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류 의식이 크게 확장된다. 애완동물이 반려 동물로 바뀐다. 자신이 필요할 때만 돌보는 게 아니라 식구처럼 삶을 함께 하고자 한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이 관련 방송까지 생기고, 관련 사업도 다양하게 뻗어간다.
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나는 조만간 ‘반려 나무’가 우리 삶 속으로 차근차근 들어오리라 믿는다.
사실 동물을 식구처럼 돌본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동물은 움직이기에 날마다 돌봐주어야 한다. 먹이는 물론 똥오줌을 제때 치워야 하고, 털이 날린다.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간다면 누군가에게 맡겨야한다. 사람을 포함하여, 움직이는 짐승은 이따금 외로움을 느낀다. 짝짓기마저 어려운 조건이라면 더 심하리라. 또한 동물은 대부분 사람보다 먼저 죽기에 그 죽음 앞에서 겪는 사람들의 아픔도 적지 않다.
여기 견주면 나무는? 한 곳에서 평생을 산다. 많이 돌보지 않아도 된다. 비록 아파트 화분에 심은 나무라도 일주일 정도는 물 한 방울 주지 않아도 된다. 물론 땅이 있는 곳에 심은 나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나무는 짐승과 달리 움직임이 고요하다. 사람을 짐승처럼 반기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나무처럼 반긴다. ‘내면의 만남’이라 하겠다. 잘 돌봐줄수록 빛이 난다. 싱그러운 나무는 다시 사람에게 활력을 준다. 한 곳에서 평생을 살기에 외로움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무야말로 반려로 삼기에 더없이 좋으리라.
요즘은 미세 먼지마저 극성이라, 반려 나무는 앞으로 사람 삶에서 필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공기를 정화하고, 산소를 내어놓는다. 만일 차를 굴린다면 적어도 나무 한 그루 정도는 심고 가꾸어야하지 않을까. 인류가 나무에게 베푼 사랑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인류에게 베푸는 게 나무다.
대부분의 나무는 동물과 달리 사람보다 오래 산다. 내 고향 집 감나무는 100년을 넘겼지만 지금도 가면 반가이 맞아주고, 가을이면 감을 주렁주렁 단다. 3대, 4대 우리 가족의 역사를 다 지켜본다.
천 년을 사는 나무도 적지 않다. 어릴 때는 사람이 나무를 돌봐주지만 머지않아 나무가 사람을 돌본다. 심지어 사람이 죽어서도 나무 곁에 묻힐 수 있다면? 나무 거름이 되어, 나무로 거듭난다. 반려에서 한 몸으로 된다.
그런데 이 나무가 열매까지 단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근데 대부분의 과일나무들이 개량이 되어 병해충에 약한 편이다. 여기 견주어 토종 과수는 병해충에 강하다. 물론 과육에 견주어 씨앗이 크기는 하다. 단맛에 길들여진 입맛이라면 맛도 그리 좋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먹을거리가 점점 불안해지는 세상. 앞으로는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리라 보기에 나는 더 끌린다. 토종만의 고유한 맛을 제대로 느끼고, 알려지지 않은 약성을 조금씩 확인해가는 과정 역시 앞으로 우리 모임의 중요한 과제가 되리라 본다.
반려 나무 가꾸기, 평생을 여행처럼 살아가기 위한 작은 걸음이다. 비록 아파트에 살아, 땅이 없다면 지자체와 머리를 맞대어 보자. 지역 주민들이 나무를 심고 가꾸고 함께 하겠다는 데 반대할 지자체가 있을까.
반려[伴侶]란 삶을 함께 하는 동무다. 우리말로 하자면 그야말로 ‘우리’다. 우리 아이, 우리 아내, 우리 식구, 우리나라, 우리 지구다. 반려 나무는 곧 ‘우리 나무’다.
‘우리 나무’와 함께 멀고 긴, 삶의 여행을 떠나보자. 지금을 넘어, 다음 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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