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새벽 다섯 시. 잠에서 깨어 마당에 나서니 새소리가 묘하다. 멀리서 쏙독새가 운다. 쏙 쏙 쏙. 올해 들어 처음 듣는 소리다. 쏙독새는 여름 철새라고 하는데 여름으로 접어드나. 어제는 검은등뻐꾸기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그저께는 뻐꾸기 소리도 들었다. 날씨가 부쩍 따뜻해지니까 여름 기운을 새들이 먼저 아나보다. 오줌을 누면서 들으니 새벽 공기를 가르는 새소리가 더 많다. 소쩍 소쩍 소쩍새가 운다. 호랑지빠귀는 삐이삐이 애잔하게 운다. 검은등뼈꾸기는 밤낮이 없나 보다. 들리는 방향도 가지가지다. 쏙독새와 검은등뻐꾸기는 서쪽이다. 북동쪽 산 계곡에서는 호랑지빠귀. 남동쪽에서는 소쩍새가 운다. 마치 서로의 영역을 약속이라도 한 듯하다. 가만히 듣다 보면 집 뒤 북쪽에서도 무슨 새가 울 것 같다. 부엉이가 울지 않을까. 귀를 쫑긋 새우자 부엉이 대신에 닭장에 수탉이 외친다. “꼬끼오” 그렇지 너도 새로구나. 어쨌든 새벽에 부드러운 공기와 고요함을 뚫고 울어대는 새소리. 산골 생활 십년 사이 새소리를 많이 안다. 처음 이 곳으로 왔을 때가 떠오른다. 이맘때 새벽이면 깨어나 일을 하는데 새소리가 있다. 삐이 삐이 삐이이. 가늘고 애잔하게 가슴을 흔든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 자리 잡고자 몸부림칠 때라 이 소리가 얼마나 내 가슴을 파고드는지. 이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새 이름을 알 수가 있나. 도감을 찾아도 글로 쓰여진 소리랑 직접 듣는 소리랑은 너무 다를 때가 많다. 뻐꾸기나 까치 꿩 따위들은 새이름과 새소리가 비슷하다. 그러나 많은 새들이 전혀 그렇지 않다. 검은등뻐꾸기도 벙어리뻐꾸기도 울새도 박새도. 새이름과도 다를 뿐만이 아니라 도감에서 글로 보는 것과 직접 듣는 것은 다르다. 눈과 귀가 다른 것처럼. 그러다가 마을 두레일인 보메기를 할 때였다. 마을 어른들과 우루루 일을 하다가 쉴 틈에 호랑지빠귀에 대해 물어보았다. “새벽이면 구슬프게 삐이삐이 하며 우는 새가 무슨 새입니까?” 그러자 광희 형님은 “글쎄, 우리는 맨날 들어도 무슨 새인지 몰라” 그런데 곁에서 듣고 있는 영기 할아버지가 “그거 새벽새 아닐까. 새벽에 우니까 새벽새지.” 할아버지에게 내 고민이 읽혔나 보다. 그 말이 참 좋았다. 새벽새. 그리고는 다시 세월이 흘러 그 새가 호랑지빠귀라는 걸 알았다. 현암사에서 << 정말 우리가 알아야할 우리 새소리 백가지>>라는 도감을 새로 내었다. 여기에는 cd가 첨부되어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얼마나 이 도감이 고마운지 몰랐다. 해마다 봄이면 이 책을 통해 한 두 마리 새소리를 새로 알게 된다. 그러면서 새롭게 안 한 가지는 새소리도 새마다 여러종류가 있다는 거다. 뻐꾸기도 뻐꾹뻐꾹하지만 그제께 들은 뻐꾸기 울음은 "가가각곽! 가가각곽!'이다. 이런 소리는 소리가 녹음된 시디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 이 녹음을 담당했던 유회상님의 이야기도 감동이다. 녹음 장비를 들고 바닷가 암벽, 우거진 나무숲을 누비벼 녹음 했다 한다. 밤새나 새벽새는 밤을 새워야 하기도 한단다. 그러기를 10년 만에 책이 나온 것이란다. 어째 글이 책 선전으로 흐르는 것 같다. 좋은 책을 널리 선전하는 게 좋다. 내가 처음으로 책을 내보아서인가 누군가 책을 읽고 도움이 되었다는 인사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어쨌든 유회상님을 알게 된다면 새소리 녹음을 도와주고 싶다. 우리에게 녹음 장비만 좋은 게 있다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새소리를 아주 생생하게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쉽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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