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나물산나물 쑥 취 냉이/책 소개

16살 장금이가 제안하는 ‘제철요리 노하우’(한겨례 )

모두 빛 2008. 8. 31. 07:29

한겨레 고유리 기자

 

 

 

» 16살 장금이가 제안하는 ‘제철요리 노하우’
〈열두 달 토끼밥상〉
맹물 글·명 그림/보리·9800원

감기·아토피 달고 살던 소녀
산골서 풀과 열매 맛에 반해
썰어보고 무쳐보고 부쳐보고
익살맞은 만화로 요리법 풀어


» 〈열두 달 토끼밥상〉
알록달록 빛깔 고운 채소들이 푸짐하게 차려진 ‘토끼밥상’은 이미 식생활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채식 권하는 사회’는 점점 더 몸집이 커졌고, 이와 반비례해 고기로 가득찬 ‘여우밥상’은 설 자리가 계속 좁아졌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와 화학조미료로 범벅된 음식들은 여전히 아이들의 혀를 유혹하고, 이를 뿌리치지 못한 아이들의 몸은 망가져간다.

맹물이(본명 김정현)도 그랬다. 감기를 달고 사는데다 까칠한 성격, 아토피까지 앓아 과자 한 조각이라도 먹을라치면 긁적긁적 가려워지는 피부. 맹물이네 네 식구는 맹물이가 아홉 살 때 도시탈출을 감행해 무주 산골행을 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연을 학교 삼아 산과 들에서 뛰어놀던 맹물이가 그만 풀과 열매의 그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렇게도 싫어하던 달래, 호박, 상추가 맛있어졌다. 일년 열두 달 제철에 나는 풀이나 곡식을 썰어도 보고 무쳐도 보면서 요리에 재미까지 붙였고, 엄마 친구들에게는 장금이라는 훈장까지 얻었다. 열 여섯 살이 된 맹물이는 이번에 꼬박 3년간 공들여 써온 ‘제철 요리 노하우’를 한 권으로 엮어서 세상에 내놨다.

요리에 얽힌 사연을 익살맞게 표현한 만화와 진지하게 설명한 요리법으로 구성된 이 책은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레시피다. 각 달에 어울리는 요리 3가지씩, 모두 36가지를 맛있게 버무려 담았다. 제철 재료를 쓰다보니 음식들이 자연스럽게 절기에 딱 들어맞는다. 한 해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2월에는 떡국과 묵은 김치를 먹고, 파릇파릇한 봄나물이 나오는 3월에는 달래와 쑥으로 국도 끓여먹고 달걀찜도 한다. 나들이 가고 싶은 4월에는 진달래 주먹밥 도시락을 권한다. 더워서 입맛이 없는 7~8월에는 양푼비빔밥, 강된장, 콩국, 오이냉국을 먹음직스럽게 차린다. 커다란 양푼에 밥을 가득 비벼먹고 무거운 배를 못 이긴 채 마룻바닥에 뻗어버린 맹물과 맹랑 자매의 모습이 귀엽다. 햅곡식으로 들판이 누래지는 10월엔 햅쌀밥과 들깨죽이 그만. 뜨끈한 국물이 그리운 11월엔 김이 모락모락 피는 잔치국수가 입맛을 당긴다. 미숫가루다식, 봄나물토렴, 사과떡볶이, 땅콩콩장도 마구 군침이 돈다.


» 16살 장금이가 제안하는 ‘제철요리 노하우’
아이들을 위한 요리서이지만 레시피가 매우 간단하고 쉬워 요리실력이 부족한 어른들에게도 제법 유용하다. 또 우리가 늘상 접하는 친근한 메뉴들이라 한 번 익혀두면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을 듯싶다. 유산균에 쇠가 닿으면 안 되고, 양파를 깔 때 눈이 따가우면 식초 뚜껑을 열고 하면 되고, 여름에 모기는 식초 냄새가 나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정보. 맹랑이는 또 양념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설탕 대신 효소를, 물엿 대신 조청을, 정제소금 대신 천일염을 쓰기를 강력하게 당부한다. 채소를 싫어하는 또래 혹은 동생들에게 ‘너도 한 번 해봐’라며 올바른 식생활 문화를 부추기는 것은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맹랑이는 아직도 콩만큼은 먹기가 힘들다며 ‘살짝 깨는’ 고백을 한다. “사실 나는 콩을 안 좋아해. 콩 모양을 하고 있는 건 잘 안 먹어. 대신 콩국으로 만들어 먹지. 잣하고 깨를 듬뿍 넣으면 매우 고소해.” 정 먹기 어려운 채소는 요리법을 달리하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은 듯하다. 다정한 아빠와 지혜로운 엄마, 못 말리는 말괄량이 동생이 함께 밭을 일구며 티격태격 살아가는 모습이 참 예쁘다. 초등 전학년.

고유리 기자 yurik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