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농사와 사는 이야기

모종을 옮기는 마음

모두 빛 2008. 5. 29. 13:23
 

 

한동안 블로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비공개로 했다가

이제야 다시 엽니다.

  

참깨 모종을 본밭에 옮겨 심는다. 그동안 우리네 참깨 농사는 기복이 많았다. 농사 초기에는 생협과 직거래를 했기에 책임감이 크게 작용해서인지 농사가 잘 됐다.

 

몇 해를 그렇게 한 다음부터 참깨는 우리 먹을 거 정도만 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참깨 농사가 들쑥날쑥. 잘 안 될 때가 몇 번 있었다. 참깨는 가물어도 안 되고, 비가 많이 와도 안 된다. 참깨 심을 철은 가뭄이 심한 편이다. 날씨에 집중을 하면서 참깨를 심고 돌봐야한다.

 

게다가 우리는 비닐을 안 씌우고 하니까 더 어렵다. 비닐을 씌우면 비닐 속은 수분이 늘 어느 정도 유지되고, 또한 풀과 경쟁을 하지 않으니 어린 싹이 잘 자라게 된다. 그런데 비닐을 안 씌우고 하면 어린 참깨는 풀과 경쟁이 안 된다. 참깨 어린 싹은 정말 여리디 여리다. 참깨는 여러 포기를 심어니 자라면서 솎아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김 매주고 북을 주며 돌봐주어야 한다.

 

이렇게 열심히 하더라고 가뭄이 들면 자라다가 비실비실 골아버린다. 그러니 무경운으로 참깨 농사를 꾸준히 잘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가 지난해 아랫마을 순희 아주머니한테서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 바로 모종을 내어 심는 거다. 참깨를 모종으로 심다니! 아주머니가 심고 남은 참깨 한판 얻어 심었었다. 덕분에 지난해는 그럭저럭 참깨를 먹을 수 있었다.

 

올해는 아내가 작정을 하고 모종을 포토에 가꾸었다. 두 판 정도면 되는 데 처음 해보는 거라 넉넉히 8판을 했다. 아주머니들한테 배운 대로 해서인지 모종이 잘 된 편이다. 모종은 본잎이 6장 정도 되었을 때 옮기는 게 좋은 거 같다.

 

모종이 너무 어릴 때 즉 본잎이 네 장 정도일 때까지는 포토에서 모종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하면 참깨 뿌리가 상토 흙과 함께 올라와야하는 데 너무 어리다 보면 참깨 줄기가 올라오다가 끊어지기 쉽다. 반면에 너무 많이 자라면 포토 상태에서 거름이 부족하기에 본잎이 노란 빛을 띄게 된다.

 

어제 그저 비가 흠뻑 왔다. 오늘은 모종을 심기에 딱 좋은 날씨. 흙도 그렇다. 수분을 잘 머금고, 배수가 적당히 된 상태.

 

모종을 본밭에 옮기는 데 기분이 참 좋다. 무슨 모종이든 본밭에 옮길 때는 기분이 묘하다. 원래 곡식은 자연 흙 상태에서 자라는 게 가장 좋을 수 있다. 모종 상자에서는 풀은 없지만 곡식이 자라기에는 좁은 공간. 그러니 자랄수록 뿌리가 옆과 아래로 뻗지 못하고 사진에서 보듯이 좁은 공간에서 저희끼리 돌돌 말리는 것이다.

 

그러니 모종을 본밭으로 옮기면 뿌리가 흙을 따라 옆으로 아래로 마음껏 뻗을 수 있지 않겠나. 참깨 처지라 생각하고 내 기분을 말하자면 갇혀있던 생명이 자유를 찾는 그런 마음. 게다가 모종은 사람으로 치자면 사춘기 청소년만큼 자란 상태. 다른 풀과 경쟁해도 결코 지지 않을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렇게 세 판을 옮겨 심는데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도 본밭에 옮겨 심는 기쁜 마음에 땀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해는 점차 뜨거워지고, 땅에 수분은 많은 상태. 점점 땀이 많이 난다. 속옷이 젖어 흥건하다. 고양이는 그늘을 찾아 늘어지게 휴식을 취하는 날씨.

 

모종이 본밭으로 가듯이 나 역시 이제 그늘이 그립다. 참깨가 온전히 자유롭게 자라지 못하니 나 역시 온전히 자유롭지는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