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몸 공부, 마음 이야기

농사일을 줄이자, 돼지감자 심기

모두 빛 2007. 5. 14. 04:10


나이가 들어가는지 지난해 농사를 그대로 하기가 버겁다. 논두렁을 깎아 다 바르고 나니, 손목이 결린다. 우리가 짓는 농사가 논밭 합쳐 얼추 1500여 평. 마음 같아서는 1000평쯤만 짓고 싶다.


같은 평수라도 산골과 들판이 다르다. 산골은 풀과 나무가 많고 짐승 피해도 심하다. 또한 기계나 비닐을 쓰느냐 안 쓰느냐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있다. 트랙터로 만 평 밭을 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비닐 안 쓰고 밭에 쪼그리고 앉아 1000평 김매는 일은 쉽지 않는 규모가 된다.

올해는 작은 뙈기밭 하나를 아이들 농구장으로 했다. 농사를 크게 줄이자고 해마다 다짐을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뙈기밭 말고도 100평 더 줄이고 싶은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반대다. 자신들이 지난해보다 농사를 더 많이 하겠다고.

봄이 깊어지면서 아이들 나름대로 열심히는 한다. 하지만 100평 밭은 적지 않는 크기다. 지난해 열 평 하던 농사를 갑자기 그 열배로 늘리기는 어렵다. 김을 한 번 매주었지만 자꾸 풀이 올라온다.

고민을 하다가 아내가 돼지감자를 심자고 한다. 돼지감자는 한번만 심어두면 다년생이라 해마다 저절로 자란다. 가끔 김만 매주면 된다. 돼지감자가 왕성하게 밭을 차지하게 되면 풀도 적게 난다. 밭 둘레로 야금야금 올라오는 칡덩굴만 처 주면되지 싶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모종 값이 장난이 아니다. 40키로 한 상자에 20만원이란다. 요즘 햇감자 20키로 한 상자가 얼마인가. 상품에 따라 값이 여러 가지이지만 3만원을 넘지 않는다. 모종이 아닌 식용 돼지감자는 3만원이 넘는다. 그렇다고 종자 값을 들여 언제 다시 돈으로 순환할지가 아득하다. 모종 반 상자만 알아보니 그렇게는 팔지 않는단다.

다시 궁리를 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는 산골에 묵은 밭이 있다. 가끔 그곳에서 돼지감자를 캐다가 먹은 적이 있다. 그곳을 가 보기로 했다. 차를 타고 간 그 곳에는 돼지감자가 많았다. 무리지어 자라니 작은 풀도 없다. 삽으로 푹 떠, 잡히는 대로 설렁설렁 모종을 캐왔다.

저절로 자란 걸 알뜰히 캔다면 죄짓는 느낌이 든다. 잠깐 사이 20키로쯤 캤다. 엉뚱하게 머리가 돌아간다. 순식간에 10만원을 벌은 셈인가.  
손에 돈을 쥔 건 아니지만 우리 식구는 기분 좋게 돌아왔다. 해거름에 식구 모두가 돼지감자를 심었다. 내년에는 모종을 더 많이 하여 규모를 늘리면 되겠다.

이제는 돼지감자가 빛을 보는 세상이다. 당뇨에 좋다고 하여 약용으로 많이 팔린다. 요리법도 많이 개발되어 쉽고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농사 규모는 줄이지 않으면서도 농사일은 줄이게 된 셈이다. 나이에 맞게 농사일을 해나가는 게 참다운 지혜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몸을 너무 많이 썼으니까 이제는 몸을 아껴야한다. 머리 쓰는 일도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