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이는 열일곱 살 홈스쿨러다. 우리 사는 곳에 가까이 살고 있고, 규현이와 같은 나이라 더 애정이 간다. 자식, 이제 우리 앞에 나타나다니^^
우리가 강현이를 만난 건 얼마 전부터다. 그러니까 올 초, 홈스쿨링 가정들끼리 손을 잡고 전국과 지역 모임을 해보려고 여기저기 손을 뻗치고 있을 때였다. 안테나를 열고 있으면 어디선가 신호가 걸려들 게 마련인가.
우리 탱이가 진안에서 하는 무슨 축제인가 갔다가 거기서 진안 지역 흐름을 잘 아는 젊은이 한 사람을 만났고, 그 젊은이가 홈스쿨러 가정인 강현네와 청아네를 소개해주었다. 우리 식구는 현빈이네와 얼씨구나 좋다하고 청아네로 달려가 네 식구가 처음으로 모인 거다.
그러나 그때 강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름 바쁘기도 했고, 딱히 새로이 사람을 사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끼리는 죽이 잘 맞아 점점 모임이 커지게 되었고 곡성 한결이네까지 확대되었다. 그렇게 확대된 두 번의 모임에도 강현이는 오지 않았다.
어쨌든 지역 모임을 함께 하다보니 어른들끼리 자주 보게 되고, 우리 식구는 자연스레 강현네를 찾게 되었다.
첫 만남에서 강현이에게 나오는 빛은 뭔가 어른스러움이었다. 콧수염이 거뭇거뭇한 게 우리 규현이보다 더 진한 빛깔인데다가 얼굴빛도 좀 검었다. 인사만 간단히 하고 강현이는 자신이 하던 블로그깅을 계속 하고 있었다.
“강현아, 우리 이야기 좀 하면 안 될까?”
강현이는 씩 웃으며 컴퓨터를 끄고 슬그머니 우리 곁으로 왔다. 첫 만남에서 깊은 이야기는 어려운 법. 이것저것 물어보니 대답을 잘 했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이 동등한 건 아니었다. 내가 더 짝사랑하는 그런 관심이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성장잔치 한마당>을 강현이네 집으로 하게 되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강현이 어머니인 나무는 자신들 집을 모임 장소로 기꺼이 내어놓았지만 나는 강현이 눈치가 보인다. 우리 역시 손님을 많이 치루다 보니 어른은 바라지만 아이들은 손님들 때문에 치이는 걸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성장잔치 한마당> 예행 연습 겸 무주 진안 네 가정이 강현네서 다시 만났다. 강현에게 집을 전체 모임 장소로 내어놓은 거에 대해 생각을 물었다.
“저는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해요. 근데 꼭 모임을 저희 집에서 해야 한다면 제가 이해를 해야겠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엄마랑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점차 강현이와 점점 가까워지게 되었다. 강현이는 정말 곤충을 좋아한다. 보통 때는 여간해서 집을 나서지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곤충이나 새로운 곤충을 알게 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집을 나선다. 어쩌면 이 부분은 유명한 곤충 학자였던 파브르 보다 더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집에서 도끼질 하다가 죽은 나무속에 애벌레가 나오면 우리 집 닭을 주었다. 정말 좋아한다. 이젠 애벌레를 보면 강현이를 생각한다. 도끼질 하다가 벌레가 몇 마리 나왔다고 강현이에게 연락을 하자 곧장 달려왔다.
기대를 하고 왔지만 내가 보여준 벌레는 그리 값진 건 아니었나 보다.
“강현아, 미안하다. 좀더 좋은 벌레를 준비하면 좋았을 텐데.”
“아니에요. 저에게 관심 가져주시는 것 만해도 고마운 거지요.”
강현이와 벌레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혀를 내두를 정도다. 게다가 스케치는 또 얼마나 잘 하는 지. 즉석에서 연필로 사슴벌레를 슬슬 그리는 데 정말 벌레가 바로 앞에서 살아서 꿈틀대는 게 아닌가.
“누구에게 그림을 배운 적 있니?”
“아니요. 그냥 관찰하면서 그린 건데요.”
그냥 무작정 자세히 그리는 게 아니라 특징만 잘 잡아 빠르게 스케치 하는 데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강현이는 내가 주문을 하니 장수풍뎅이 애벌레도 그리고, 벌레마다 항문이 어떻게 다른지, 또 똥누는 모습은 어떤 지도 그림을 그려서 설명을 해 낸다. 입이 다 벌어질 정도다. 내가 잡아서 보여준 건 하늘소 애벌레와 무슨 민잠자리 애벌레란다.
이렇게 슥슥 스케치를 하면서 이야기를 해주는 강현이를 보니 나는 슬쩍 욕심이 난다. 이 녀석을 잘 꼬셔, 이 다음에 잡지를 함께 만들면 좋겠다는 욕심^^ 이 녀석이 관찰하고 기록하는 걸 조금만 가다듬어도 아주 흥미로운 학습교재가 될 것이다.
“강현아, 너 나한테 글쓰기 배워보지 않을래?”
“글쓰기는 정말 어렵던데요.”
“어차피 네 관심 분야를 잘 살리려면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를 세상과 나누자면 스케치나 사진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지 않겠니?”
“제가 아직은 좀 바빠서요.”
“뭐로 바쁘니?”
“제가 돌보는 식구가 좀 많거든요.^^”
앞뒤를 알고 보니 그렇다. 강현이는 돌보는 식구가 정말 많다. 강현이가 애정을 갖고 키우는 애벌레만도 엄청나다. 벌레를 입양하고, 키우고, 관찰하고, 사진 찍고, 일기 쓰고, 분양하고...강현이 침대 아래는 벌레들이 사는 아파트다. 게다가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인 우현이와 영현을 돌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집안을 따뜻이 하기 위해 나무 보일러를 관리하고 불을 때는 일도 강현이 몫이다.
강현이와 첫 만남에서 풍기던 오오라는 바로 이런 양육 본성이 만들어낸 빛이었나 보다. 강현아, 너와 너희 가족의 소중한 공간을 전체 모임 장소로 내주어 정말 고맙다.
'살아가는 이야기 > 아이들은 자연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홈스쿨러 사회성(6) 아이 욕구를 일로 바꾸기 (0) | 2011.04.27 |
---|---|
[스크랩] <<사랑으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 (0) | 2011.04.11 |
자녀 교육, 정말 절실한가? (0) | 2011.04.07 |
[스크랩] 부쩍부쩍 크는 아이들(모임 후기) (0) | 2011.04.01 |
[스크랩] 인기 넘치는 그림쟁이와 내 캐리커처 (0) | 2011.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