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커다란 부엌칼을 들고 감자를 또각또각 썰고,
양파를 쓱쓱 썰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의 모습을.
왜 눈물이 자꾸나지? 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도마질을 멈추지 않던 아이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너무도 환하게 웃어대며
아이가 처음으로 만들어줬던 노란 카레라이스의 맛을.
그 카레라이스를 내밀며 아이의 얼굴에 스며들었던 그 뿌듯한 표정을.
'내가 만들었다!'하며 자랑하고픈, '세상에서 나 보다 더 요리 잘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하는 듯한 아이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카레라이스를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먹으며 얼마나 웃음꽃을 피웠었는지.
내가 아이를, 아이가 나를 바라보던 눈길이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했었는지.
*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너무도 부끄러운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난 결혼을 하고나서야 밥을 하고 국을 하는 법을 알았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요리가 나의 생활 속에 없었다. 그냥 끼니를 때우는 식사만 있었을 뿐.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보니 요리가 얼마나 스트레스였는지....
한동안은 그 요리란 녀석 때문에 결혼한 사실이 싫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그리고 부러운 만큼 나 또한 요리를 잘 하고 싶었다.
아마, 그런 이유로 결혼 초에 나는 처음으로 요리책을 구입한 것 같다.
비싼 돈을 주고 산 세트로 된 커다란 요리책.
정말 다양한 요리들이 많이 들어 있었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요리들이 많았다.
'아! 이것 먹고 싶다!' 하는 맛깔 나 보이는 음식들이 그 책 안에 정말 많이 들어 있었다.
'그래, 이 요리를 한 번 해 보는 거야~' 그런 마음이 들면 시도도 해봤다.
한 번, 두 번..?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요리책에 나온 요리는 누가 하고 누가 먹는 요리지?
평소에 우리 밥상에서 보던 음식은 보이지 않고, 또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도 아니었다. 조리기구 또한 마찬가지였다.
흔히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조리기구라기엔 너무 복잡하고 세련되었다고나 할까.
따라하기엔 너무 먼 당신, 요리책 속의 요리여......
처음에 본 그 비싼 요리책 때문에 오히려 나는 요리와 더 멀어져 버렸다.
아니, 요리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요리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닌 것만 같고
그럴싸한 집에서 우아하게 사는 사람들이 한껏 멋을 부리며 하는 것이 요리인 것만 같았다.
그러던 내가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텃밭을 가꾸면서부터지 싶다.
내가 키운 작물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또 그것들을 키워낸 나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너무 자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워 요리에 저절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노동에 대한 보답, 그리고 잘 자라준 작물에 대한 보답으로 정말 나는 잘 먹고 싶었다.
잘 먹는다는 건 그냥 맛있게, 많이 먹는다는 것이 아니다.
나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작물들에 대해서도 한껏 예의를 갖추고 자연스럽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보다 요리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건 바로 아이들.
나는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요리에 관심을 가진 반면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기도 전부터 요리에 관심을 보인다.
엄마 옆에서 “내가 할래! 내가 내가~!!”하며 칼질을 하고, 요것저것 섞어 놓기도 하고, 뜨거운 냄비 속에 재료를 넣어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요리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긴, 어렸을 때 소꿉장난을 하면 언제나 요리를 하면서 먹는 놀이를 하지 않았던가?
나는 11살, 13살, 15살 난 세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고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요리를 무척 즐기고 있는 걸 알았다.
서점에 가면 요리책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부엌에서 한참을 보내며 뭔가를 만들어 내는 걸 종종 본다.
아이들이 만들어낸 요리는 마치 마술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틀에 박힌 사고를 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말랑말랑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독특한 요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맛은 아주 좋기도 하고 또 아주 없기도 한다.
그러나, 맛이 없으면 어떤가.
요리를 하면서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그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맛보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족하지 않은가!
그런데 서점에서 아이들의 눈길을 확 끄는 화려한 요리책에는 요리활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만한 책이 별로 없었다.
아이들에게 맛있어 보이는 요리들은 있었지만, 아이들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한 요리들은 없었다.
고급 음식점에서 비싼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할 것 같은 요리들은 있었지만,
집에서 설렁설렁 만들어 편안하게 푹 눌러앉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요리는 없었다.
저 멀리 외국에 사는 아이들이 주로 먹을 것 같은 요리는 있었지만,
구수한 된장냄새가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잘 먹을 것 같은 요리는 없었다.
처음 먹으면 맛있는데 두 번째 먹으면 느끼할 것 같고, 세 번째 먹으면 더 이상은 못 먹을 것 같은 요리는 있었지만,
첫 번째 먹으면 밋밋한데 또 만들어 먹어보고 싶고, 두 번째 먹으면 뭔가 깊은 맛이 느껴지고,
세 번째 먹으면 비로소 진짜 참맛을 알 것 같은 그런 요리는 없었다.
그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잘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없었다.
완성된 모습은 너무 맛있어 보이는 요리지만, 재료가 너무 건강하지 못하고 만드는 과정이 또한 복잡하고 건강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뜻 나나 아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따라할 수 있는 요리들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책을 만났다.
열두 달 토끼밥상.
이 책은 예전에 구독하던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아이들 월간지에 연재되던 요리들을 묶어서 낸 책인데
매달 잡지가 오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펼쳐보던 코너가 바로 그 <토끼밥상>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만나는 순간 참 반가웠다.
책을 손에 들자마자 아이들은 한달음에 다 읽고는 어느새 정해 놨다.
“엄마! 오늘은 이 요리 만들어보자!!”
참 편안한 책이다. 읽는 재미와 함께 따라 만드는 재미까지 주는.
눈으로 보고 읽기만 하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아~, 나도 맛있는 요리를 할 수가 있겠구나!’ 하고 자신을 심어주고
특히, 12달 제철에 나오는 채소와 곡식들을 이용한 요리를 통해서 저절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책인 것 같아 더 좋다.
저자의 식구들이 겪은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만화는 그 요리를 더욱 맛나게 하기도 하고,
식구들끼리 소박한 밥상 앞에서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기도 한다.
또 요리에 넣은 갖은 양념이나 재료들이 모두 건강하면서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라서 더더욱 좋다.
한동안 아이들이 이 책의 요리를 따라하느라 소란스러울 것 같다.
난, 아이들이 처음으로 만들어줬던 카레라이스를 먹을 때처럼 맛나게 먹어주면 되겠지?
그런데 어쩌지? 아이들도 따라해 보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내가 더 따라해 보고 싶은데...
아이들이랑 ‘내가 할래, 내가!’하며 다퉈야 하나?
그럴 순 없으니, ‘얘들아, 엄마랑 함께 만들자~’하고 말해야겠다.
함께 만들고, 함께 먹으며 아이들이 처음 요리를 해냈을 때 보여주었던,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아이들의 그 눈빛을 자주 보고 싶다.
아이들을 위한 이런 요리책이 나왔다는 건, 그리고 이런 요리책을 보며 요리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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