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 몸짓을 보면 배울 게 많다. 곤하게 잠드는 모습도, 젖을 빠는 힘도, 방긋 웃는 웃음도 어른들에게 위로를 주고 영감을 준다. 이런 모습들이 모두 아름다운 건 자연스러운 생명활동이기 때문이리라. 아기 몸짓 가운데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배우고 싶은 건 기지개.
아기들은 잠에서 깰 때 기지개를 켠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이런 몸놀림을 많이 잃어버린다. 바쁘거나 억지로 잠에서 깨면 이 자세가 안 나온다. 평소에 몸이 굳어있어도 그런 것 같다. 어쩌다 자기 모르게 기지개를 크게 켜면 어지럼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 어른이 되면 일부러 운동을 하여 몸을 풀어주어야 한다. 요가 같은 운동이 대표적. 이럴 경우 자신의 몸이 굳어있다고 마음으로 먼저 ‘의식’하야한다. 그 다음 또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해야 한다. 요가 동작 역시 몸 가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 하는 운동’은 지속하기가 어렵다. 마음은 그야말로 저 내키는 대로가 아닌가. 언제는 해야 한다고 굳게 결심하고 평생 할 것처럼 설치다가 또 언제는 바쁘다고 대충 넘어가자고 한다. 또한 자신이 게으르다는 걸 자각하면서도 하지 않는 게 마음이다. 심지어 자책하듯 몸을 학대하기도 하는 게 마음이다.
반면에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은 몸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긴다. 아기들 기지개는 아주 자연스럽고도 소중한 몸놀림. 의식이 없어도 그냥 몸이 알아서 한다. 저절로 하는 셈이다. 어쩌면 의식이 없기에 더 잘하는 지도 모른다. 아기는 잠을 자주 자고 또 자주 깨는데 그때마다 이 몸짓을 하니 하루에도 여러 번 기지개를 켠다. 이렇게 운동이란 일부러 길들여야 하는 습관이라기보다 본성에 더 가깝다는 걸 아기한테 배운다.
직접 기지개를 켤 때 오는 기분은 어떨까. 기지개가 자연스럽게 안 나오니 ‘의식적’으로 기지개를 켜본다. 천천히 두 팔과 두 다리를 큰 대(大)자로 뻗는다. 가슴은 쭉 펴고 온몸에 힘을 주면서 더 힘차게 뻗는다. 그러면서 몸을 느껴본다. 모든 근육과 뼈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간다. 10초 남짓 짧은 시간.
그럼에도 느낌이 야릇하다. 살아있다는 느낌. 자신의 존재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시원하기도 하고, 몽롱하기도 하다. 행복감도 밀려오고, 오늘 하루가 잘 되리라는 예감을 받는다. 분명 그 어떤 운동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황홀감이 느껴진다. 이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를 확인하게 위해 기지개를 몇 번 더 반복해본다. 의자에 앉아서 하는 기지개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몸이 가벼워진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기지개. 제대로 된 기지개는 아무래도 누운 상태에서 온몸을 뻗는 것이리라.
아기들한테 제대로 배우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기지개 동영상을 치니까 다행히 아기들 모습을 많이 올려놓았다. 내가 머릿속을 그린 기지개랑 많이 달랐다. 아이마다 몸짓도 좀 다르다. 그냥 팔다리를 죽 뻗는 아기는 드물다. 팔다리를 중심으로 모았다가 펼치기도 하고 한 팔은 가슴으로 굽히고 또 한 팔을 밖으로 펼치기도 한다. 허리를 중심으로 이리저리 몸을 비틀기도 한다. 그러다가 “응!”하며 용을 쓰기도 하고 하품을 늘어지게 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힘찬 기지개가 나오기도 한다. 아기는 이런 몸짓을 여러 모습으로 되풀이하다가 차츰 눈을 뜬다. 이렇게 하다 보니 길게 기지개를 켜는 어떤 아기는 시간이 일분을 넘길 정도.
본대로 아기들을 따라 해 본다. 다양한 동작으로 기지개를 켜본다. 점점 동작이 커지고 요상하다. 요가 동작까지 섞어가며 기지개를 켠다. 한마디로 ‘몸부림 기지개’다. ㅋㅋㅋ 그러자 느낌이 확실히 드러난다.
나 나름대로 추측해보자면 기지개 뒤에 오는 황홀감이란 온몸이 깨어나는 울림이 아닐까 싶다. 뼈 마디마디가 깨어나고 근육이 깨어남에 따라 피도 몸 구석구석을 돈다. 이는 아기가 기지개 뒤에 얼굴이 빨갛게 되는 이유가 된다. 우리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어디 얼굴만 붉어질까. 온몸에 피가 돌고 세포가 깨어난다는 걸 희미하게나마 느낀다. 손바닥이 후끈하고 찌릿한 느낌. 손바닥을 보니 살짝 땀이 비쳐 불빛에 보일 정도. 황홀감이란 바로 이렇게 온몸 구석구석 피가 돌고 세포가 깨어날 때 오는 느낌이라는 걸 알겠다.
내가 의식적으로 하는 몸짓보다 아기들 기지개는 더 오묘하지 싶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몸이 극히 부드럽다. 흉내 내는 기지개랑 또 다른 깊이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른도 바쁘게 살지만 않는다면 기지개가 주는 활력을 어느 정도는 즐길 수 있지 않겠나. 반면에 마지못해 일어나거나 일어나자마자 그날 할 일로 머릿속이 꽉 찬다면 그나마 자신에게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지개마저 잃어버릴 수밖에.
그래서인지 사전을 찾아보아도 기지개 설명이 잘못된 것 같다. 기지개란 ‘피곤할 때에 몸을 쭉 펴고 팔다리를 뻗는 것’이라고 한다. 몰론 물론 낮 동안 직장이나 학교생활로 피곤할 때면 이 기지개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기들한테 보듯이 기지개는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며, 보통은 자고 깨어날 때 켜는 걸 말한다.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몸짓인 셈이다.
기지개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잠이 깬다’는 말도 달라지지 싶다. 눈만 떴다고 잠이 깬 게 아니다. 아니, 눈보다 먼저 기지개를 통해 근육과 뼈 그리고 세포가 깨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가 된다. 아기처럼만 한다면 눈을 뜨는 순간,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곧바로 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기지개는 은유로도 많이 쓰인다.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고 할 때 '기지개를 켠다'는 은유를 쓴다. ‘봄을 위한 기지개’. ‘부활의 기지개' ’기지개를 켜는 산‘...이렇게 기지개는 좋은 느낌을 주는 우리말이다.
그런데 이 기지개는 아기들만의 몸짓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몸짓이기에 자연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고양이나 개는 물론 닭을 비롯한 조류도 기지개를 켠다. 고양이 기지개는 요가에서도 ‘고양이 자세’라는 이름으로 응용할 정도로 유명하다. 닭이 하는 기지개는 포유류와는 좀 다르다. 한 쪽 다리를 들고, 한쪽 날개를 죽 펴면서 든 다리를 날개와 일치시키는 기지개를 켠다. 나이든 고양이도 늙은 닭도 한결같이 기지개를 켠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기지개를 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나도 나이 들고 굳은 몸이지만 아침마다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기지개를 켜다보면 언젠가는 저절로 기지개가 나올까. 몸부림 기지개에서 자연스러운 기지개로. 아기들처럼 기지개만 제대로 된다면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승부에 집착하는 운동은 몸을 버리기 쉽다. 몸이 지나치게 마음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또한 재미로 하는 운동 역시 몸 자체에 집중하는 걸 방해한다. 아무래도 몸보다 마음이 앞서기 마련이다. 몸을 위한 운동이라면 마음보다 몸이 앞서야하는 게 아닐까. 부지런한 사람은 물론 게으른 사람조차 쉽게 할 수 있는 운동. 그런 점에서 내 몸에 맞는 나만의 기지개를 되찾고 싶다. 아기들은 자연. 자연은 배울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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