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농사와 사는 이야기

농사, 중간 결산

모두 빛 2016. 10. 25. 06:06

아직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중간 점검을 해야할 만큼 조금 특별하다.

 

해마다 날씨가 같지는 않다. 올해만큼은 더 특별하다. 여름에 무더위와 마른 장마가 유난했다. 더위도 더위도 그런 더위는 처음이다. 우리는 산골임에도 열대야를 다 겪었으니 말이다.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 더위. 게다가 여름 철에 흔한 장마도 없었고, 흔한 태풍조차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비가 자주 왔다. 뒤늦은 장마였다. 우기에 가까울 만큼

 

앞뒤가 이러다 보니 작물들도 고생이 심하다. , 팥이 두드려지게 피해를 본 거 같다. 꽃은 잘 피우고 꼬투리도 맺었지만 알이 제대로 여물지 않는다. 콩꽃이 피면 비가 세 번을 와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무렵 가뭄이 심했다. 게다가 고라니는 기를 쓰고 넘어들어와 잎을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그나마 녹두는 이르게 수확을 했기에 다행이었다.

 

들깨 역시 이르게 단풍이 들면서 예년에 절반 정도 수확이었다. 고추 역시 가뭄에 약하다. 과일로는 감나무 피해가 컸다. 잎이 일찍이 단풍이 들면서 300여 개씩 달리던 감이 올해는 몇 개만 달고 말았다. 우리집만 그런 게 아니고 전국적으로 비슷하게 잎이 말라가면서 피해를 보았다.

 

반면에 뿌리 작물과 벼과 작물은 잘 되었다. 생강과 무가 잘 되고 있다. 고구마 역시 잘 되는 편인데 고라니가 잎을 뜯어 먹어 얼마나 거둘지는 모르겠다. 봄감자도 잘 된 편이지만 가을감자는 그 어느 해보다 잘 되고 있다.

 

벼과 역시 다 잘 되었다. 옥수수는 세 번에 걸쳐 나누어 심었는데 다 잘 되었다. 사실 마지막 늦게 심은 옥수수는 보통은 충실하게 다 영글지 못하는 데 올해는 여름 끝 무렵까지 잘 영글었다. 수수도 잘 되었다. 아열대가 고향인 벼 역시 무더운 날씨 덕에 잘 되었다.

 

벼과 가운데 특히나 눈에 두드려지는 건 조. 올해는 조를 평소보다 조금 많이 심었는데 아주 잘 되었다. 이삭마다 아주 실하게 열매를 맺었고, 가을 태풍인 차파에도 쓰러지지 않고 굳건하게 버텨주었다. 얼마나 실한지 열매를 거두는 손끝이 비명을 지를 정도다. 손끝에서 조 이삭이 출렁출렁. 황소 불알을 만지는 기분이랄까.

 

이렇게 벼과가 잘 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생명력이 아닐까 싶다. 콩이나 들깨가 잘 안 되는 이유는 가물다가 비가 자주 오면서 뿌리가 상한 게 큰 이유인 듯하다. 여기 견주면 벼과는 가뭄에도 홍수에도 강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농사의 근본은 곡식에 있음을 올해 제대로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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