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 안 주인과 함께
일본식 난방 장치인 코타쯔
나는 머리털 나고 외국을 처음 가보았다. 짧지 않은 7박 8일을 열여덟 사람들과 함께 다녀왔다. 정부에서 경비를 70% 지원하는 친환경 농업연수다. 일본을 거쳐 중국으로. 새롭게 본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지만 아무래도 내가 실수한 것들, 몰라서 덤벙된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몇 가지 떠오른 걸 나열해본다. 요즘은 해외 나가 보지 않은 사람들이 드문 것 같다. 경험이 많은 분들은 그냥 귀엽게 웃어주시고, 아직 외국을 나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귀중한(?) 정보가 되면 좋겠다.
-어마어마한 인천 국제공황 : 전주에서 모여 인천국제 공황에 새벽에 도착. 수속을 마치고 탑승 대기 시간이 한 시간쯤 주어졌다. 각자 외국으로 나가기 전에 볼일을 마저 보는 시간. 국제공황에 대해 조금이나마 적응을 하고자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인터넷에 접속하여 메일을 검색하고, 몇 가지 여행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시간이 15분 정도 남았다.
이 정도면 게이트까지 나가는 데 충분하다고 믿고, 천천히 게이트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내가 들어가야 하는 11번 출구가 보이지 않는 거다. 점점 초조하다. 방향을 보고 달린다. 시계를 보니 5분 남았다. 아직도 어디가 출구인지조차 모르는 초조함. 더 기가 막힌 건 게이트 번호를 따라 뛰는 데 점점 숫자가 낮아지더니 그냥 끝이 나는 거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가까이 있는 점원에게 물으니 가르쳐 준다. 한국이니 다행이었지 언어가 서툰 외국이라면 완전히 해멜 뻔 했다. 그러니까 큰 덩치 게이트 번호가 있고 작은 단위로 출구가 갈라지는 거다. 남은 시간은 이제 2분. 다시 뛴다. 15, 14, 13. 이제 다 왔나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10과 11번은 다시 아래층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했다.
드디어 출구에 도착하니 1분 전. 그런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거다. 모두 다 탑승을 했나? 게이트 앞에 서 있는 직원에게 어찌 된 건 지 물었다.
“시간이 안 되었으니 잠시 기다리세요.”
“휴!”
내가 가장 먼저 온 거였다.
-첫날밤은 일본 홋카이도 지역 아지무라는 마을에서 민박을 했다. 우리로 치면 녹색체험마을 비슷하다. 저녁을 먹고 서툰 언어와 몸짓으로 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휴식시간, 내가 인터넷을 하고 싶다 했다.
주인이 컴퓨터를 켜 준다. 그런데 맙소사, 이건 우리나라 몇 년 전 속도다. 모뎀으로 하는 지 하염없이 느렸다. 간신히 메인 화면만을 보고 아주 간단히 집에 안부 인사만 써야했다. 그런데 정작 더 문제는 아무리 해도 영어 자막으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타자를 영어로 치다보면 금새 히라가나라는 일본어 자막으로 바뀌는 거다. 부랴부랴 주인을 불러 도움을 청했다. 알고 보니 일본어는 변환장치가 되어있는 거다. 히라가나와 가나가나를 두루 섞어서 써니까 그렇다는 거다. 이걸 알고나니 그 다음부터는 인테넷으로 메일을 주고 받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런 건 미리 알고 가면 아주 간단하다. 참고로 일본 호텔은 인터넷 시설 잘 되어있다. 전용 부스에 컴퓨터가 두 세대 비치 되어있고, 한국 여행객이 많은 곳은 아예 한글 폰트를 깔아놓은 곳도 있다. 돈은 100엔(우리 돈 800원정도) 동전을 넣으면 10분 사용할 수 있다. 오래하고 싶으면 처음부터 동전을 넉넉히 넣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몰입할 수 있다.
알아야 면장을 하고, 알아야 소통이 된다.
-첫 날 민박을 했기에 칫솔과 치약을 가져갔다. 그 다음부터는 호텔에 투숙. 치약과 칫솔이 준비 되어있었다. 당연히 호텔 것을 쓴다. 그런데 자그마한 치약 뚜껑을 열었는데 구멍이 막혀있다. 이리 저리 둘러보아도 구멍을 뚫을 무엇이 없다. 룸메이트에게 묻기도 창피하여 내 장점을 살렸다. 어금니로 입구를 비틀 듯이 물어뜯었다. 들짐승이 먹이를 찢는 기분으로. 그랬더니 조금 찢어지면서 치약을 짤 수 있었다.
그런데 호텔마다 이 치약이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뚜껑을 열고 그 뚜껑 끝으로 치약 입구를 살짝 찔러주면 된단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게 아니라 이빨이 고생한다.
-호텔 키도 문제다. 대부분 키가 은행 카드식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 카드를 문 앞에 꽂으면 열게 된 것이 있고, 어떤 건 그렇지가 않았다.
키를 꽂고 아무리해도 문이 열리지 않아 두리번 거리니 바로 옆에 설명서가 있다. 중국어 영어 불어로 되어있는데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는 게 영어. ‘카드를 넣었다가 빼세요. 그 다음 레버를 옆으로 돌리세요“ 정도가 읽힌다. 나중에 나처럼 문을 열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누군가가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카드를 살짝 꽂았다가 뽑을 때 작은 창에 파란 불이 잠깐 들어와야 방 주인임을 알아본다는 거다.
모르면 내 돈 내고도 방주인 되기가 어렵다.
-토끼 똥. 첫날은 어리바리 보내고 긴장을 했는지 둘째 날은 똥이 토끼 똥이다. 보통 똥은 한 뼘 정도 길이에 노란 빛에 점성이 적당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긴장을 많이 하면 똥이 딱딱해진다. 한 덩어리씩 끊기는 것도 짧아진다.
그래서인지 둘째날 아침 똥이 가장 딱딱했다. 손가락 마디정도 굵기 똥이 조각조각 뭉쳐 나오는 거다. 빛깔도 검은 빛에 가깝다 힘을 주어야 하고, 누고도 뒤가 개운하지가 않았다.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뭔가 일을 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똥을 눈 거다. 똥을 다 누고 나서 이런 똥을 눈 내 처지가 갑자기 슬펐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더니 똥이 그걸 말해주는 거다. 그러다가 점점 나아지다가 돌아오기 이틀 전부터 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외국에서도 늘 내 집처럼 편안하게 보내할 텐데. 아직도 갈 길(道)이 먼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외국 여행에 가장 큰 결점은 아무래도 언어다. 나로서는 정말 젬병이다. 영어는 조금 읽을 줄 아는 정도, 일본어는 기초인사말을 프린트해 갔다. 문제는 현장에 맞게 소통해야하는 것. 중국 상하이에서 칭다오로 넘어가는 비행기 안. 한참 상공을 달리다가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을 찾아 문을 열려고 하니 안 된다.
안내원에게 물었다. “Toilet?" 남자 승무원이 뭐라고 하는 데 비행기 소음도 심하니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거다. 그 사이 화장실 문이 살짝 열리며 사람이 나온다.
승무원이 말한 내용은 “Wait!”
누군가 한 말이 한참을 지나서, 귀에 들리는 아주 색다른 경험을 했다. 생각이 언어로 표현되는 것도 동시적이지 않지만 말과 말도 동시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또 하나의 보기. 마지막 아침을 칭다오 호텔에서 먹었다. 뷔페식으로 잘 먹고는 후식으로 과일을 먹고 싶은데 찾지를 못했다. 둘러보다가 용기를 내어
“fruit?”
그랬더니 주방 서빙하는 사람이 모르는 거다. 한번 더 그랬더니 주방 고참을 불러준다. 그래도 소통이 안 된다. 에이, 안 먹고 말지. 그런 생각으로 구석으로 돌아오니 바로 가까이에 귤이랑 사과 파인애플이 있는 거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눈이라도 밝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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