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노래 그림 중독, 삶의 예술

선만으로 감정을 나타내다니

빛숨 2008. 1. 24. 08:56
 

베티 에드워즈의 책을 계속 공부하고 있다. 감정을 선으로도 나타낼 수 있단다. 저자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 해본다. 먼저 도화지 한 장을 여덟 칸으로 나눈다. 칸마다 자신이 나타내고 싶은 감정을 적는다. 슬픔, 노여움, 기쁨, 평화, 힘, 병, 여성다움, 사랑, 자유...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된다.

 

이를 오직 선으로만 그려보는 거다. 되도록 눈에 보이는 사물의 형상이 아닌 단지 선만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그런데 연극 배우가 연기에 몰입하듯 감정을 불러일으킨 다음 떠오르는 대로 그렸다. 화가 난 순간을 떠올리면서 연필이 가는 대로 그렸다. 평화 역시 마찬가지.

 

빈칸을 모두 채우고 나서 다시 보니 새롭다. 감정이 선만으로 나타난 거다. 감정마다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예전에 만다라를 그리려고 해도 잘 안 되었는데 이렇게 하니 한결 쉽다. 책에 나와 있는, 다른 사람이 그린 감정 그림을 보면서 내 것과 견주어 본다. 이것도 새롭다. 단지 선 만으로 감정을 다양하게 나타내다니 선뜻 믿기지 않는 현실이 눈앞에 있다.

 

조금 흥분되어 식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재미있다고 해보겠단다. 이 때 다른 사람 그림을 안 보는 게 좋다. 이 글에서도 내가 그린 감정 그림을 올리지 않는다. 미리 남 그림을 보면 그 이미지가 굳어져 자기만의 이미지가 나오는 걸 방해하기 때문. 자신만의 고유한 선이 나올 때 이를 서로 견주어 보니 좋다. 나랑 아내와 닮은 점, 같은 점을 견주어 보고, 아이들은 아이들 만의 감정 그림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하고 났더니 내 생각이 다시 확장된다. 사람이 감정을 나타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말로도 하고, 몸으로도 나타내며, 소리로도 나타낸다. 나 같은 경우 노래는 주로 슬플 때, 운동은 억압이 있을 때, 춤은 환희, 말은 자잘한 일상의 감정을 나타낼 때 나온다. 그런데 그 모든 감정이 선 하나만으로 드러난다는 게 참 인상 깊다.

 

그렇다면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본다. 우리 몸짓 하나하나가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지 않겠나. 선으로 그리는 행위 역시 사람이 하는 작은 몸짓에 불과하다. 좀더 큰 몸짓인 운동이나 춤은 그 변화폭이 더 클 것이다. 같은 춤이라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춤이 있을 테고 격렬한 춤이 있으니까.

 

선으로 감정을 나타낼 수 있다면 반대로 읽을 수도 있지 않겠나. 누군가 만든 모든 물건에도 나름대로 선이 있고, 그곳에는 감정이 들어있는 셈이다. 가까이 건축, 조각, 그릇은 물론 손으로 쓴 글씨 그 자체 모양에도 감정이 담겨있다. 글씨가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글씨 자체가 예술임을 보여주는 사람, 이를테면 신영복 선생이나 판화가 이철수 같은 분들. 아이들이 무심코 그리는 낙서도 나름대로 예술일 수 있다. 그 아이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문이 된다.

 

예술을 폭넓게 정의한다면 삶이 예술이듯 모든 선도 그렇지 않을까. 삶이 아름답다면 그 어느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까. 뭔가를 만드는 행위는 창조이자 예술이 된다고. 자신이 하는 순간의 행위들이 예술이라고 자각한다면 우리네 삶도 좀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요리 하나도, 글쓰기도, 말하기도, 듣기도 예술이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선으로 감정을 그리기. 눈으로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그린다고 하지만 이미 그 순간에 감정과 엉겨있는 셈이다. 이는 사진에서도 느끼는 바다. 사물이 객관적으로 앞에 존재하지만 셔터를 누르는 순간, 어떤 느낌으로 찍었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진다.

 

우리네 감정은 한결 역동적이고 복합적이며 살아 움직이는 그 무엇이다. 솟아나는 감정을 잘 흐르게 하자. 그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그냥 흘리지 말고 틈틈이 그려보아야겠다. 그런 점에서 그림도 감정을 흐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하다보면 남들이 이룩한 예술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