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자연과 하나 되기

여기는 또 다른 내 고향

모두 빛 2007. 9. 24. 10:11

 

 어제 저녁 이곳 이웃들과 흥겹게 놀았다. 워낙 여러 사람과 여러 시간을 놀았더니 이를 글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글 가는대로 적어본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이웃인 정수 아빠가 한번 모여 놀자 하면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추석 명절을 쇠러 가지 않는 이웃도 있고 하니 겸사겸사해서 어울리기로 했다. 이럴 때 어려운 점은 누구는 오라고 하고 누구는 연락을 안 하는 일이다. 마을 사람을 다 부를 수는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만나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정수네와 현빈이네가 네 시쯤 우리 집으로 왔다.

 

정수네서 제주도 산 돼지고기와 술을, 현빈이네서 삶은 밤을 잔뜩 가져왔다. 아내가 수제비를 끓이는 동안 밤을 나누어 먹었다. 아이들이 일곱이나 되니 그 많은 밤을 잠깐 사이 거의 다 먹어간다. 정말 먹성 좋은 아이들이다.

 

점심겸 저녁을 먹고는 고기를 굽는 일은 아내가 현빈이에게 맡겼다. 집안에서 고기를 구우면 냄새가 배니까 마당에서 하자고 했다. 현빈이는 흔쾌히 하겠단다.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일회용 가스버너로 고기를 굽는다. 밥상을 커다란 평상에 올려놓고 음식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내가 키우지 않는 고기는 먹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제주도 돼지고기라 맛이 특별하다는 말에 맛을 보았다. 맛있다. 오랜만에 돼지고기를 몇 점이나 먹었다.

 

사람이 많다 보니 고기와 술이 금방 바닥이 났다. 아내가 차를 몰고 면에 나가 더 사왔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를 색다르게 놀 기회로 삼는다. 모두 다 자전거를 타고, 고기 사오는 내 아내를 마중나간다고 길로 나섰다. 남은 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연로한 노인들 모시는 이야기, 골프장 기업도시 문제...

 

그런데 또 다른 손님이 왔다. 바로 우리 옆집에 사는 이선생이다. 추석에 집을 비워야한다고 냉장고에 남은 고기를 두어 근 주신다. 잠시 후에 아내와 아이들이 들이닥친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일 키로 미터나 되는 윗마을까지 갔을 때, 그곳에서 돌아오는 아내를 만났단다. 그 다음은 승용차와 시합을 하듯 자전거를 달려왔다. 아이들 모두가 거친 숨을 몰아쉰다. 정말 싱싱한 아이들이다. 

 

그리고 배가 고프니 또 얼마나 잘 먹나. 조금 있다니 옆 집 별이가 아빠 손을 잡고 나타났다. 멀리서 아이들 소리를 듣고 별이가 소리 찾아 온 거다. 자연스럽게 별이네랑도 어울렸다. 점점 놀이판이 커진다. 네 집 식구에 열 댓 사람이나 된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전혀 생각지도 않은 손님도 왔다. 우리 사는 곳에서 30분쯤 걸리는 죽도에 사시는 죽도뜰 부부다. 이 부부는 우리보다 10년이나 연상인데 이러저런 인연으로 가끔 만나는 사이다. 우리 집 근처로 능이버섯을 따러온 김에 선물을 들고 왔다. 예전에 우리가 이분들 시골집을 팔아주기도 했고, 인터넷으로 필요한 책을 사주기도 했다. 집에서 손수 양봉을 하신다고 밤 꿀을 한 통 주신다.

 

이럴 때 어떤 기운이 느껴진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 어떤 우주적 기운이라고 할까. 모여보자는 작은 의지가 우주와 연결되는 그런 느낌이다. 이웃이 모이고 아이들이 모이고 먼 이웃까지 기운이 모인다. 자연스럽게 모이면서 뭉치고 커지는 그런 기운. 별 다른 말이 없어도, 약속한 게 아니어도 모이게 된다.

밤이 어두워지면서 아이들은 더 신이 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랩을 부르고, 애국가를 부르며, 주몽을 패러디한 한국을 살린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아내가 장구와 북을 내어놓자, 아이들이 서로 해 보겠다고 달라 든다. 별이 아버지에게 리듬과 장단을 배우고 즉석에서 배운 대로 흥을 돋운다. 

마당을 휘어잡으며 실컷 놀던 아이들이 이제 어른들보고도 노래를 하란다. 신명이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 요구에 답을 한다. 그러면 또 아이들이 이어서 노래하고 춤을 추고. 뛰고,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이야기하고...

 

오늘 모인 이웃들은 사실 형제보다 더 가깝다. 사촌이나 조카들보다 더 가깝다. 더 자주 보고, 더 자주 어울리고,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이 이해한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형, 누나, 언니, 오빠다. 어른들을 부르는 호칭도 아줌마, 아저씨라고 하는 데 이 말을 아이들에게 직접 들으면 얼마나 친근한지 모른다. 엄마 아버지라는 말 다음으로 살갑게 들린다.

 

어느새 밤 8시가 넘어 깜깜하다. 이제 놀만큼 놀았다. 자려들 갈 시간. 이웃들이 함께 먹었던 그릇과 놀던 자리를 말끔히 치워준다. 이웃들을 배웅하고 나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사이 달빛이 슬쩍 비친다. 고향은 태어나서 자란 곳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행가 가사에도 있듯이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말처럼 이웃과 점점 정이 깊어진다. 여기는 또 다른 내 고향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