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학교에 강의를 가다보면 가끔 받는 질문이 있다. 바로 돈 이야기다.
“돈 한 푼 없는 사람도 귀농을 할 수 있나요?”
땅과 집을 마련하자면 돈이 제법 든다. 그러나 그 이전에 사람들이 귀농이라면 무조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도 쉽고 편리하게.
나는 그런 유토피아는 없다고 본다. 적어도 자본주의 체제에 오래도록 세뇌당하고, 돈에 휘둘리며 살아온 인생이라면 이를 먼저 치유하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설사 돈이 많아 너른 땅 사고, 고대광실 지어놓아도 마을에서 인심을 잃는다면 지속적으로 뿌리 내리기가 어렵다.
치유를 향한 발걸음은 무거울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바로 인사하기다. 콘크리트 회색 도시를 떠나 흙냄새 똥냄새 나는 시골에 뿌리는 데는 인사만 잘 해도 절반은 성공하는 거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도시는 익명성이 기본이라면 시골은 개방성이다. 누구네 젓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고, 이웃집에서 무슨 요리를 하는 지 냄새만으로도 어느 정도 안다.
궁금한 걸 인사로 물어보기
그럼, 어떻게 인사를 하는가? 간단하다. 궁금한 걸 인사로 하면 된다. 이를테면 봄에 이것저것을 많이 심게 된다. 구체적으로 감자를 언제 심을지를 모른다면 다음과 같이 인사를 한다. 길 가다 만난 할머니도 좋고, 이웃집을 일부러 방문해서 물어도 좋다. 묻는 게 바로 인사다.
“할머니, 감자 심었어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부지런하다. 책에 나와 있는 감자 심는 시기보다 대개는 이르다. 열흘에서 보름 정도. 그러니까 할머니가 알려주시는 날짜보다 열흘쯤 늦게 심어도 된다. 이런 식으로 일을 중심에 놓고 다양한 인사법이 가능한 곳이 시골이다. 개방성이 주는 장점이기도 하다. 아침에 마을 어른들을 마주치면
“무슨 일 하려 가세요?”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뭐 하세요?”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마주치면
“무슨 일 하셨어요?”
이런 인사가 시골에서는 너무 자연스럽다. 때로는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 때는 가끔 당황하기도 한다. 그냥 “안녕하세요?”하는 조금은 의례적인 인사에 익숙하다. 또는 내가 하는 일에 나만의 익명성을 즐기고 싶은 욕구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 일은 단순하면서 개방적이다. 숨길 것도 그리 없고, 오히려 그 인사를 계기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만 자신을 선배로 대접하면 기분이 좋다. 시골 어른들은 많은 부분에서 농사 선배다. 모든 걸 떠나서 오랜 세월 땅을 지켜온 것만으로도 존중할 만하지 않는가. 이 분들은 조리 있게 말하는 게 서툴 뿐,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기꺼이 알려준다. 도시에서 많이 배운 젊은이들에게 ‘가방 끈 짧은’ 자신이 뭔가를 알려준다는 것에 나름 보람을 느낀다.
칭찬으로 인사하기
이 때 건성으로 물으면 안 된다. 진심으로 다가가야 시골살이에 필요한 폭넓은 정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다보면 필요한 씨앗도 얻을 수 있고, 더 나아가 땅 임대나 매매, 또는 품삯을 받는 일에 대한 정보도 알게 된다. 10여 년 전, 처음 시골 마을에 살면서 이웃 할머니네 처마에 걸려있는 옥수수 씨앗을 보고
“씨앗이 참 예쁘네요. 무슨 옥수수에요?”
“검은 찰옥수수지. 옥수수 심어볼 테여? 씨 좀 줄까?”
나는 그 때 얻은 옥수수 씨앗을 지금까지도 잘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연수회나 귀농학교 강의 때 이 씨앗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한다.
시골 인사는 정말 다양하다. 칭찬이나 덕담도 곧잘 주고받는다. 이 역시 시골이 갖는 개방성 때문이다. 누구네 고추 농사가 잘 되었는지, 벼농사가 잘 안 되었는지를 다 안다. 이 때 사람들은 잘 된 걸 칭찬하는 인사를 한다. 굳이 안 된 농사를 이야기해서 상대 불편한 심정을 긁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걸 이 분들은 오랜 세월 몸으로 체득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심은 감자는 잘 안 되고, 벼는 잘 되고 있으면
“자네, 벼농사 잘 했구만!”
이런 인사를 들으면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나 역시 이런 인사법을 배워서 시골 어른들에게 기꺼이 칭찬하는 인사를 한다. 내가 가장 못하는 농사 가운데 하나가 호박이다. 호박 과실파리 때문에 한번도 늙은 호박을 제대로 거둔 적이 없다. 그러니 마을 할머니가 밭두렁에 키운 늙은 호박이 예뻐 보일밖에.
“할머니, 호박이 참 좋네요.”
“그려. 호박 좀 줄까?”
지난해는 이 할머니한테 인사 한 번 하고 생각지도 않게 늙은 호박을 두 덩이나 얻었다. 대신에 그냥 얻어먹기만 하기는 어려우니 할머니가 농사짓지 않은 야콘을 한 봉지 드렸다.
다만 이런 식의 인사가 다 좋은 건 아니다. 이를테면 곡식을 심어 돈을 해야 하는 경우는 파종 적기보다 몇 달 씩 이르거나 늦게 심는 경우도 있다. 고추 같은 경우 예전에 직파를 할 때는 4월말 정도였는데 늦추위가 심한 이곳에서는 고추로 돈을 벌려면 대개 2월에 씨앗을 넣는다. 모종은 서리가 끝나는 5월초에 옮겨 심는다.
또한 비료나 농약 특히 제초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는 게 좋다. 김을 제대로 매지 못하고 풀이 우후죽순으로 자라면 마을 어른들은 지나칠 정도로 개입을 하려고 한다. 풀약(제초제)을 치라고. 심지어 주인이 없을 때 약을 대신 쳐주기도 한다.
개방성의 지나친 보기라고 할까. 시골도 기계화와 상업농의 흐름에 점점 흙냄새가 사라져간다. 인사를 하되 흙냄새 나는 인사는 본인을 위해서도 마을 어른들을 위해서도 다함께 뿌리내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시골도 점차 “안녕하냐?”는 인사를 벗어나기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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