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일 전체를 주관하는 기쁨

모두 빛 2008. 10. 27. 05:21

 

 

식구가 거실에 둘러 앉아 감을 깎는다. 상상이, 탱이, 아내 세 사람이 깎은 감을 내가 처마에 매단다. 감꼭지가 적당히 있는 게 끈으로 묶어 달기가 좋다. 그런데 감을 깎다 보면 꼭지가 애매한 게 있다. 끈으로 묶자니 떨어질 것 같고, 안 묶자니 아깝다. 나 혼자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데 상상이가 참견을 한다.

“그냥 두세요. 그런 건 저기 채반에 늘어 말리면 되요.” 


-전체 일머리가 생기나?


아니, 이 녀석 봐라. 내게 명령하듯 말한다. 자신이 하던 감 깎기만이 아니라 일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이 말대로 채반에 늘어 말리면 좋을 감은 따로 두었다. 그렇게 한참 하는데 탱이가 그런다.

“이제 점심 먹고 하지요?”

그러자 아내나 내가 나설 새도 없이 상상이가 나선다.

“좀더 하다가 먹자!”

 

허허, 참! 별일이네. 이제까지 일을 해보면 상상이는 조금 하다가 지겹거나 힘들면 그 순간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나가 먼저 그만하자고 하는 데도 계속하자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일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건 아내나 나였다.

 

그러니 아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차지하던 집안의 가장 자리를 상상이가 꿰어 찬 기분이다. 조금 서운하면서도 왠지 뿌듯한 기분. 탱이는 자라면서 이렇게 전체를 주관하듯이 일을 해본 기억이 없다. 자신이 필요한 일이라면 형편 되는 만큼 함께 하는 형이다. 상상이는 남자 여서인지는 몰라도 탱이와 다르다.

 

내 기준에서 말하자면 집안의 기둥이 되고 싶은 그 어떤 본성이 아닐까 싶다. 식구 네 사람이 함께 일을 할 때 누군가 일 전체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도구나 재로 준비에서 끝맺음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전체를 알고서 일을 해가면 그리 힘든 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가 시켜서 한다면 다르다. 금방 실증이 난다. 전체 일 가운데 어느 한 부분만 하다보면 누구나 쉽게 실증이 난다. 반면에 일 전체를 알고 하면 성취감이 높아진다. 동기는 물론 과정도 어렵지 않고, 결과에 대해서는 흐뭇하다. 자신이 주인 되어 하는 일과 남을 보조하는 일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닐까.


-사춘기는 아픔 아니라 기쁨


상상이는 요즘 사춘기다. 얼마 전부터 이마에 여드름이 난다. 부쩍 먹을거리와 생활 습관에 마음을 쓴다. 그리고 키가 부쩍 자란다. 그 밖에는 사춘기로서 큰 변화를 못 느낀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 반항이라든가 성장통 같은 것을 보기가 어렵다. 물론 탱이도 사춘기 때 그랬다.  

 

나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만 자란다면 사춘기란 아픔이 아니라 기쁨이라 생각한다. 성장하고자 하는 분출하는 에너지를 억지로 막을 때 아픔이 따른다. 그럼에도 어른이 귀를 기울이지 못하면 아이들과 관계는 단절된다. 상상이가 감 깎는 일 전체를 주관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아마 사춘기와 관련이 있지 싶다. 자신이 그만큼 컸다는 걸 일속에서 확인하는 셈이다.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곶감으로 익어갈 때 얼마나 풍요로운가. 요즘은 마을 집집이 처마에 곶감을 말린다. 우리 집이 가장 늦다. 그래서인지 상상이가 더 열심히 곶감 만들기에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곶감은 먹는 맛도 좋지만 곶감으로 말라가는 풍경 자체만으로도 배부른 느낌을 받는다.

 

상상이는 수시로 일 전체 흐름을 확인한다. 감을 깎다가 틈틈이 채반에 널어 말리는 일을 한다. 그러다가도 처마에 매단 곶감이 모두 합해서 몇 개인지도 헤아려본다. 처음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 사실은 영어공부 시간이었다. 요즘 하고 있는 영어는 ‘살롯의 거미줄’. 이 공부도 빼놓을 수 없다고 감을 깎으면서 녹음된 영어를 틀어놓고 듣는다.

“오늘 공부는 듣기만 하지요?”

“좋을 대로.”

 

그리고는 수다도 떨고 탱이랑 노래도 부르며 신명나게 일을 한다.

사춘기란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중간 과정. 성장의 기쁨이 가장 왕성할 때다. 입시 공부에 짓눌리지 않는다면 사춘기는 얼마나 가슴 뛰는 시기인가?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뭐든 다 해보고 싶은 청소년기.

 

그런데 상상이는 감을 깎아 매다는 일까지는 능동적으로 다했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그 뒤처리까지는 미처 챙기지는 못했다. 청소라든가 도구들을 제자리에 두는 일은 아내와 내 몫. 그리고 그 다음날도 감을 깎았는데 이 날은 조금 하다가 말았다.

 

앞으로 아이가 자라는 만큼 일 전체와 흐름도 더 많이 익히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원한다면 부모가 할 일을 언제든 양보할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 욕심도 많아 성장의 기쁨을 아이와 나누어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