느 구절에서는 한 줄을 읽고는 오래도록 글이 아닌 삶이 주는 깊이를 되새김질 해본다.
“전에는 괜찮아지고 싶어서 괜찮다는 말을 했다면
지금은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해요.
무엇을 해도 다 괜찮은 내가 됐어요.”
그야말로 써바이 써바이다.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의 철학이 외지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러기에 돈은 적지만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기존중감을 크게 갖는다.
다만 봉사가 아닌 현지 주민의 이야기가 좀더 나왔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책 속 사진에서 보듯이 오토바이 한 대에 온 가족이 다 타고, 승합차에는 사람이 짐짝처럼 빼곡히 들어차고도 모자라 지붕까지 사람으로 넘친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아찔하다. 책이 아닌 직접 내 눈으로 이 장면을 본다면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렵겠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속도와 편리함으로 몰아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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