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니?
내가 어릴 적 너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지.
너를 생각하면 괜시리 어머니가 생각나며 가슴이 싸하게 아팠었어.
내 머릿속에 너랑 어머니는 언제나 함께 떠올랐지.
너를 생각하면 어머니가 떠오르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네가 떠오르고, 그렇게...
내가 도대체 몇 살이나 되었을 때 일까? 그건 모르겠어.
아무튼 그 날은 집에 아버지랑 큰언니, 오빠 등등 몇 식구가 빠졌던 것 같애.
아마 더운 여름날이었을 거야.
아주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지.
그런 분위기와 함께 어머니와 작은언니, 그리고 나. 그렇게 달랑 셋이서 밭엘 갔던 것 같애.
오전에 밭에서 김을 맸지. 이상하게 그날은 밭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지도 않았던 것 같고
어쩐지 어머니가 참 외롭고 쓸쓸해 보였어. 그런 느낌 때문이었는지, 다른 식구들이 많이 빠져서 그런지,
언니나 나나 다른 때처럼 수다를 떨지 않고 조용하게 입을 다물고 일을 했지.
지금도 그 날의 느낌이 기억나.
그 날의 바람결, 그 날의 햇살, 그 날의 새소리, 그 날의 흙의 느낌, 그 날의 공기 중에 감돌던 야릇한 감정..
어느 정도 김을 맸을까. 어머니가 밥을 먹자고 하시는 거야.
그리곤 가지고 온 도시락을 꺼내셨지.
조촐했어. 다른 때처럼 식구들이 많지도 않았고 반찬투정이 제일 심했던 아버지가 안계시니 어머니는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신 것 같아.
멸치볶음에 김치, 달걀후라이, 그리고 된장.
셋이서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지.
어머닌 우리 앞으로 반찬들을 몰아 주시고는 먹어라 하셨지.
그런데 먹으면서 보니 어머니는 우리가 가지고 온 반찬을 하나도 안 드시는 거야.
바로 앞에 있는 너를 한 잎 뚝 떼어서는 된장에 싸서 드시는 게 아니겠니?
허걱, 내가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어머니가 염소처럼 밭 한구석에 앉아 풀잎을 뚝 떼어 드시다니....
그게 너무 이상했어. 이 풀잎이 정말 먹는 풀잎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보다 더 드는 생각은
'우리가 이렇게 가난한 집일까?' 하는 거였어. 얼마나 가난했으면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풀잎을 떼어 드시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마구마구 머릿 속에서 오락가락 했지.
난 내가 그렇게 부유하진 못해도 또 그렇게 가난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지냈거든.
그럭저럭 우린 잘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확 뒤집어 놓은 거야, 바로 너와 어머니가.
그때 어머니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지며 내 앞에 있던 멸치볶음을 어머니 앞으로 쑤욱 밀었어.
'어머니, 불쌍하게 이상한 풀 먹지 말고 이 맛난 멸치볶음 좀 드시와요~~' 하는 마음을 담고.
근데 어머니가 그러시는거야. "니네나 먹으라~." 그리곤 다시 멸치볶음을 우리 앞으로 밀어 주시곤
다시 너를 뚝 떼어 된장쌈, 다시 또 너를 뚝 떼어 된장쌈..
그때 어머니와 네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는지 몰라.
풀잎을 뚝 떼어 드시는 어머니도 이상했고 나에겐 그냥 풀처럼만 보이는 것이 먹을 수도 있는건가 싶은 의구심에 또 이상했고.
아무튼 그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가 봐.
그 때 너를 뚝 떼어 된장에 쌈을 싸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가슴에 콕 박혔거든.
그리고 그 모습은 오랫동안 알 수 없는 빚을 진 자의 마음을 갖게 했어.
어쩐지 어머니에게 빚을 진 것 같은 느낌.
우리를 위해서 어머니는 먹고 싶은 멸치볶음을 꾹 참고 계신다고 생각을 했던 거야.
마치 '맛 난 반찬은 너희나 먹어라. 난 이 풀잎이나 먹으면 된다.' 하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았거든.
그때 어머니가 멸치볶음을 조금이라도 드셨더라면 덜 했을텐데...
그런데 말야,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어.
사실은 니가 얼마나 맛있는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았거든.
요즘 너를 아주 맛나게 먹으며 어머니를 생각해.
어머니는 그때 니가 좋아서, 니가 너무 맛있어서 그렇게 드셨던 것 뿐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 빚을 졌던 느낌에서 벗어났어. ㅎㅎ 웃음까지 나오지 뭐야.
다행히 우리 애들이 너를 참 좋아해. 그래서 가끔 니가 생각나면 아이들이 말을 하지.
"엄마, 콩잎 없어?" 하고.
그럼 나는 얼른 대답해.
"따 오면 있지~!"
"좀 따다 주라~"
그러면 나는 신이 나서 너를 찾아가지. 그리곤 어릴 때 봤던 어머니처럼 너를 뚝 뚝 떼어 내서는 가지고 와. 그리곤 설렁설렁 물에 씻는 듯 마는 듯 그렇게 씻은 후 맛나게 먹지.
ㅋㅋ 너~, 정말 고소하고 맛있어.
콩잎, 너 많이 기다렸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쌈채소 거든?!
적어도 우리 애들은 어릴때 나처럼 너를 보며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싶어.
너 많이 많이 먹으며 그 빚을 졌던 느낌에서 더 많이 벗어나고 싶어.
에구, 어머니도 참..... 니가 그렇게 맛있다는 걸 그때 왜 안가르쳐 주셨을까?
ㅋㅋ 맛 난 것 혼자 드시고 싶었던 걸까? 괜시리 어머니가 얄미워지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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