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다. 마을 식수 탱크에 물이 간당간당. 마실 물조차 넉넉하지 않다. 군에다 이야기를 하니 소방서에 바로 연락하란다. 면사무소와 소방서끼리는 서로 공문처리 해야 하니까 절차가 복잡한데 주민이 하면 곧바로 물을 준단다.
그 말대로 면 소방서에다 아내가 전화를 하니 무진장 소방서 본부로 다시 전화를 하란다. 다시 했다. 그랬더니 소방차를 점심 뒤에 보내준단다.
그리고는 식구 모두 목욕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물에 대한 갈증도 풀고, 몸도 제대로 닦자고. 중요한 가을걷이를 했기에 한번쯤 나들이할 만도 하다. 식구가 다 같이 목욕탕에서 목욕을 해본지가 언제인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와서는 집에서 목욕을 하기에 목욕탕 갈 일이 없었다. 식구가 같이 목욕탕 간 지가 얼추 8년은 되지 싶다.
집에 와 있던 손님도 데려다줄 겸 장계 목욕탕으로 갔다. 목욕비도 올라 만만치 않다. 나는 상상이랑 남탕으로 갔다. 그리고 보니 상상이랑 처음으로 목욕을 한다. 같이 샤워하고, 같이 탕에 들어갔다. 냉탕에서 같이 물놀이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아들과 목욕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서로 등 밀어주기. 상상이는 몸을 자주 닦아서인지 때가 별로 없다. 몸을 닦아주면서 몸을 자세히 본다.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는 나이, 사춘기 소년의 몸.
이제 상상이가 내 등을 민다. 아이 손이 부드럽다. 기분이 참 좋다. 이 맛에 아버지들이 아들과 목욕을 하는가. 등을 밀고 나서 머리를 정성으로 감았다. 집에 물이 귀하니 물 감촉도 새삼 좋게 느껴진다. 몸을 정성으로 씻기보다 물을 정성으로 만지는 기분.
그러다 보니 목욕이 끝난 시간이 얼추 한 시간 가량 되어 온다. 나는 그동안 이렇게 오래 목욕한 적이 없다. 보통 때는 길어야 30분. 나로서는 목욕탕 공기가 너무 후텁지근해서 오래 있기가 힘들다. 대충 닦고 나오는 편이다. 지금은 물이 귀한데다가 아들과 함께 해서인지 목욕을 여유롭게 즐긴다.
목욕 뒤에는 탈의실에 있는 여러 가지 헬스 기구를 작동시키며 운동을 했다. 그리고 나오니 아직도 여자들은 나올 기미가 없다. 상상이와 둘이서 장계 거리를 거닐며 간단히 아이 쇼핑을 했다.
“상상아,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글쎄요. 예전에는 먹을 거, 초콜릿 같은 걸사면 좋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상상이는 나를 닮아서인지 소비 욕구가 거의 없다. 게다가 여드름에다가 요즘 말 많은 멜라닌 파동까지 겹쳐. 둘이서 이 가게 기웃 저 가게 기웃하며 둘레를 한바퀴 돌았다. 다시 목욕탕으로 돌아오니 그제야 아내랑 탱이가 나온다. 아내 역시 장볼 거는 없단다. 점심때지만 외식조차 별로인가보다.
이렇게 나들이를 하고 오니 소방차가 물탱크에 물을 넣고 있다. 우선 작은 차로 일 톤. 좀 있으니까 좀더 큰 소방차로 다시 물을 추가해준다. 그리고 나자 면 직원이 현지 사정을 확인하러 왔다. 직원을 데리고 추가 상수원이 될만한 곳을 안내했다. 지금처럼 가뭄에도 물이 나오는 샘을 보여주었다. 공사가 어렵지는 않단다. 경비도 백만 원 남짓.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면 그 사이 군과 협의를 해서 공사를 진행해보겠단다. 일단 이 공사만 되면 큰 고비는 넘기지 싶다.
어쨌든 이번 가뭄을 계기로 가끔은 아들과 목욕탕을 가는 날을 만들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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