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살다보면 손님을 많이 치르게 된다. 자연과 멀어져 사는 도시인들에게 시골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연에 다가가는 징검다리가 되나보다.
우리 집에 며칠 전부터 어린이 손님이 와 있다. 저 멀리 울산에 사는 수연이. 수연이는 12살 여자아이. 학교를 계속 다닐지 아니면 홈스쿨링을 할지를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집을 찾아, 자기 길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 싶은 거다.
그런데 수연이는 그 먼 길을 혼자서 버스를 타고 왔다. 서울이라면 한 번에 오는 차기 있지만 지방에서 지방을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그것도 울산에서 무주 오는 길이 어디 만만한가. 나는 우리 상상이가 혼자서 면 소재지를 나서기만 해도 마음이 쓰이곤 하는 데 수연이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연이가 우리 집에서 지낸지 사흘째, 오늘은 수연이네 식구가 다 온단다. 수연이 진로와 집짓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그런데 아내가 또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평화 아빠, 재형씨다. 지금 무주 가까이 와 있는데, 이날 오후 3시쯤 우리 집에 들르겠단다.
이런 일을 가끔 겪다보면 손님이 특별히 많이 몰리는 날이 있다. 약속과 상관없이 오기도 하고, 미리 먼저 온 손님이 있는데도 또 온다. 아침을 먹고 치우고 있는 데 전화가 또 따르릉!
“여보세요”
“저, 손별인데요. 형아 집에 놀러가도 되요?”
이웃집 아이다.
“응? 좀 있으면 손님이 여럿 오니까, 오래 놀기는 어려울 거야”
아이 손님도 손님이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별이가 동생을 데리고 나타났다. 날이 무더워서인지 집안에서 놀았다. 상상이랑 한참을 놀더니 돌아갔다. 점심때가 지나자, 이번에는 수연이네 식구가 도착. 수연이네는 아이가 셋. 막내가 두 돌이 갓 지났다. 3년 전에도 수연이네가 우리 집에 왔었는데 그 사이 듬직한 막둥이가 새로 태어난 거다.
오랜만에 거실에 선풍기를 돌렸다. 둘러앉아 이야기를 좀 하다가 수연이 아빠가 같이 일을 하자고 해서 낫을 챙겼다. 숫돌에다가 낫을 갈고 있는데 재형씨가 도착. 재형씨는 정말 오랜만이다. 한 오년 만에 보나? 일손을 놓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재형씨는 수연이네하고도 잘 아는 사이다.
재형씨는 예전에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 운동’을 주도한 적이 있다. 그 이후는 보따리 학교를 꾸려 한시적인 체험학교를 해왔다. 지금은 강화 마리학교 기획교사로 있단다. 최근 근황을 나누고 나자, 나보고 장계에 사는 전희식씨네로 오란다. 다음날 그 집에서 어머니를 위한 잔치가 있다고. 장계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는 곳이다.
그러고 나서 재형씨가 탱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탱이 방으로 가자, 나와 수연이 아빠는 마당에 널린 참깨를 털었다. 둘이서 일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데 굵은 목소리가 들린다.
“광화형! 오이 있어요?”
여기 이웃인 정수 아빠다. 정수 아빠는 정수도 그렇지만 넉살좋고 재미있는 이웃이다. 이 날은 오이 찾아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 집까지 온 거 자체도 재미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먹을 텐데 그 사연을 듣고 보니 코끝이 찡하다.
“손님이 왔는데, 오이냉국이 먹고 싶다 잖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우리 집에 넘치는 게 오이다. 아내가 몇 개를 따 주니 다시 바람처럼 사라진다. 조금 있다가 재형씨도 떠나고 다시 수연이네 식구랑 저녁을 준비해서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를 돌아보니 이 날은 종일 손님이다. 아이가 칭얼댈 때는 조금 정신이 없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름 재미있고,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건 손님이 이상하게 몰리는 날이라는 거.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손님이 몰리다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확실한 건 손님마다 온 목적이 크든 작든 우리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리고 더 신기한 건 온 손님끼리 서로 잘 아는 사이라는 것. 수연이가 보따리 학교를 두어 번 다닌 적이 있어, 수연이네 식구와 재형씨는 잘 아는 사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지도 않게 우리 집에서 우연히 만난 거다. 참 묘한 만남이지 않은가.
이렇게 나를 찾는 손님이 많은 날은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도시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집으로 손님이 찾아오는 법은 없다. 요즘은 백일이나 돌잔치도 대부분 외식을 하지 않나.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이 달라진 거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 자신도 자연의 한 부분이 된 걸 느낀다. 손님들이 와서는 놀다가, 일하다가, 쉬었다가, 이야기도 나누고 간다. 그런 힘이 가능한 건 우리가 자연에 기대어 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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