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써왔던 경운기를 팔았다. 오래도록 썼다. 얼추 20년 가량. 처음 마련할 때도 이웃이 2년쯤 썼던 중고였는데 그 당시 100만원 주고 샀었다. 거의 고철 값에 가깝게 팔았다. 그동안 충분히 잘 썼기에 크게 미련이 없다.
경운기는 농촌에서 쓸모가 많다. 그렇게 설계되었다. 짐(거름, 곡식) 나르기, 땅 갈기, 논 써레질, 약을 치거나 곡식한테 물주기. 심지어 할아버지들은 장날 교통수단으로도 몬다.
그러다 보니 경운기가 처음 나올 때는 인기가 많았다. 다른 기계들이 아직 그리 발달하지 않은 때. 농사일에서만큼은 만능에 가깝게 모든 걸 할 수 있는 그런 기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는 농촌에서도 기계와 기술이 많이 발달했다. 짐 나르는 기계는 특화되었다. 경운기 쓸 일이 점점 줄어든다. 벼 타작을 하면 콤바인에 담긴 나락을 일차로 트럭으로 옮긴 다음 이를 곧장 논 주인이 원하는 곳으로 가져다준다.
경운기로 짐을 나르는 건 장점이 있지만 단점이 더 많다. 장점은 가파른 곳이나 물이 든 논에서도 짐을 나를 수 있게 4륜이 가능하다. 단점은 위험하다. 가파른 곳을 자주 운행하다가 사고가 나서 죽은 사람이 적지 않다. 다친 사람은 부지기수. 목숨 걸고 몰아야 한다. 속도가 늦은 것도 단점이다. 트럭이나 승용차에 익숙한 귀농인들에게는 낯설다. 무엇보다 힘이 제법 든다. 나이든 사람이 몰기는 벅차다. 운동 신경이나 순발력 그리고 기계에 대한 이해를 잘 하고 있어야 한다. 사고는 순간에 일어나니까.
논만이 아니다. 감자나 땅콩을 캐거나 하면 이제는 승용차를 쓴다. 그러다보니 경운기는 봄에 거름 낼 때 잠깐, 가을에 볏단을 나른다거나 고구마를 싣고 오는 경우에 이용했다. 그리고는 한 해 내내 놀리게 된다. 결국 녹만 난다. 이렇게 놀리면 배터리 방전도 더 자주 된다.
그리고 농사 방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해 오던 자연재배 방식이 점점 손에 익으면서 밭을 갈 일이 거의 없어진다. 외부에서 풀을 베어온다거나 왕겨를 깔아야 할 일들이 줄어든다. 훈탄을 만든다고 꼭 왕겨를 사야한다면 잠깐 이웃 트럭을 빌린다.
방아찧기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주문받아 한꺼번에 다 찧는 식이었는데 이젠 창고에 두고, 그때그때 조금씩 주문받아 가정용 정미기로 찧는다. 혹시나 조금 양이 많다 싶으면 승용차에 나락을 12포대 정도(쌀 3가마니 정도 분량)를 싣고 정미소에 가곤 했다.
나이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는 경운기를 모는 게 벅차다. 힘으로도 부치고, 운동 신경도 예전만하지 않다. 그동안 팔아야지 팔아야지 하다가 이제야 팔 게 된 것이다. 처분했다는 게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우선 경운기 있던 자리가 비니까 시원섭섭하다. 경운기를 버리는 건 점점 자연의 삶으로 더 가까이, 더 깊이 들어가는 과정이라 여긴다. 없으면 없는 대로 다 살게 되는 게 삶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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