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생각의 혁명, 인터러뱅 ?!을 아시나요?

모두 빛 2015. 2. 1. 20:08

 

<나와 세상을 살리는 생명교육>이라는 강의안을 짜다가

용어 하나로 생각이 죽죽 뻗어가기에 이를 간단히 적어봅니다.

 

인터러뱅(Interrobang)이라고 들어보았나요?

 

이렇게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는 다음 세 가지 부호가 있습니다. 마침표, 물음표 그리고 느낌표. 우리 생각은 대부분 언어의 지배를 받습니다.

 

근데 인터러뱅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함께 하는 물음느낌표입니다. 아주 동적이며, 창조적인 새로운 기호인 셈이지요. 하나의 물음을 가지게 되면 궁리하고 궁리하다가 어느 순간 감동의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뻔한 물음에는 뻔한 답이 나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부모란 누구인가를 가끔 묻게 됩니다. 근데 부모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답해버린 적은 없나요?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거나...근데 인터러뱅은 너무나 뻔한 마침표에 물음표를 다는 거지요.

 

묻고 묻고 또 더 깊이 묻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감동이 밀려옵니다. 이럴 때는 부모를 넘어, 교육자가 되는 거지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자가 아니라 사랑을 가슴 깊이 품은 진정한 교육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근데 교육자라는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 역시 빠르게 자라고, 세상은 또 얼마나 빨리 바뀌나요?

 

부모이자 교육자인 자신에 대해 다시 물음표를 던지게 됩니다. 뻔한 물음이 아니라 감동으로 나아가자면 질문 자체가 자신을 근본에서 뒤흔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물음느낌표 즉 인터러뱅이 필요합니다. 전보다 더 많이 더 깊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고, 아이랑 근본에서 소통을 하다보면 이번에는 자신을 치유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즉 부모이기 이전에 치유사가 되는 거지요. 이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잖아요? 끝없는 유혹과 탐욕과 시비들로 얼룩져, 아이들을 늘 사랑으로 대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이럴 때 저는 영혼을 생각합니다. 아이는 부모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왔지만 고유한 영혼일 수 밖에 없다고.

 

부모인 자신을 살리고, 아이를 살릴 때 진정한 교육이 되겠지요? 더불어 이 힘은 세상을 살리는 데도 작은 힘으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이런 물음을 가져봅니다. 인터러뱅에 마침표까지 결합된 부호가 필요하지 않을까? 늘 묻고 감동하기보다 그래도 마침표가 삶을 편안하게 해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생명교육은 바로 이 모든 부호가 함께 하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