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자연과 하나 되기

번잡하고도 분주한 하루

모두 빛 2008. 6. 20. 20:52
 

 

오늘 하루는 번잡하고도 분주했다. 오늘부터 이박삼일 탱이 친구들 모임이 있다. 대학을 생각하지 않는 친구들이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 모임을 시작하는 날. 그런데 해성이와 해강이는 어제부터 와서 이것저것 사전 준비를 한다고 우리 집에 미리 와 있다.

 

오늘 따라 전화도 잦다. 탱이 전화에 내 전화까지. 아침 먹고 해성이 해강이랑 차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흥미있는 주제가 나왔다. ‘이해’와 ‘공감’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떻게 하면 남자들이 공감 능력을 높일 수 있나. 왜 공감하는 능력이 남자는 여자보다 부족한가. 이야기에 물꼬가 막 터지기 시작하는 데 누군가 집으로 왔다.

 

보니 군청 공무원이란다. 요점은 수도공사 때문. 예전에 공사했던 마을 상수 탱크가 녹이 슬어 이를 교체해야하기에 답사차 온 것이다. 마을 주민이 여럿이지만 어찌하다 보니 내가 공무원들을 맞이해야 했다.

 

풀이 무성한 물 탱크 둘레를 낫으로 처가며, 공무원들을 안내했다. 공사를 위한 진입로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문제. 이를 풀자면 이웃집이랑 상의가 되어야 했다. 부랴부랴 이웃에게 전화를 했다. 푸른꿈 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이웃은 바쁜 일이 있는지 시간 약속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많은 주민들이 절실히 원하고 있기에 점심시간 짬을 이용해서 잠깐 만났다.

 

그리고 나자 이번에는 여기저기 멀리서 오는 탱이 친구들 전화. 괴산과 보성에서 왔다. 시장도 볼겸 탱이가 친구들을 데리려 터미널로 갔다. 다행이 두 곳에서 오는 친구들이 비슷한 시간에 만나 함께 우르르 집으로 왔다. 괴산 친구 둘은 이번 모임이 처음이다.

 

거실이 바글바글하다. 오후 네시쯤, 생각지도 않게 아내가 열 사람 가까운 점심상을 차려냈다. 보성에서 온 친구들은 아침 먹고 이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단다. 연신 배고프는 소리를 한다. 괴산 친구들은 점심을 먹고 왔다 하고. 그러니 이래저래 정신이 없다.

 

점심을 다 먹고 차 한 잔 마시는 데 저 멀리 의정부에서 오는 친구가 도착했단다. 택시를 타고 오라 했다. 도착하자 각자가 들고 온 짐으로 거실이 비좁을 지경.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드디어 모임 장소로 이동. 이 �도 번잡했다. 아내가 기본양념에다가 김치며 이불이며 모기장까지 우리 집에 걸 챙겨준다. 올라가는 길에 우리 밭에 있는 감자까지 캐서.

 

상상이는 누나 친구들이 우르르 오니 저는 저대로 친구 찾아 나선다. 오늘은 상상이가 이웃들한테 풍물을 배우는 날. 장소는 푸른꿈 고등학교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우르르 마을 나선다.  

 

나는 한 숨 돌리고 들깨를 심으려 밭으로 갔다. 이제 고요한가. 가끔 고라니가 뒷산에서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고라니 울음소리는 아주 특이해서 사람 신경을 자극한다. 곧이어 잠잠하고 고요가 찾아왔지만 내 생각은 여전히 분주하다. 오늘 하루는 하도 많은 사람을 만났기에 생각이 이리저리 춤을 춘다. 계곡 물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을 만큼.

 

들깨를 심으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 번잡함, 이 분주함은 사실 내가 뜻한 게 아닌가. 탱이 친구들 모임을 처음 생각한 것도 나였다. 대학을 안 다니는 친구들끼리 모임을 해 보면 어떠냐고 탱이에게 제안하면서 모임이 커진 것이다. 물탱크 교체 역시 나와 무관하지가 않다. 이웃집에 먼저 제안을 한 거지만 녹이 쓴 물을 먹는 것에 대해 나 역시 흔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철판으로 된 물탱크는 주민들이 관리하기도 힘들 지경. 점차 페인트가 벗겨지면서 녹도 녹이지만 점점 탱크가 망가지고 있던 것이다. 다만 이웃이 다른 급한 일 때문에 내가 그 뒤처리를 맡았을 뿐이다.

 

젊은이들 모임도 그렇고 물탱크 교체도 그렇다. 그 일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적인 일은 아니다. 하는 게 좋다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선택으로 복잡하고 분주했던 하루였다.

그런데 들깨를 심고 돌아오는 어두운 저녁. 이제 우리 부부 둘만 있는 고요한 시간인가. 그런데 아내가 그런다.

 

“봉화에서 오는 친구는 차를 잘못 타서 내일 온대요. 그리고 집 뒤 굴뚝에 엄청난 벌집이 생겼어요. 지금 그래서 불을 지피고 쑥을 태우고 있어요.”

 

사람이 많아 번잡한 건 내 몫이지만 벌집은 또 무언가. 내 뜻과 상관이 없지 않은가. 6월 들어서면서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지 않았더니 벌이 집을 지었던 것이다. 내가 일을 벌여도 분주하고, 일을 벌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분주하다. 고요한 곳에는 자연이 번창하는가. 오늘은 이래저래 복잡하고 분주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