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자급자족

작곡을 하다니! 내가!

모두 빛 2010. 3. 21. 19:20

 

(아래 글은 '자급자족'이라는 주제로 내가 장기간 연재하던 내용의 한 부분이다. '동시의 리듬'을 생각하다가 다음 글이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여기로 옮겨온다.  시라든가 작곡, 이런 쪽에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같이 힘을 모아나가면 어떨까 싶다. )

 

나는 음악이라면 열등감 비슷한 걸 갖고 있다. 음감을 떠나서 박자, 리듬, 멜로디에 대해 무지하다. 심지어 리듬과 멜로디가 어찌 다른지조차 설명을 못한다. 이웃들과 합창을 하려고 해도 주로 내가 틀린다. 노래방 가서조차 18번이랍시고 부르는 노래가 하나 정도 있을 뿐. 악기 역시 다룰 줄 아는 게 없다.

 

보통 때는 음악에 무지한 대로 살아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요즘 우리 집은 아이들 둘이 연신 피아노를 두들긴다. 한 곡 한 곡 치고 나가는 맛이 좋은가 보다. 학교나 학원에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데도 음악을 즐긴다. 어쩌면 학교를 안 다니기에 음악을 즐기는 지도 모르겠다. 부모는 음악에 대한 별다른 재능도 없고, 관심도 별로 인데 아이들이 치고 나가니 신기할 뿐이다. 아마 호기심에서 시작하고, 자신이 흥이 날 때 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궁금함에 상상이에게 피아노를 열심히 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피아노를 치다가 막히잖아요. 그럼 막힌 바로 그 부분이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자꾸 그 벽을 넘어보고 싶은 거지요.”

 

이런 아이들 분위기에 아내가 자극을 받아 아내 역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아내마저 치니 나만 소외되고 열등한 느낌이 다시 들었다. 나 역시 겨울이면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피아노 앞에 앉아 둥당거려보았다. 그 과정에서 아내도 탱이도 내게 애정을 갖고 많이 도와주었는데 또다시 좌절하고 말았다. 그 절망감에 음악이 이전보다 더 멀게만 느껴졌다. 역시 나는 안 되는가?

 

열등감과 좌절을 넘어


 

그런데 봄이 올 무렵, 이번에는 좀 다르게 음악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뜻하지 않게 영감을 받았다. 이웃 가운데 나이 오십이 넘어 작곡을 한 사람이 있다. 이 분은 미술교사를 하다가 그만 두고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기타를 손에 잡더니 둥당거리면서 자신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 드디어 얼마 전부터 작곡을 시작했단다. 그런데 그 동기가 재미있다.

 

“글만으로는 느낌을 제대로 나누기 어렵데요. 그래서 글에다가 곡을 붙이니까 한결 낫더라고요.”

 

아하, 그런 길이 있구나! 나로서는 무척 감동스런 이야기였다. 나이가 50을 넘어서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자신이 쓴 글에 느낌을 더하기 위해 곡을 붙인다는 발상이 참 좋았다.

그러다가 아내가 어느 연수회에서 작곡가이며 가수이기도 한 백창우씨를 만났다. 이 분 이야기 역시 작곡 초보자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아내가 들려준 백창우씨 이야기를 내가 이해한 식으로 다시 요약을 하면 이렇다.

 

“작곡은 중학교 음악 교과서를 볼 정도면 된다. 일단 곡을 흥얼거린다. 어느 정도 되면 녹음을 한다. 음악을 조금만 하는 사람이라면 녹음된 내용을 가지고 채보(採譜)를 해줄 수 있다. 그리고 장조니 단조 같은 것도 고민할 게 없다. 우선 쉬운 다장조부터 하라.”

 

내 흥을 살려보자


그럼에도 나처럼 재주가 없는 사람에게는 더 특별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건 바로 ‘나’에게서 시작하자는 것. 나는 내 삶, 내 일을 좋아한다. 내가 쓴 글 역시 좋아한다. 나는 어린애처럼 자기애가 강하니까 작곡에도 이걸 살려면 되지 않겠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벼꽃’이다. 이 시에 대해서는 애정이 많다보니 예전에 남에게 작곡을 부탁한 적도 있었다. 이 참에 내 글에 내가 곡을 붙여보자. 다른 사람이 쓴 글보다는 내가 쓴 시를 가지고 노래를 만든다면 한결 더 재미날 것 같다. 또한 작곡하는 과정에서 피아노에도 다시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먼저 시를 가지고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다가 나름 근사하다고 생각되면 녹음을 했다. 시를 가지고 이렇게 노래로 하다보니 시도 다시 고치게 된다. 시 제목도 바꾸어 '목숨꽃'이 되었다. 노랫말로 흥얼거리다가 곡도 다시 고치고. 어떨 때는 머릿속에 온통 곡만 들어가 있기도 했다. 일하다가는 물론이요,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도 새로운 멜로디가 떠오르면 박차고 일어나 메모를 하고 녹음을 하곤 했다. 일주일 정도 걸려 어느 정도 녹음이 되자, 큰 아이에게 채보를 부탁했다.

 

탱이가 해준 악보를 보는 순간. 감동이다. 전문가가 볼 때는 어설프기 짝이 없겠지만 나로서는 감개무량이다. 이제 이것을 토대로 틈틈이 피아노를 둥당거리면서 다시 곡을 다듬는다. 남이 작곡한 노래를 듣거나 부르기만 하다가 스스로 곡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자급자족 삶의 한 부분이 되리라. 그래서일까 노래로 나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되살리는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

 

이제는 음악에 대한 내 꿈이 커졌다. 느낌이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며, 음악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도 작곡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참에 작은 목소리로 멜로디를 살려 속삭여본다.

 

느낌~이 살아있다면~

그 누~구~라도~

자기만의 흥을 살릴 수 있으리오.

나만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리라.

최복인 와! 짝짝짝짝!!!!!
여기까지 속삭임이 들리는 듯해요. 느낌~이 살아있다면~~~
제가 다 감동이네요. 요즘 아이들이 기타를 함께 배우자고 자꾸만 권하는데도
난 못해 난 못해.... 이러고 있었거든요.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하고 싶다거나 또 만들어보고 싶다거나 하는 욕망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것 같고...
오늘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 내가 좀 한심한 생각이 들면서 힘이 쭉 빠져있었는데
이 글을 읽으며 갑자기 왜 가슴이 콩당콩당 설레이는지요?
뭐랄까, 땅에서 싹이 나오고 나무에서 꽃과 잎들이 꼬물대는 모습을 보며 봄을 느끼듯이
사람을 통해 아, 봄이로구나! 하고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이런 느낌은 또 처음이네요~. 뭔 말인지 잘 모르시겠죠? ㅎ
암튼, 진짜 살아있는 느낌이랄까?
보일락 말락 하는 꽃망울을 보면서 앞으로 터질 꽃에 대한 설레임에 한껏 부푼 마음에 젖어드는 기분?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글이네요~.
언제쯤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2010/03/21 x
  허경 와~작곡을 하셨네요!
저도 작곡 한번 해보고 싶어서 언제 계속 하려고 하는데 제가 아는노래들이랑 음이 똑같게 되서.... ㅋㅋ
이 글 보니까 피아노가 치고싶어 지네요 !^^
2010/03/21 x
  김광화 복인님 박수, 고마워요.
친구들 앞에서
벌써 공연을 한 번 한 셈이네요 ㅎㅎㅎ
우리 감정을 조절하지 말고
올라오면 노래로 풀어버립시다 ㅋㅋㅋ
'사람을 통해 아, 봄이로구나!'
와, 근사해요. 시네요.
어쩌면 50년된 나무에서 새순이 돋는 그런 느낌 ㅎㅎ
맞나요?

경이도 찾아주어 고마워.
언제 '경이와 광화의 창작 무대'!!!
이런 공연 한번 올려야 할 텐데^^
경이는 뭐든 잘 할 수 있을 거야.
아저씨는 이제야 음악을 내것으로 느끼기 시작했으니까.
2010/03/22 x
  rlfdlek 축하드려요. 저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저희집에서 잠 자고 있는 풍금을 얼른 깨워야할 텐데... ^*^. 2010/03/22 x
  이영아 저도 "벼꽃"노래 듣고 싶어요. 작은 음악회라도 하신다면 아이들 손잡고 가서 가만히 듣고 오고 싶어요. 저도 2007년에 백창우 선생님의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는데... 이런 멋진 경험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0/03/27 x
  전희식 아주 충격입니다. 작곡!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일을 하셨습니다.

 

 

 

나는 노래가 서투르다. 부끄러울 정도로. 음감이 떨어지고 박자, 리듬, 멜로디를 잘 모른다. 이웃들과 합창을 해보면 내가 많이 틀린다. 노래방 가서조차 18번이랍시고 부르는 노래가 하나 정도 있을 뿐. 악기 역시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게 없다.

좌절을 넘어

  보통 때는 음악을 모르고 살아도 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 둘이 틈틈이 피아노를 두들긴다. 한 곡 한 곡 치고 나가는 맛이 좋은가 보다. 학교나 학원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데도 음악을 즐긴다. 어쩌면 남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기에 음악을 즐기는 지도 모르겠다. 부모는 음악에 대한 재능도 없고, 관심조차 적은데 아이들이 스스로 해가니 신기할 뿐이다. 아마 호기심에서 시작하고, 자신이 흥이 날 때 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궁금함에 작은 아이에게 피아노를 열심히 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피아노를 치다가 막히잖아요. 그럼 막힌 바로 그 부분이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자꾸 그 벽을 넘어보고 싶은 거지요.”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아내도 역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앞뒤가 이러니 나만 더 외톨이가 된 듯하다. 안 되겠다 싶어, 나 역시 겨울이면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피아노 앞에 앉아 둥당거려보았다. 그 과정에서 아내도 우리 딸 탱이도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쳐봐요. 한 곡 피아니스트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 말대로 이 곡 저 곡 집적대어 보았지만 연습을 할수록 손은 오그라들고, 악보는 벽처럼 높았다. 역시 나는 안 되는가?

  그런데 지난해 봄 무렵, 이번에는 좀 다르게 음악이 내게 다가왔다. 뜻하지 않게 영감을 받았다. 이웃 가운데 나이 오십이 넘어, 작곡을 한 사람이 있다. 이 분은 미술교사를 하다가 학교를 그만 두고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기타를 손에 잡더니 자신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 드디어 얼마 전부터 작곡을 시작했단다. 그런데 그 동기가 재미있다.
“글만으로는 느낌을 제대로 나누기 어렵데요. 그래서 글에다가 곡을 붙이니까 한결 낫더라고요.”

  아하, 그런 길이 있구나! 나로서는 무척 감동스런 이야기였다. 내 나이에 새로운 분야를 만난다는 것도 좋았지만 자신이 쓴 글에 느낌을 더하기 위해 곡을 붙인다는 생각이 참 좋았다. 나도 글을 자주 쓰는 편이니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어슴푸레 들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어느 모임에서 작곡가이며 가수이기도 한 백창우씨 이야기를 들었단다. 이 분 이야기 역시 작곡 초보자에게 용기를 준다.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를 내 식으로 간추리면 이렇다.

“작곡은 중학교 음악 교과서를 볼 정도면 된다. 우선 먼저 곡을 흥얼거린다. 어느 정도 되면 녹음을 한다. 음악을 조금만 하는 사람이라면 녹음된 내용을 가지고 악보를 그려줄 수 있다. 그리고 장조니 단조 같은 것도 고민할 게 없다. 우선 쉬운 다장조부터 하라.”
  
노래를 딱 한 곡만 짓는다면?

  자,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그렇다고 출발선이 또렷이 보이지 않는다. 나처럼 재주가 없는 사람에게는 더 특별한 뭔가가 필요하다. 이걸 하지 않고는 못 베길 정도의 마음이랄까. 그건 바로 오래도록 쌓이고 쌓여, 뭔가로 살짝만 건드려주면 터져 나오는 내안의 느낌이겠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 묻어두고 눌러두어도 불쑥 불쑥 떠오르는 순간 말이다.

  내게는 그런 순간이 언제인가? 농사를 짓다가 처음으로 벼꽃이 피는 과정을 눈으로 봤을 때다. 내 삶을 통틀어 노래를 딱 한 곡만 짓는다면? 나는 바로 이 벼꽃을 노래로 부르고 싶어라.

  벼꽃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더 해 보자. 벼꽃은 벼가 자라면서 한여름 무더위에 피는 꽃이다. 벼꽃이 뭔가. 바로 우리네 쌀이 되고 밥이 되는 꽃이다. 세상에는 꽃이 많기도 하지만 가장 소중한 꽃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벼꽃을 들겠다. 우리네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목숨을 살려주는 꽃이 아닌가. 하여, 나는 벼꽃을 ‘목숨꽃’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벼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암술은 껍질 속에 깊숙이 있어 활짝 벌어졌을 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 보이지도 않고, 수술은 머리카락보다 더 가늘어 보일 듯 말듯하다.

  그나마 벼꽃은 그리 아름답지도 않다. 수술은 노란 빛이 살짝 섞인 흰빛이라 그저 심심하다. 그 흔한 꽃잎조차 흔적만 남아있을 뿐. 오래 피지도 않는다. 껍질 하나가 벌어졌다가 수정을 끝내고 다시 닫히는 순간을 지켜보니 기껏 한 시간 남짓. 벼꽃은 꿀이 없고, 꽃가루는 맨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으니 벌도 나비도 날아오지 않는다. 뜨거운 햇살과 중력의 도움으로 수정을 끝낸 벼 꽃 한 송이는 그 뒤 벌레들이 뚫고 들어오는 걸 이겨내며, 다시 40여 일쯤 지나서 쌀 한 톨이 된다.

   그런데 겉보기와 달리 알면 알수록 벼꽃이 끌린다. 날씨가 좋다면 그 날 오전 열한 시에서 오후 한 시 사이에 많이 핀다. 우리네 결혼식도 대부분 그 시간대가 많지 않나. 수정 순간도 사람 몸짓과 닮았다. 수정을 끝낸 수술이 서서히 축 늘어지는 모습 역시 남자의 성을 보는 듯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또한 벼 낟알의 껍질은 얼마나 굳건한가. 수정하기 전이나 수정 뒤에는 때가 되지 않는 한, 제 스스로 벌어지는 법이 없다. 수정 전은 처녀성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며, 수정 뒤는 모성을 고스란히 품는다. 햇살에 잘 말린 벼는 일년쯤 지나도 끄덕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이 껍질 때문이다. 벼 껍질은 벌레나 곰팡이가 뚫고 들어오는 걸 물리친다. 같은 조건에서 팥이나 수수 같은 곡식은 팔월만 되면 줄줄이 벌레가 나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온도와 습도가 알맞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껍질을 벌려 싹을 내민다. 벼는 물이 그득한 논에서도 잘 자라지만 물이 잘 빠지는 밭에서도 김만 매 주면 잘 자라, 열매를 맺는다. 물이 부족한 산골에는 지금도 밭벼가 이어 내려올 정도로. 심지어 아주 따뜻한 나라에서는 한 해에 두 번 세 번 벼농사가 가능하단다. 이렇게 끈질긴 생명력이 있기에 그 많은 사람이 목숨을 이어오고 또 자식을 키워온 셈이다.

모두가 자기다운 꽃으로 피어나자

  벼꽃은 내 삶을 자주 돌아보게 한다. 나는 그동안 내 목숨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던가? 담배가 나쁘다는 거 알면서도 이를 못 끊어 오래도록 괴로워했던 적도 있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머리가 아프고 때로는 토하면서 쓰디쓴 위액을 게워야할 때는 또 몇 번이었던가. 내 숨결 내 걸음걸이를 제쳐두고 헉헉대며 지나온 세월하며, 사람 관계에서 서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칼날 같은 말들로 주고받은 상처들은 또 얼마나 깊었나.

  우리가 먹는 쌀 한 톨은 벼꽃 하나가 피고 져, 영근 열매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은 그런 벼꽃이 한 다발쯤 피었다가 진, 하늘이 주신 목숨이다. 이렇게 소중한 목숨을 소중하게 돌보지 못했던 내 아픔을 먼저 스스로 감싸고 싶다. ‘이젠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며. 벼가 자라는 들판을 걸으며,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 벼꽃이 피는 걸 지켜보면서 솟아나는 느낌을 시로 쓰기 시작했다.

  이 시는 어린이 신문 <굴렁쇠>에 실렸다. ‘벼꽃’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노래를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가장 먼저 끌린 시다.
  ‘벼꽃’에 느낌을 살려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다가 나름 괜찮다고 생각되면 녹음을 했다. 시를 가지고 이렇게 노래로 짓다보니 시도 다시 고치게 된다. 노래를 짓는 과정에서 제목도 ‘목숨꽃’으로 바꾸었다. 흥얼거리다가 곡도 다시 고치고. 어떨 때는 머릿속에 온통 곡만 들어가 있기도 했다. 일하다가는 물론이요,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도 내 마음에 드는 멜로디가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메모를 하고 녹음을 하곤 했다. 일주일 정도 걸려 어느 정도 녹음이 되자, 탱이에게 악보를 그려 달라 했다.

  탱이가 해준 악보를 보는 순간, 감동이다. 전문가가 볼 때는 어설프기 짝이 없겠지만 나로서는 기쁘다. 이제 이것을 토대로 틈틈이 피아노를 아기가 걸음마 배우듯 둥당거리면서 다시 곡을 다듬는다.

  내 선에서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이 들자, 이제는 틈만 나면 이웃들 앞에서 발표도 하고, 도움말을 듣고 또 다듬는다. 남이 작곡한 노래를 듣거나 부르기만 하다가 스스로 곡을 만들고 다듬는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 또 음치(音癡)에 가까운 내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놀랍고, 신기하다.

  글쓰기가 자기 삶을 먼저 가꾸듯이 노래도 그러한 거 같다. 지금도 나는 ‘목숨꽃’을 가끔 부르면서 자신을 추스른다. 누군가에게 좋지 않는 말을 내가 했거나 들었을 때, 보지 않으면 더 좋았을 걸 보았을 때, 먹지 않아도 될 것들을 먹었을 때.... 그럴 때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을 돌아보곤 한다.

  우리 둘레를 보면 제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 돈이 전부인 것처럼 또 경쟁만이 살 길 인양 세상이 미쳐 돌아가다 보니 제 중심을 굳건히 지키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긴 하다. 하지만 그 동기가 어디에 있든 이런 사회는 어른은 물론 자라는 아이들마저 쪼그라들고 병들게 한다. 어른으로서 아이들 성장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망쳐서야 되겠나. 이 땅의 평화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제 목숨을 먼저 소중히 여기는 데서 시작한다고 나는 믿는다.

  볼품없는 벼꽃이 우리네 목숨을 살리듯이 역시나 보통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우리 사회를 빛나게 한다. 우리 모두 부모가 물려준 목숨이니 소중하게 가꾸자. 이 땅의 아이들도 남과 경쟁으로 주눅 들고 병들게 하지 말고, 모두 자기다운 꽃으로 소중하게 피어나게 하자.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나는 ‘목숨꽃’을 계속 부르고 싶다. 목숨을 생각하며, 천천히.


  이양구 님은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시기에 읽을 ㅐ맏 이토록 마음이 기쁘고 평않지겠지요. ㅇ전에 토종 ㅣ앗을 주셔찌만, 다 잃고, 이젠 엊ㅅ엉ㅛ. 다시 토종이든 아니든 ㅏㅆ은 쫌 보내 쭈쎼요> 따씨 농사를 시작하려고요. 계좓ㅗ 보내 주세요.  감사합니다. 2011/03/21 x
  정윤례 벼꽃을 처음봅니다. 목숨꽃, 처절한 이름이지만 딱 맞
는 이름인 것 같기도 하네요... 벼꽃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악보가 되어 세상에 나왔네요.
우리들 목숨을 소중히 하며 자기다운 꽃으로 피어납시다
피는 꽃마다 아름다우니까요.....
작곡에 작사까지 ~~ 한곡한곡모아서 발표회를 하는
그날까지 쭉......*^^*

4월에 부산에서 귀농관련강의 하신다고 들었는데
언제인지 몰라서 여쭈어봅니다.
2011/03/23 x
  김광화 양구님 씨앗은 아내가 챙겨본다는 데
얼마나 될지...

식목일입니다.
오시기 전에 부산 귀농학교로
미리 연락을 하시는 게 좋을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