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솟아나는 글쓰기

가치의 빅뱅과 오랜만에 이력서 쓰기

모두 빛 2013. 1. 22. 13:31

 

 

오랜만에 좌담회를 다녀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Future Horizon> 주최다. 주제는 “경제성장보다 더 매력적인 사회적 가치는 없는가?”이다. 나와 진행자포함 다섯 사람이 함께 했다.


시골 살다보니 서울 신림에 있는 연구원 찾아가는 길부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출발한 덕에 20분 정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20여 층 건물 연구원 분위기에 살짝 긴장도 되었지만 이내 차 한 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다.


참석자들은 다양했다. 정신과학을 오래 연구한 물리학자. 대기업 경영을 오래 한 분, 범죄심리를 연구한 분.


처음에는 이야기가 잘 될까 싶었다. 근데 이야기가 활발함을 넘어 논쟁까지 될 정도였다. 좌담회가 끝나고 식당에서 알탕을 먹으면서도 계속 이야기가 이어질 정도로. 이제는 하나의 잣대, 자기만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기에는 너무나 사회 가치는 다양하고, 그 변화 속도는 빠르다. 그러면서 얼핏 떠오른 말이 ‘가치의 빅뱅’이다. 가치의 대폭발.


빅뱅은 우주 창조를 설명하는 용어이다. 오늘날 가치도 그러하지 않는가. 하나의 가치가 새롭게 생기면 여기서 뻗어가는 새로운 가치들이 이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들도 있고 새롭게 더 커지고 깊어지는 가치들도 있다.


귀농이니 생태 생명 순환 같은 가치들은 예전에 견주어 이제는 확연하게 자리를 잡아간다. 이번 좌담회 때도 그렇다. 살아온 삶이 다 달랐지만 지금 하는 일이나 관심분야에서 접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분은 얼마 전 강원도 깊은 곳에다가 땅과 집을 마련했다고 하고, 범죄심리를 다루었던 분 역시 도시에서 텃밭을 일구어 김장까지 자급을 했다고 한다. 물론 농사를 짓는 나 자신부터도 이런 자리에 초대받아 당당하게 함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다는 사실부터도 그렇다. 가치 빅뱅과 새로운 가치의 창출과 깊이 관계가 되는 셈이다.


나 역시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범죄심리나 정신과학의 세계에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경제 성장보다는 그 이전에 제대로 된 인간윤리가 선행되어야한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을 했으니 말이다. 특히 범죄가 늘어나는 것조차 ‘경제성장을 확인하는 GDP 지표’에 포함된다니 단순히 수치만 가지고 성장을 논하는 것은 사회를 아주 왜곡한다는 것도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이게 어디 범죄뿐이겠는가. 질병도 마찬가지.


좌담회를 하면서 참여자들의 이력서를 받는 절차가 있다. 참여비 정산을 위한 절차라 여기고 대충 이력을 이야기해주었더니 양식에 따라 해 달란다. 몇 년 몇 월 며칠에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강의를 하고, 책을 지었는 지들을 구체적으로 적어야한단다. 그리고 끝에는 발령처를 적어야한다. 말하자면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는 직장이나 소속단체들이다.


좌담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양식에 따라 이력서를 작성해보았다. 거의 반나절에 걸쳐 내 삶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간단히 하려다가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싶어 조금 더 자세히 내 이력을 돌아보게 되었다. 심지어 아주 오래 전에 다녔던 직장으로 전화까지 하여 구체적인 날짜를 확인하기도 하고...


이렇게 하다보니 가치 빅뱅이 사회만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의 이력에서도 드러난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도시 살다가 귀농한 것도, 귀농하고 이런저런 활동을 한 것들도 대부분 새로운 가치들을 담고 있다. 농사짓고, 집짓고, 글 쓰고, 책 짓고, 사진 찍고, 강의하고, 방송출연도 하고, 조직을 만들고, 명상하고...  이 과정에서 자급자족, 치유, 생명교육, 부부연애들의 가치를 경험한다.

 


앞으로는 또 어떤 가치를 만나고 만들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