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얼마 전부터 탱고를 배우기 시작했다. 혼자 연습하는 모습을 곁에서 슬쩍슬쩍 보니 나 역시 구미가 당긴다. 춤이라면 나는 막춤밖에 못 추는 춤치(癡). 이 참에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지 않겠나.
탱고는 남여가 함께 추는 춤. 집에서는 딸의 파트너가 될 사람이 아버지인 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자연스럽게 조금씩 탱고를 익히고 있다. 아버지로서 다 큰 딸과 탱고를 추는 맛이 참 좋다. 딸에게 한 동작을 배운 다음에는 아내와 함께 춘다. 탱고는 한 곡 추는 데 보통 3분 남짓. 나는 아직 초보라 길어야 두 곡을 넘기가 어렵다.
마음처럼 내 실력이 쉽게 늘지 않는다. 나이도 나이인데다가 ‘몸치’에다가 ‘음치’ 게다가 ‘사람치’까지 있는 나로서는 쉽지 않는 춤이다. 사람치는 사람에게 바싹 다가가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을 말한다. 탱고처럼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는 몸짓은 사람치인 내게는 참으로 어려운 동작이기도 하다. 남모르는 여자라면 과연 내가 탱고를 출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솔직히 딸보다는 아내가 더 편하다. ㅎㅎ 이런 나 자신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자면 나로서는 먼저 이론적인 무장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탱고에 관한 책을 검색했다. 춤에 관한 책은 많지만 탱고만을 다룬 책은 단 한 권. 배수경이 지은 <탱고, 강렬하고 아름다운 매혹의 춤>이었다. 출판사(살림)가 제공하는 짧은 책 소개만 보고도 마음에 들었다. 곧바로 사서 한달음에 다 읽었다. 책도 얇은데다가 내가 궁금해 하던 탱고에 대한 개괄적인 정리가 잘 된 편이다.
게다가 저자의 글 솜씨도 좋다. 그러니까 머리로 쓴 게 아니라 몸으로 쓴 글이라고 할까. 술술 읽힌다. 그리고는 조금 지나 또 한 번 읽었다. 처음 읽은 게 호기심이라면 두 번째는 영감이 오는 문장이라면 곱씹으면서 읽게 된다. 마치 내 앞에 저자가 있고, 그이와 내가 탱고를 추는 맛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100쪽도 채 안 되는 두께지만 지은이의 땀과 열정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 고마움에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따뜻한 답장도 받았다.
책 가운데 강렬하게 기억되는 두 문장은 ‘하나의 가슴과 네 개의 다리’, ‘즉흥적이고 창조적인 춤’이다. 앞부분은 아내와 관계를 좀더 발전시키는 데 아주 소중한 울림을 준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탱고는 이를 몸으로 말해준다. 땅게로(탱고 추는 남자)의 상체에서 시작된 가슴의 몸짓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그 흐름이 두 사람의 네 다리로 자연스럽게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두 사람이 움직이지만 한 사람이 움직이는 거랑 같은 몸짓이 된다. 나로는 아주 잠깐씩만 이런 순간을 맛보지만 춤에 좀더 익숙해진다면 더 깊은 내용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즉흥적이고 창조적인 춤’이라는 말도 참 좋다. 몇 가지 기본 틀만 익히면 여기서 무한을 창조할 수 있다니 탱고는 쉽게 물리지 않을 춤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나. 태어나고 성장하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늙어가는 몇 가지 틀이야 사람마다 다 비슷하지만 사람마다 그 즉흥성과 창조성은 무한하지 않는가. 그러니 탱고는 사람을 빨려들게 하는 그 무엇을 가진 춤이다.
이 책을 두 번 보면서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탱고를 누군가에게 강습을 받지 않더라도 집에서 연인끼리 동영상으로도 익힐 수 있게 편집이 되었더라면 금상첨화라는 생각이다. 저자 역시 앞으로 더 심층적인 탱고 책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고 있듯이 다음 책을 기대해본다. 이왕 서평을 쓰는 김에 한 마디만 더 하자면 땅게로와 땅게라(탱고 추는 여자)가 함께 탱고를 추듯이 두 사람이 한 권의 탱고 책을 쓰는 것도 제안하고 싶다. 지은이와 탱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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