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농사와 사는 이야기

마음이 맑아지는 아침, 늦가을 옥수수

모두 빛 2007. 9. 12. 09:11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집 가까이 나무만 희미하게 보일 뿐 앞산도 뒷산도 모두 안개에 가렸다.

 

밭두렁에 풀을 베려고 팥 밭으로 갔다. 낫으로 한참 풀을 치고 있는데 갑자기 내 곁에 우뚝 선 무언가가 있다. 보니 옥수수 한 그루. 이제 막 꽃이 핀다. 연노란 암술은 이슬을 잔뜩 머금고 있고, 그 곁에 거미가 줄을 드리고 있다.

 

마음이 맑아진다. 다가가 암술을 만져주고 옥수수를 안아주고 싶다. 그 마음을 담아, 사진으로 찰깍! 이 옥수수는 내가 심은 적이 없다. 지난해 거두고 남은 옥수수 알갱이가 저절로 떨어져, 저절로 싹이 나고, 저절로 자란 거다. 심지어 팥 심을 때도 싹이 난 기억이 없다. 지금은 키가 작은 팥 위로 우뚝 솟아 보라는 듯 당당하다.

 

우리가 농사짓는 밭은 전부 다 무경운 농사다. 무경운이란 쉽게 말해 밭을 갈지 않는 거다. 그러다 보니 감자도 지난해 캐다가 미처 다 못 캔 것들이 봄이면 저절로 나고, 당근도 겨울을 나면서 봄에는 예쁜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옥수수가 뒤늦게 자라 꽃을 피운 거는 처음이다. 천천히 옥수수를 올려다본다. 내 키만하다. 그 끝에는 수술이 하늘하늘, 새벽 공기 흐름에 따라 흔들린다. 곧이어 햇살이 올라오고 이슬이 마르면 암술에 가루를 뿌리겠지.

 

팥 밭 한 가운데 저절로 자란 옥수수. 오래된 친구를 만나 것 마냥 반갑다. 이 옥수수가 다 영글자면 적어도 한 달은 지나야 한다. 먹을 욕심보다 두고두고 오래 보고 싶다. 보고 또 봐도 좋다. 뭔가 내게 말을 거는 듯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