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농사와 사는 이야기

자랑스러운 청둥호박

모두 빛 2010. 9. 26. 11:35

 

 

 

오늘 청둥호박 몇 개를 거두었다. 이게 웬 황금덩어리인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금덩이보다 낫다.

 

앞뒤 사정을 보자면 이렇다. 요 몇 해 호박과실파리가 점점 번진다. 이 파리는 애호박일 때 호박에다가 침을 찔러 알을 쓿어둔다. 애호박이 자라면서 이 애벌레 역시 깨어난다. 안에서 야금야금 호박을 갉아먹는다.

 

호박이 영글어갈 때쯤에는 속에서부터 물러버린다. 늦게 알을 깐 호박은 가을걷이 끝나, 청둥호박이 되었다고 거실에다가 잘 모셔두다 보면 진물이 줄줄이 흐르면서 녹아내리기도 한다. 그 사이 호박 속에서 과실파리가 점점 커지면서 갉아먹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청둥호박이랍시고 거두어도 믿을 수가 없다. 남들과 나누는 것 역시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 식구 먹을 거야 물러서 버린다고 쳐도 남과 나누는 것들은 나중에 꼴아 말이 아니게 된다.

 

이 호박과실파리는 호박뿐만이 아니다. 박이 가장 심하다. 박은 겉이 아주 부드러우니 과실파리가 좋아한다. 단호박은 어릴 때 주로 알을 낳는다. 단호박은 수정되고 조금만 지나면 껍질이 단단해지니까 피해가 덜하다. 수박도 마찬가지 피해를 입는다.

 

이런 호박 종류만 그런 게 아니다. 오이, 수세미, 참외 같은 외 종류 역시 과실파리가 알을 쓿어놓는다. 처음에는 호박에만 주로 그러더니 점점 번진다. 이번 추석에 상주와 김천 이웃들을 만나보니 전에는 없던 과실파리가 생기기 시작했단다.

 

최근 사정이 이러하니 과실파리가 먹지 않은 호박이 얼마나 귀한가. 게다가 그냥 두어서 건진 호박이 아니다. 파리가 달려들지 못하게 단단히 해두었기 때문이다.

 

사실 올해는 마음잡고 호박을 해보았다. 파리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마음으로. 이 부분은 지난번 글에도 간단히 쓴 적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망을 씌우는 것이다. 호박 암꽃이 수정 되자마자 망을 씌운다.

 

망으로는 위 사진에서 보듯이 햇살은 들어오고 벌레는 못 들어오게 흰 부직포를 커다란 주머니처럼 만들어 사용했는데, 이번에 겪어보니 하얀 쌀 포대 같은 것도 좋겠다. 다만 호박이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10키로 가까이 커지니까 그 크기를 감안해서 씌우면 된다. 그리고 나는 부직포 안에다가 이중으로 한답시고 신문지를 끼웠는데 이는 할 필요가 없다. 망 하나만 해도 된다. 신문지는 나중에 비에 젖고, 또 호박이 크게 영글면서 그 무게에 눌러 호박에 검은 빛을 남긴다. 물론 이는 물에다 살짝 씻기만 하면 없어지기는 한다.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처음 해 보는 거라 긴가민가하면서 대충 열 개 정도만 망을 씌웠는데 하나 빼고 다 성공했다. 실패한 것은 호박과실 파리가 왕성하게 활동할 때 씌워서 그렇다. 8월 정도에는 암꽃이 아예 피기도 전에 침을 찔러 알을 까니까. 그러니 조금이라도 일찍 씌우고 아주 더워지는 여름부터는 아예 암꽃을 따 버린다. 이러면 먼저 호박이 더 잘 영글기도 하고, 가을에 새롭게 달리는 호박들이 많아, 애호박 오가리를 말릴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하면 호박과실파리가 크게 번지는 것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좀더 욕심을 낸다면 암꽃이 피기 전에, 과실파리가 일을 쓿기 전에 애호박 부위를 조그마한 헝겊 같은 걸로 살짝 씌운다. 그 뒤 암꽃이 수정이 되고 나면 제대로 망을 씌우면 된다. 근데 이게 얼마나 번거로운가. 넓은 호박잎과 긴 줄기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니 말이다.

 

호박 세 개 정도 심어 청둥호박 열 개 정도를 얻었다. 애호박은 차차 따서 말릴 것이다. 올 겨울은 누런 청둥호박 덕에 한결 든든하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