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농장

백운 참돌배를 찾아서

모두 빛 2019. 4. 2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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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과일나무를 찾아가는 답사 여행. 이번에는 전남 광양 옥곡면에서 잘 자라는 백운 참돌배를 찾았다.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아주신 분은 백운 돌배 연구회 이정옥 회장님이다.

마침 옥곡 장날이라 오일장에서 만났다. 나이에 견주어 얼굴이 밝고 건강미가 넘친다.
“철이 지났기는 했지만 혹시 백운 돌배를 구할 수 있을까요?”
“농장에는 아마 사람이 없을 지도 모르니까. 여기 시장에서 사보지요.”

회장님 안내로 시장을 둘러본다. 아, 말로만 듣던 돌배다. 커다란 망에 돌배가 가득하다. 세 망 가운데 하나를 샀다. 망 속에는 아기 주먹만 한 돌배가 대략 20알 남짓. 다 해서 5천원. 맛은 어떨까?

한 입 베어 물었다. 단단한 껍질. 과육은 푸석한 편이다. 이빨과 잇몸 그리고 턱관절에 힘이 들어간다. 씹는 데도 턱관절 움직임이 느껴질 정도다. 과즙도 많지 않고 단맛도 적은 편이다.

근데 여기서 꼭 확인할 게 바로 석세포다. 석세포는 배에 많은 데 배를 먹을 때 까실까실 거친 느낌을 주는 물질이다. 이 석세포는 치석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단다. 이렇게 맛을 음미하면서 먹다보니 배 하나를 다 먹는데 얼추 5분은 걸린 거 같다. 안 쓰던 입 둘레 근육을 썼더니 한동안 입안이 얼얼하다. 근데 그 느낌이 특별하다. 야성이 살아난다고 할까.

이런 돌배가 이 곳 오일장에서 판매가 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자급자족하던 문화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셈이다.

그리고는 곧장 회장님이 배 농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 곳 이름이 ‘배나무골’이란다. 말 그대로 오래 전부터 돌배가 잘 된 곳이리라.
“백운 배는 적과(어린 열매가 너무 많이 달리니까 충실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따주는 일)나 봉지 씌우기를 하나요?”

“아니요. 안 합니다. 되도록 자연 상태를 살리지요. 보시다시피 일하기 좋게 나무 가지를 유인하는 정도만 하고 있지요. 진딧물이 끼이는 걸 방제하는 정도로 약을 두어 번 하는 게 이외는 손대는 일이 거의 없어요.”

나무를 키운 지 7년 정도 된 농장. 이곳저곳을 안내하는 데 한 곳에는 나무 아래 돌배가 그득하다. 아마 주인이 돌배를 갈무리하면서 배나무 밑에 버린 것 같다. 그런데도 먹음직해보인다. 하나 집어 맛을 보았다. 좀 전에 오일장에 먹던 맛과 많이 다르다. 빛깔도 훨씬 윤이 나고, 맛도 더 부드럽고, 단맛도 더 강하다. 그 차이가 궁금하다.

“시장에서 산 것은 요 아래 배 밭인데 여기 배나무가 조금 더 정성을 기울이는 편이지요. 웃거름도 하고, 나무 가지 유인도 하고 그래요. 그리고 시장 배는 팔다가 안 팔리면 다시 내오고 하면서 조금 더 빛깔이 탁하지요.”
같은 나무라도 이렇게 재배하는 농부와 땅이나 햇살 상태 그리고 보관 상태에 따라 크기와 맛이 다르다.

그런 다음 다시 가까운 마을로 돌아왔다. 이 마을 한 가운데로 우리를 안내했다. 빈집인데 회장님 동무네 집이란다. 집 마당 한 쪽에는 엄청난 굵기의 백운 돌배나무가 자라고 있다. 내 두 팔로 껴안으니 두 손이 서로 안 잡힐 만큼 굵다.

“이 나무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자라면서 우리 동무네 집이라 많이 주워먹으며 자랐어요. 그 때도 거의 이 정도 굵기였고, 우리 선조 어른 대부터 먹어왔다니까 못되어도 100년을 훨씬 넘었을 겁니다.”

돌배나무는 참 오래 산다. 반려 나무로 삼기에 더없이 좋은 나무다. 그저 꽃과 열매를 보는 것만 해도 위로가 될 거 같다.

나무 아래를 찬찬히 보니 지난 가을 떨어져 썩어가는 돌배가 즐비하다. 더 자세히 보니 그 가운데 올해 새로 싹이 난 어린 배나무가 여럿 보인다. 회장님이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는 사진은 지난 가을 열매가 잘 익은 모습인데 장관이다. 그 큰 나무에 주먹 만한 돌배가 주렁주렁.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나무 한 그루만 해도 몇 집은 먹어도 될 양이다.

“이 돌배로 물김치를 담그면 참 좋아요. 보통 개량배는 채를 썰어 넣으면 다 풀어져 흔적도 없는 데 이 돌배는 채 썬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고 식감도 좋아요. 물론 맛도 좋고요.”
“어려운 점은 어떤 게 있나요?”
“판로가 어려워요. 홈쇼핑으로 팔기도 하는 데 요즘 소비자들 입맛이 까다롭잖아요?”

집에 돌아와, 회장님이 선물로 주신 돌배 하나를 다시 먹어본다. 입 안 가득, 과일의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먹는 내가 주인인지, 먹히는 돌배가 주인인지....이 돌배로 물김치를 담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