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보통 세상과 소통을 위해 쓴다. 자신이 겪은 경험, 알고 있는 정보, 자신만의 영감을 나누고 싶어서다. 그러나 가끔은 자신을 위한 글이 먼저 일 때도 있다. 바로 지금 쓰는 이 글이 그렇다.
한마디로 안전에 대한 이야기다. 연장을 다루다 보면 그 편리함만큼이나 위험하다. 그동안 나 자신이 다친 경험이나 위험했던 순간을 돌아보고, 또 남들의 경험도 참고하고면서 그동안 축적된 정보를 정리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 먼저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된다. 안전을 늘 염두에 두고 몸과 마음을 지켜내기 위해.
자급도가 높아질수록 연장을 많이 다루게 된다. 요리 만해도 그렇다. 돈 주고 사먹는다면 부패했거나 독소가 든 음식을 조심하면 되지만 손수 만들려면 온갖 주방 연장이 필요하다. 주방용 칼조차 쓰기에 따라 아주 위험한 흉기가 된다. 기계화된 농사보다 자급자족 농사는 연장을 더 많이 쓴다. 손수 집을 짓거나 수리를 한다면 상하수도, 목공, 조적과 미장, 전기 작업에 필요한 연장들이 크게 늘어난다. 되도록 엔진이 들어가는 동력 기계를 덜 쓰는 게 좋지만 전혀 안 쓰기는 어려운 세상이다. 안전을 염두에 두지 않는 편리함이란 본인은 물론 가족과 이웃한테 적지 않게 피해를 준다. 그러니 집을 짓거나 하는 일처럼 연장을 많이 쓸 때는 충분히 늘 주위를 기울어야 한다.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왜 연장을 쓰는가?’하는 물음을 가져야한다. 연장을 손에 드는 순간, 떠올려야할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답은 간단하다. 쉽게, 빨리 하고 싶기 때문이다. 연장을 쓰면 정말 일이 쉽고 빠르다. 굵은 나무를 우리 몸의 손톱이나 이빨로 물어뜯어 자른다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쓰는 간단한 수동식 톱조차 얼마나 쉽고 편리한 도구인가. 게다가 기계식 톱인 엔진톱이나 전기톱은 수동식 톱과 견줄 수 없이 효율적이다. 그러므로 연장을 드는 순간, 연장을 만든 사람과 연장 자체에게 고마운 마음을 먼저 갖는 게 안전에 좋다. 또한 연장을 쓰는 만큼 일이 빠르니까 충분히 쉬어가면서 하는 게 조화로운 삶이다. 연장을 들기 전에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한다. 요가나 태극권이면 더 좋다.
-마음이 급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되도록 연장을 들지 않는다. 연장을 다루게 되면 자연 긴장하게 된다. 그런데 연장을 사용하기도 전에 다른 일로 긴장이 되어있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일을 하면서 연장보다 자신이 안고 있는 스트레스에 집중하게 된다. 과도한 스트레스나 시간에 쫒길 때는 그 자체로 이미 자신을 파괴하기에 이 때 연장을 드는 건 자신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 된다. 주방에서 쉽게 하는 칼질조차 음식 재료를 자르기보다 자신의 손을 베곤 한다.
-요령을 숙지한다. 이게 참 어렵다. 간단하면서 어려운 게 요령이다. 연장마다 그 고유한 요령이 있고, 또 일이 진행되면서 상황이 역동적으로 바뀌기에 그렇다. 그렇더라도 우선은 중요한 기본 요령에 대해서는 숙지하는 게 좋다. 그 몇 가지를 보자.
첫째가 연장으로 하고자 하는 대상을 관통할 때다. 드릴로 나무에 구멍을 뚫는다면 드릴 비트가 마지막에는 나무를 관통하게 된다. 이 때 가속도가 생긴다. 그 직전까지는 나무가 저항을 하고 있기에 몸에서 힘을 많이 주게 된다. 그러다가 관통하는 순간은 전혀 저항이 없기에 관성이 생겨 몸이 중심을 잃고 확 앞으로 쏠리게 된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톱질, 낫질, 도끼질 다 그렇다. 관통하는 순간에 집중하고 조금 더 긴장하는 수밖에 없다.
둘째는 자세다. 자연에서 하는 일은 단순반복이라기보다 변화가 많다. 이게 바로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톱으로 나무 하나를 베더라도 톱질 순간마다 자세가 조금씩 달라진다. 특히나 엔진톱으로 일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세가 삐딱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만 더 하면 잘라 질 거 같으니 어정쩡한 자세로 계속 강행하게 된다. 이 지점이 바로 사고를 불러온다. 일을 진행하면서 몸의 균형이 달라지면 거기에 맞추어 몸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 특히나 엔진을 쓰는 동력 기계는 그 자체 소음과 진동 때문에 몸과 마음을 끝없이 분리시킨다.
셋째 같은 연장으로 같은 일을 너무 오래하지 않는다. 낫이나 예초기로 풀을 벨 때 같은 일을 반복해서 오래 하다보면 긴장도가 떨어진다. 또한 예초기는 몸에 무리한 진동을 주어 관절에 손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초기로 한 시간이면 손으로 하는 낫질에 견주어 하루 이상의 일을 한 셈이다. 그러므로 되도록 연장이 주는 편리함에 고마워하며 그 일이 조금 남았더라도 충분히 쉬고 다시 하거나 다른 일로 넘어가는 게 좋다. 다른 일이란 그 이전에 했던 동작과 다른 동작이 필요한 일을 말한다. 힘든 일을 먼저 했다면 힘을 적게 들여도 되는 일을, 동력 기계를 썼다면 그 다음은 맨손으로 하는 일을. 이런 식으로 골고루 선택해서 한다. 효율보다 안전과 조화가 우선이다.
-연장은 제자리, 둘레는 정리정돈. 시간에 쫒기고 돈에 휘둘리다 보면 정리정돈보다 일 우선이기 쉽다. 연장을 처음 써보는 초보자들이 쉽게 빠지는 시행착오다. 일이 서툴수록 정리정돈은 하지 않고, 일 욕심만 많아 서둘 게 되는 이치다. 그러다보면 연장이 사람을 잡는다. 손수 집을 짓다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사례를 많이 보았다. 전문 목수나 기계공이 아닌 아마추어라는 걸 늘 마음에 두자. 연장 손잡이를 빨간 색으로 칠을 해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히 풀이 우거진 밭에서 찾기도 쉽고, 붉은 색은 안전을 되새기게 해준다.
-조금 역설적일 수 있는 데 연장은 잘 갈아 쓴다. 잘 드는 연장이 몸에도 치명적이기는 하지만 연장 고유의 기능은 날이 잘 벼려진 데 있다. 날이 안 드는 칼이나 낫이라면 무리하게 힘을 주게 된다. 날이 무디어 생각처럼 일이 안 될 때 역시 사고 위험이 높다. 날이 무디다고 몸이 덜 다치는 거는 아니다. 무딘 연장이라면 연장을 쓰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다. 연장을 다 썼으면 녹슬지 않게 잘 손질해둔다.
-집중이다. 집중은 대상과 소통이다. 연장을 다루면서는 연장에 집중해야한다. 연장의 떨림, 둘레 상황, 몸의 위치에 마음도 함께 해야 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집중을 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니 안전이 몸에 익어야 한다. 연장을 다룰 때는 마음이 몸을 앞서서는 안 된다. 몸과 마음이 함께 하고, 되도록 몸의 언어를 존중해야한다. 연장을 또 하나의 몸으로 여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연장은 몸을 공격하는 흉기로 바뀐다. 연장은 인간의 노예가 아니다. 인격을 갖는 존재로 소통하는 게 사람 자신에게도 좋다. 연장이 쓸 때마다 그 연장이 처음 등장했을 때 누렸을, 짜릿한 ‘인류적 기쁨’을 누리자.
'자급자족 > 자급자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사만 잘 해도 절반은 성공 (0) | 2010.03.08 |
---|---|
자급자족(49) 집을 가꾸는 맛 (0) | 2010.03.02 |
간단하면서 반영구적인 냄비 받침대 만들기 (0) | 2010.02.21 |
자급자족(48) 일어서는 봄 (0) | 2010.02.16 |
자급자족(47) 가뭇가뭇 아들의 콧수염 ‘성장 잔치’ (0) | 2010.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