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주관하는 백일장 심사를 했다. 초중고 아이들 글을 대상으로. 새로운 경험이란 생각으로 참여했던 것인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일단 참여 작품이 많았다. 140여 편이 되는 글을 다 꼼꼼히 보아야한다. 사전에 심사위원들끼리 이야기는 예선과 본선을 나누자고 했지만 주최 측에서는 전체를 같이 다 봐달란다.
사실 글쓰기처럼 주관이 강하게 작용하는 시험에서 객관성을 잘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보는 이에 따라 점수가 다를 수 있고, 참여자가 많다 보면 글 한편 한편을 똑같은 마음으로 살피는 게 쉽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참여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이길 바랄 것이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를 주최 측에서 반영했지 싶다. 백일장에서 객관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은 좀 더 많다. 심사위원을 여섯 사람으로 하고, 심사항목 역시 다섯 가지(주제, 짜임새, 말법, 형식, 감동)로 나누어 그 항목마다 점수를 매긴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개별심사위원이 글마다 주어진 문항 점수를 다 합하여 평균을 하고, 또 이를 심사위원마다 합산하여 다시 평균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근데 글을 읽다보면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작품을 쉽게 만나게 된다. 근데 맞춤법은 물론 글쓴이 생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글들 역시 꼼꼼히 다 읽고, 주어진 항목마다 점수를 매긴다는 건 수십 편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100여 편이 넘어가다 보면 같은 마음으로 글을 읽는 게 생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마 이런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로 심사위원을 여럿 두는 지도 모르겠다.
이번 백일장 주제는 자유롭게 아이들이 정하면 되고 형식은 수필이다. 아이들이 많이 다룬 소재가 ‘세월호’ 사건이다. 전 국민적 슬픔인데다가 역시나 아이들 희생자가 많다보니 더 그랬던 거 같다. 그 다음 소재들로는 연애나 사랑, 학교 폭력이나 왕따 그리고 봄꽃들이다.
처음 심사 예상 시간은 세 시간이었지만, 막상 꼼꼼히 살피고 점수를 다 매기다보니 다섯 시간을 넘길 정도였다. 그 과정이 조금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들 생각을 두루 살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심사과정에서 지역 작가회의 회원분과 인사를 나눈 것도 작은 인연이라 하겠다.
심사를 하면서 글과 관련하여 아쉬운 건 아이들 글쓰기 방식이다. 자신이 겪은 일을 토대로 글을 쓰면 글쓰기가 한결 쉽다. 일단 토해내면 된다. 겪은 일이라 어렵지 않다. 그런 다음 주제에 맞게 글을 집중해주면 좋다.
그렇지 않고 생각을 중심으로 글을 쓰게 되면 비슷비슷한 글이 되기 쉽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글. 특히 세월호 사건처럼 시사를 다룬 글들일수록 그렇다. 방송에서 다룬 내용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실천적이 고민이 있어야 글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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