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자신을 살리는 길, 지구를 살리는 길?

모두 빛 2008. 6. 17. 21:26
 

요 며칠 이러저러한 손님을 치루면서 교육 관련 글을 하나 정리할까 한다. 선우라는 아이는 초등 2학년. 우리 집에 오자 이것저것 의욕이 넘친다. 뽕나무에도 올라가고 싶어 하고, 냇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싶고...

 

같이 오디를 따다가 선우가 하도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하기에 내가 물어보았다.

“선우는 모든 걸 다 좋아하는 거 같아. 하기 싫은 게 없는 거 같은 데. 맞어?”

“있어요. 공부!”

 

완전히 한방 먹은 기분이다. 하필 공부라니. 그러나 앞뒤 정황을 이해하면 아이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다보면 공부가 좋을 수가 있을까.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을 때 해야 즐겁고 기쁘다. 자신이 주도할 때만이 배움은 기쁜 것이다. 교사가 주도하고 부모가 잔소리해서 하는 공부는 즐겁기가 어렵다. 배움이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 된다.

 

내가 아는 교사 가운데 행복한 교사가 그리 많지가 않다. 처음 시작은 어떤 지 몰라도 입시위주 교육을 오래하다 보면 처음 가졌던 열정과 기쁨이 서서히 사라진다. 참교육을 위해 혼신을 다한 교사들조차 적지 않는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힘들어한다.

 

행복한 교사가 행복을 가르칠 수 있다. 행복은 느낌이다. 먼 미래에 언젠가 오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서 느끼는 느낌. 먼 미래를 향한 계획으로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오래가기 어렵다. 자기 최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면서 최면이 깨어나면 다시 최면을 걸게 된다. 점점 최면은 자기기만으로 바뀌기 쉽다. 느낌으로는 행복하지 않은데 관념으로는 행복할 거라고 자신에게 다짐을 한다. 그러다 보면 솔직한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을 잃어버리면서 오는 영향은 공부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일상 구석구석, 삶의 근본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의식주조차 그렇게 바뀐다. 일어나라 해서 일어나고, 먹어라 해서 먹고, 자라고 해서 잔다. 생명 활동의 가장 밑뿌리마저 스스로 하지 못하는 건 결코 행복한 삶, 행복한 배움이라 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촛불 문화제때 나온 구호 가운데 하나가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였다. 그만큼 절박하다. 먹는 걸 스스로 하지 못하면 싸는 것조차 스스로 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게 오래 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을까.

 

반면에 자신이 주도하면 즐겁다. 몰입이 되고 배우는 게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이 다음에 자신이 하는 일도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찾게 되리라 본다. 서연이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아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식구랑 인연이 맺어지면서 우리가 낸 책을 두 권이나 샀단다. 그런데 책을 받자마자 아이가 연거푸 두 권을 다 읽었단다. 엄청난 집중이요, 몰입이 아닌가.

 

사실 <아이들은 자연이다>를 어른이 볼 경우 생각할 거리들이 많은 지 쉽게 다 읽어내는 사람이 드물다. 읽다가 뜸을 들이고, 자신을 돌아본다. 어른들은 두려움도 많고 상처도 적지 않다. 그러나 상처가 적은 아이들은 쉽게 읽어낸다. 자신도 탱이 언니처럼, 또는 상상이처럼 할 수 있다고 쉽게 마음을 먹게 된다. 아니, 다른 아이랑 견줄 것도 없이 자신만의 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친구가 하는데 나라고 못 할 게 없으리라. 아이들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에 두려움이 적다. 책에 몰입을 했다는 건 그만큼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생명 교육은 몰입에 있지 않을까. 몰입은 대상과 하나됨을 뜻한다. 책과 하나 되고, 삶과도 하나 되며, 책을 읽는 자신과도 온전히 하나 되는 것. 자신이 주도할 때 몰입은 지속되고, 다양하게 갈래를 뻗어가는 게 아닐까.

 

설사 자신이 주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쉽게 견딜 수 있다. 같은 어려움이라도 남이 시켜서 하는 것과 자신이 선택한 것과는 천양지차. 남이 시켜서 겪는 어려움은 자기분열이 되기 쉽다. 반면에 자신이 선택한 어려움은 적절한 자극과 도전정신을 일깨우게 된다.

 

홈피 회원인 고트라님은 우리가 낸 책을 ‘지구를 살리는 책’이라고 극찬을 해 주셨다. 황송한 칭찬이라 기분이 뽕간다. 사실 지난번 한겨례 기자가 왔을 때도 그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이들이 자신이 주도해서 공부를 해 간다면 에너지 낭비를 엄청 줄일 수 있지 않겠냐고.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나아갈 수 있다면 대부분의 학원이 별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교사도 극히 제한적으로만 남게 되지 않을까. 상처받은 아이들이 치유되는 과정 또는 자기주도력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그 힘을 되찾아주는 학교만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또 가정이 아이들에게 쏟는 에너지가 지나치게 낭비되는 건 아닌지? 또 그 여파가 긍정적으로 나아가기보다 아이들에게 자칫 상처를 주는 건 아닌지? 지구를 살린다는 거창한 생각보다 바로 내 아이,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고 싶다.

 

나를 살리고,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 진정 지구도 살리는 길이 아닐까. 경쟁 교육이 아닌 자기 빛깔을 드러내는 교육. 모든 아이들이 자기빛깔을 찾아갈 때 우리 지구별은 더 아름답게 바뀌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