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들판에 곡식도 한창 영글지만 산에는 더 많은 열매가 익어간다. 오미자, 밤, 도토리. 으름도 막 벌어지고 있다. 산 가까이 십년 넘게 살아도 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우리 가까이 산은 크지 않아도 그 속을 알면 알수록 그만큼 넓고도 깊다.
어제 오미자와 밤을 줍는다고 산으로 갔다. 차를 어디쯤에 댈까를 고민하는데 아내가 들머리에 대고 걸어가잖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인가! 걸은 지 일분도 안 되어 도토리를 발견한 것이다. 알도 아주 굻다. 손가락 마디 정도로.
우리는 그동안 이곳에서 도토리 줍는 게 어려웠다. 이웃이 권하는 곳이 저 멀리 영동이라도 때를 맞추어 찾아가곤 했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는 곳에 도토리가 있는 것이다. 만일 차를 타고 후딱 지나쳤으면 여전히 어딘가에 도토리가 없나 하고 정보를 찾아 헤맬 텐데.
처음 산에 간 목적과 달리 우리 식구는 도토리를 부지런히 주웠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자급자족하는 삶은 걷기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천천히 걸으면 보이는 게 많다. 먹을 것들도 쉽게 눈에 띈다. 봄이면 산나물이 지천이고, 가을이면 산과일, 겨울이면 몸을 덥히는 땔감이 널리게 된다.
이렇게 채집을 하면 마음의 자급자족도 높아지는 거 같다. 농사는 채집보다는 생산랭은 많지만 그 반대 아픔도 따른다. 농사지은 걸 들짐승이나 벌레가 먹으면 속상하다. 미워하거나 죽이게 된다. 이렇게 농사지은 걸 사람들과 나눌 때는 노력에 걸맞게 제값 받기를 바란다.
하지만 채집은 좀 다르다. 내가 한 거라고는 가볍게 산책하듯 줍거나 딴 거 외에는 없다. 도토리나 밤을 줍다보면 다람쥐가 먹다 버린 것들을 자주 본다. 그렇다고 분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안 생긴다. 나 역시 악착같이 주우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한 게 없기에 줍는 만큼 감사한다. 얻는 과정이 감사하기에 나누는 것도 한결 가볍게 할 수 있다.
여기서 생각이 갑자기 비약을 한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연수 갔을 때가 생각난다. 많은 에너지를 들였기에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챙기고 싶어 했다. 많은 걸 보고, 많은 걸 얻었지만 아쉬움도 컸다. 좀 더 준비를 했더라면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과, 미처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아쉬움도 남았다.
빠르게 가는 건 어쩌면 사냥본성일지 모른다. 그게 비행기든 승용차든 달리기든 다 마찬가지. 에너지를 많이 쓰는 만큼 에너지를 많이 얻어야한다.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고 그게 다 우리 몸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칫 비만이 되기 쉽다.
자급자족하는 삶은 풍요가 아니라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리라. 아직도 내 삶에 군더더기는 적지 않다. 도토리를 주우며 생각을 해본다. 자급자족의 시작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하고. (9. 20)
'자급자족 > 자급자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과 정원 가꾸기(1), 자신을 창조하는 취미 (0) | 2008.12.17 |
---|---|
집 둘레에서 땔감 하기 (0) | 2008.12.01 |
가족 목욕 나들이 (0) | 2008.10.07 |
뉴욕 할렘빌농장에서 온 편지1(홈피 펌) (0) | 2008.08.11 |
칼 가는 법 (0) | 2008.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