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은 맛있게 먹었나요.
몇 가지의 질문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새해 벽두에 말걸기를 합니다. 바로 들어가지요~
첫번째 질문입니다. 에빰은 탈체제주의자의 모임입니까? 꽤 여러 차례 생각해보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이 질문을 왜 하게 되는지 알기 위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부터 점검해 봅시다. 첫째, 에빰은 자립과 자유,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모임입니다. 이것은 에빰이 출범될 당시에 선언한 자기 정체성입니다.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자립과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가 이야기했는가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해석이 나오므로 (아마, 자유를 가장 많이 찾는 이들이 자본가들일 것이라 생각되네요) 에빰의 구성원들의 공통분모를 찾아볼 필요가 있겠네요. 그래서, 둘째, 정체성을 확인하는 요소로서 그 구성원들의 공통성을 본다면 - 젊다(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소위 말하는 학령기임에도 불구하고) - 대체로 귀농 2세이다. (표현이 마음에 들지 모르겠지만 가장 단순명쾌하므로 사용합니다) 현재까지 누가 보아도 부정할 수 없는 공통분모는 이것이지요.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에빰이 출생부터 선언한 자립과 자유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모임이라는 것과 위에 언급한 현실적 공통성이 현재 에빰의 실제적 자기정체일 것입니다. 여기에 몇 가지를 더 보태자면 그간 몇 차례의 만남을 통해 탈체제에 관한 토론이나, 온라인상의 논쟁(산불, 들불로 명명되는)이 몇 차례 있었다는 것. 에빰인 중 몇이 자신을 탈체제주의자임을 밝혔다는 것. 그리고 그 중 열정적인 한 에빰인의 질문이 있었다는 것. 당신의 정체는 무엇이냐고... 이 물음에 충분한 대답은 나왔나요? 자, 다시 정리해 봅시다. 에빰에서는 1. 자립과 자유,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모임이라고 스스로를 밝혔다. 2. 대부분이 젊음, 탈학교, 귀농(탈도시)라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3. 그간 온,오프라인의 만남을 통해 반문명, 탈체제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4. 구성원 중 몇몇이 탈체제주의자임을 분명히 표명하였다. 5. 그 중 한 명은 모두에게 탈체제와 반문명에 대한 입장을 포함, 정체성을 밝힐 것을 요구하였다. 6. 구성원 중 몇몇은 뚜렷한 입장(탈체제와 반문명에 대한)을 밝힌 바가 없다. 맞습니까? 여기까지가 현재까지 탈체제, 반문명에 대한 에빰의 상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3번까지가 에빰의 공통분모라면 4~6까지는 아직까지 진행 상황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작은 소년이 물었습니다. 에빰은 왜 체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냐고... 그 불은 처음의 거센 기세와 달리 맥없이 사그러들었지요. 불길은 꺼진 듯합니다. 그 불길을 가장 확실하게 끈 듯이 보이는 말은 이것입니다. ‘'탈체제'란 처음부터 에빰의 대전제인 것이다.’(요즘 든 생각2) 더불어 또 한 사람이 ‘노짱모임’의 예를 통해 다시한번 꺼진 불도 다시 보셨지요. 다른 사상의 소유자여! 기본을 갖추어라! 등등 탈체제는 처음부터 에빰의 대전제인가요? 다시 묻습니다. 에빰은 탈체제주의자의 모임인가요?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을 보면(반복되서 지겹겠지만) 1과 2까지는 명백한 사실이니 검토의 여지가 없고 2와 3,4를 통해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은 에빰은 탈체적이며 반문명적 경향성을 띄었다는 것이고 (불필요한 설명이지만 학교와 도시란 체제의 핵이니... 하지만 탈학교, 탈도시 = 탈체제는 아니지요 ) 5와 6을 통해 볼 때 에빰에서는 탈체제와 반문명에 대한 명확한 입장정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빰은 탈체적이며 반문명적인 경향을 띈 젊은이들이 보다 완전한 자립과 자유를 향해 나선 모험이며 그 모험에 동참할 벗들에게 열려있다.> 여기까지 맞습니까?
이 대목에서 잠깐,<‘탈체제’는 처음부터 에빰의 대전제다>라는 선언은 비약입니다! (새로운 삶의 방향모색이 = 탈체제는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다해도...) 현실적 무리가 따르는 선언이라는 것이지요. 어떠한 성향을 띈다는 것과 ‘그것이다’라고 선언을 하는 것은 명백히 다르니까요. 만약 이것이 대전제라면 에빰에는 탈체제주의자만 받아야 합니다. 당연히 신입은 검증(일종의 사상검증이겠지요?)을 거쳐야할 것이구요. 그렇다면 가끔씩 논의되는 회원자격 기준도 이에 맞춰 바뀌어야할 것입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까요? 한가지 방법은 재빨리 에빰에서 탈체제, 반문명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확인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선 구성원들의 보다 선명한 입장표명이 필요하겠지요?) 또 하나의 방법은 경향성으로서의 탈체제. 반문명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좀 더 긴 호흡으로 내용성을 채워가는 것입니다. 열린 것과 닫힌 것은 다릅니다. 마침표와 쉼표는 다릅니다. 쉼표는 다소 지루하고 답답할지 모르지만 열려있으며 가능성이고 마침표는 분명하고 명쾌하지만 종료를 뜻합니다. 에빰은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지요? 이것이 저의 두번째 질문입니다. 만약, 에빠의 정체성에 관해 내가 지금까지의 정리한 바가 맞다면 이 상황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아야겠지요. 탈체제선언을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선언에 맞춰 줄을 서든지(아, 난 가랭이가 찢어집니다!) 좀 허술한 듯, 줄은 없어도 경향이라는 넓은 틀 속에서 나아갈지... 나의 입장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열정적 친구가 던진 당신의 정체성은?이란 질문을 나는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리 쉬이 답이 나오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솔직하고 열정적인 질문이 참 좋습니다. 꼭 답을 해주고 싶게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자신에 관해, 가족에 관해, 이 세상에 관해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저는 이 질문을 좀 더 오래 품고 가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더 많은 통찰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난 ‘주의자’가 싫습니다! 뭐 그래도 '절대'는 없으니 어느 날 어떤 주의를 나의 것으로 할지도 모르지만... 또 한가지. 난 탈, 반, 비, 불 등의 접두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필요에 의해 쓸 수 있지만 나를 규정하는 것에 탈, 반, 비 등등의 접두사를 붙이고 싶지는 않아요. 왜? 이런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사들은 언제나 전제를 깔고 있으니까요. 이런 접두사를 붙이는 순간 전제가 없이는 내가 성립되지 않거든요. 나의 어떤 부분은 그 전제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지만 그것이 ‘온전한’ 나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해서 나는 ‘불온’이란 표현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온당함을 좆는 것이 그들이 아니라는 의미에서도... 물론 강조와 역설을 위해 이런 접두사들을 쓸 수도 있지만 잘못된 이들, 잘못된 힘들이 선점한 언어를 그대로 용납하는 결과도 마뜩치 않구... 사설이 너무 길었네요. 다시 돌아가서 ) 입장을 밝히지 않은 친구들도 나처럼 이 질문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이 물음이 단지 탈체제 반문명에 국한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만약, 이 질문이 단지 ‘너는 탈체제주의자냐?’라고 묻는 것이라면 난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될 것입니다. 왜? 정말 모르겠으니까... 열정적인 친구여, 이런 나를 어찌하시렵니까?) 나는 누구인가, 세계와 나는 어떤 관계인가, 내가 하는 생각, 행동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인가, 나는 어떤 과정에 있는 것인가, 누가 나의 벗인가... 탈체제에 대한 고민 역시 이런 과정의 하나입니다. 저 미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일 수도 있고 벗을 찾아 나서는 길일 수도 있을 것이고 한 성원이 끝임없이 시도하는 자기성찰일 수도 있으며 팽팽한 긴장을 요하는 줄타기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방법을 쓸 수 있으며 시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열려있다면... 다만, 주의할 것은 성급한 마침표가 아니라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끊임없이 시도하며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에빰이 좁거나 답답하지 않길 바랍니다. 중심이 강할수록 넓은 폭을 갖게 마련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어느 친구의 표현처럼 천천히 조심스레,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여태까지 에빰에서 읽은 글 중에 타이치에 연재되었던 글들은 아주 초기에 읽었는데 지금까지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에빰에 이렇게 눈에 보이는 듯, 만질 수 있을 듯한 이야기들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15일의 동거동락이 좋았던 것도 그런 구체성과 연속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지닌 다양한 면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느끼고 나누고... 그건 '육체의 나이를 거스르는 젊음의 소유자'께서 하신 제안처럼 농사에 대한 탐구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아주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신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것에 관한 나누는 일일 수도 있겠지요. 말한 것처럼 농사는 물론이고 밥짓기, 먹기, 싸기, 놀기, 청소, 빨래, 현금 조달하기, 산에 가기, 노래하기, 만들기, 그리기, 사람 만나기 등등... 이런 자신의 삶의 하나하나를 통해 느낀 바를 나누는 과정들이 더 활발해지면 좋겠습니다. 의외의 발견들은 계속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든, 자연이든, 세상이든, 자신에 관해서든, 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든... 주제가 구체화되고, 이야가 지속되는 힘이 있을수록 길을 찾는 이들에게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에빰에 이미 제안된 바들이 많으니 천천히, 하나씩 꼭꼭 채워 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두빠는 어떤 형태로든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다면적인 인간이 통합적이며 조화롭게 자기를 실현하는 길이라면 어떤 것이든 말입니다. 난, 에빰이 중심은 점점 강해지고 그 폭은 점점 풍성해지길 희망합니다. 나의 생각은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답을 기다려야겠군요. 제 질문은 두가지입니다. 하나, 에빰은 탈체제주의자 모임인가? 둘, 에빰은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 내 생각은 이야기 했습니다. 자,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사족> 만약, 불씨가 남아있어 다시 타오른다면 산불, 들불같은 무서운 불 말고 오붓이 모여 몸을 녹이는 장작불이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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