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좀더 즐겁게 살고 싶다. 예전에 나는 취미가 다양했었다. 스포츠도 여러 가지로 즐겼고, 바둑이나 장기도 좋아했다. 낚시나 등산도 좋아했다.
그런데 시골 내려온 뒤로는 별다른 취미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 그저 일하고 자는 나날들. 시골 일이라는 게 농사만이 아니다. 집도 수리하고, 요리도 배우고, 글도 쓰고, 손님도 맞고...그러다보면 주말도 없고, 휴가 역시 정해진 게 없다. 비 오거나 눈 오는 날이 쉬는 날이었다.
일 자체를 보람으로 알고 그렇게 살아온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변하고 싶다. 삶의 여유도 생겼고, 세상을 넓게 보고자 하는 안목도 조금은 생겼다. 그렇다고 예전에 즐기던 취미활동은 그다지 흥미가 없다. 몸 쓰는 일을 많이 해서인지 스포츠에는 흥미가 없어졌고, 승부에 집착하는 바둑이나 장기는 이제는 가슴이 아파 못하겠다. 등산 역시 땔감을 한다거나 산나물을 하려 산을 가끔 오르내리기에 굳이 일부러 산을 올라야할 이유가 없다.
요즘은 겨울답지 않게 따스한 날들이 이어진다. 자꾸 일이 하고 싶다. 최근에 많이 한 일이 집수리다. 우리 집은 나무와 흙을 기본으로 지은 집이라 늘 손을 봐야 한다. 게다가 지은 지 10년이 가까워오니 손 볼일이 많다.
원칙은 간단하다. 되도록 따뜻하게, 그러면서도 보기 좋게. 먼저 집 바깥 벽을 새로 칠했다. 집을 처음 지었을 때는 집 둘레 흙과 모래를 섞어 미장을 했었다. 그랬기에 우리집 벽 빛깔은 마당 흙과 비슷해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빛깔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모래는 조금씩 떨어지기도 했고, 나무와 흙벽돌 사이 작은 틈새도 생겼다. 이번에는 흙으로 천연페인트를 만들어 칠을 해 보기로 했다. 황토를 조금 구해다가 황토물을 만들어 앙금을 내리고, 여기에다가 우뭇가사리와 찹쌀을 끓여 넣어 천연황토페인트를 만들어 발라주었다. 그리고 나니 붉은 빛이 돈다. 한결 활기찬 느낌. 칠하면서 작은 틈새를 발라준 만큼 집안 보온도 더 잘 되겠지.
내친 김에 군불 지피는 아궁이 곁에 있는 바깥 수도도 보온을 했다. 비닐을 둘러치고, 하얀 부직포로 커튼을 치니 아늑하고 좋다. 거기다가 오줌 누는 시설도 간단히 마련했다. 시골 뒷간은 살림채와 많이 떨어져있기에 겨울이면 불편하다. 겨울밤이면 춥기도 하거니와 눈이 오면 미끄러져 다칠 위험도 높다.
오줌 누는 시설은 간단하다. 한 말 들이 통에 깔대기를 끼워 놓고, 그 곁에 바가지 하나면 된다. 이제는 집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오줌을 눌 수 있으니 얼마나 포근한가. 바가지에 오줌을 누면 오줌이 튀지 않아 좋다. 다 눈 오줌을 말 통에 붓는다. 바가지는 물로 씻어 두고, 오줌통은 무게가 무겁지 않을 정도로 2-3일만 모았다가 과일나무에 겨울 거름으로 준다. 이런 일 말고도 시골은 집안팎으로 손볼 일이 많다.
이렇게 집을 손보다 보니 생각이 여러 갈래로 뻗어간다. 이 참에 집을 꾸미고, 정원을 제대로 가꾸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실 그동안은 땅에 뿌리내린다고 집 둘레를 제대로 꾸미거나 가꾸지를 못했다. 아내 혼자 틈틈이 한다고 하지만 일이 많다보니 늘 일에 치여 집 둘레 정리가 안 되었다.
시골살이에는 필요한 공구들만 해도 많다. 농사도구에다가 집을 손보는 목공도구들 여기에다가 온갖 항아리에 살림살이들이 많다. 이 뿐만 아니라 땔감을 손수 해서 군불을 지피다보니 땔감 쌓고 정리하는 일도 깔끔하게 하지를 못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깔끔한 손님이 오면 솔직히 부끄럽다. 잘 정리된 이웃을 방문할 때면 부럽기도 하다.
이제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집 둘레를 꾸미고 가꾸어 보고 싶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하고 싶은 일이 엄청 많다. 창고 달아내기, 마당 가꾸기, 텃밭 가꾸기, 울타리 가꾸기, 과일나무 심기, 산책로 만들기, 작은 정자 짓기, 뜰 가꾸기...하다못해 공구걸이조차 이번에 제대로 만들고 싶다.
이를 몇 달 만에 하기는 어렵다. 긴 호흡으로 하나 둘 매듭을 지을까 한다. 주로 겨울에 집중하게 되니 대충 10년 계획으로 느긋하게 마음을 먹는다. 우선 원칙을 하나 세워본다. ‘되도록 취미활동 수준으로 즐겁게 한다.’ 취미는 놀이와는 좀 다른 영역이다. 놀이는 재미가 중심이지만 취미는 자기 세계를 깊숙이 추구한다. 집과 정원을 가꾸되 자기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즐거움과 몰입 그리고 자기실현을 다 함께 추구하는, 조금은 고상하고 세련된 취미활동이 되지 않을까.
또한 일과도 철저히 구별하고자 한다. 집 가꾸기를 해야 하는 일로서 하다보면 일중독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보다 다른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그런 취미활동. 그동안 내 안에 개발되지 못하고 잠자던 그 어떤 능력을 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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