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길을 가보는 걸까. 길을 가는 방식도 다양하다. 걷거나 자전거를 비롯하여 자동차, 배, 비행기....
이 가운데 경우의 수가 가장 많고, 쉬운 건 바로 걷기다. 걷기야말로 모든 길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 하겠다. 큰 차들이 빠르게 지나는 큰 길도 나쁘지는 않지만 걷기에는 오솔길이 호젓하니 더 좋다.
또한 산길은 어떤가? 잘 닦인 큰 산 등산로도 좋지만 이름 없는 산의 능선 길도 특별하다. 이런 길은 산을 특별히 좋아하는 산악인이나 아니면 산나물을 뜯는 사람들의 길이다. 몇 해 전에 도시 사는 친구들이 우리 집을 들렸을 때다. 이 친구들을 데리고 이런 능선 길을 걷는 데 다들 참 좋아했다. 이런 길은 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등산다운 등산을 했다고.
근데 산에는 아주 특별한 길이 하나 있다. 바로 짐승들이 다니는 길이다. 특히 밤에 잘 다니는 고라니 길. 처음에는 길이라는 걸 몰랐다. 자주 오르다보니 이젠 조금 알겠다.
길은 길인데 사람이 다니기는 쉽지 않다. 짐승은 네 발로 다닌다. 사람처럼 서서 다니지 않기에 낮은 자세로 갈 수 있다. 짐승 길을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눈앞에 나뭇가지와 곧잘 부딪치곤 한다. 이런 길을 자연스럽게 가자면 짐승들처럼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길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그저 끌림으로 간다. 때로는 들꽃한테 끌리고, 때로는 나무, 때로는 바위, 때로는 딱따구리한테 끌린다. 보랏빛 각시붓꽃을 만나면 저절로 끌리게 된다. 우람한 산벚나무는 봄비를 흠뻑 맞고 꽃비를 내렸다. 잠시 걸음 멈추고 인사를 주고받는다. 봄 비 온 뒤끝이라 고사리도 많다. 썩어가는 나무 등걸을 양분삼아 자라는 고사리라 더 아름답다.
길 없는 길을 갈 때는 항상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낭떠러지를 조심하고, 벌과 뱀 특히 독사를 조심하며, 멧돼지 역시 조심해야할 짐승이다. 찔레나 복분자 덩굴과 만나면 돌아가는 게 좋다. 그들이 가진 가시와 줄기 탄성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길 없는 길을 갈 때는 오감을 다 열어두어야 한다. 나를 비우고, 자연과 온전히 하나 되는 과정이라 하겠다.
길 없는 길을 간다는 건 그 경우의 수가 무한하다. 그 길은 내 마음에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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