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무경운으로 하다 보니 온갖 벌레가 땅에 산다. 곡식에게 좋은 벌레도 많지만 골치아픈 벌레도 있다. 가장 대표가 되는 벌레가 거세미가 아닐까. 거세미는 밤나방애벌레다. 이 놈은 봄에 어린 고추싹이나 콩싹을 잘 먹어치운다. 콩 가운데서는 검은 콩을 아주 좋아한다. 이린 싹은 물론 조금 더 키워 옮겨심은 고추모종도 곧잘 먹어치운다.
지금 철은 곡식이 밭에 나와 있지 않기에 거세미는 주로 풀을 먹는다. 지금 이 놈을 잡지 않으면 곡식이 밭에 있을 때는 바로 곡식에게 달려든다. 이 놈은 잡기도 쉽지가 않다. 낮에는 풀숲이나 땅 속에 있다가 밤에 나와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풀을 뽑다가 보면 풀 뿌리 따라 여기저기에서 거세미가 달려 나온다. 그러다가 개구리도 심심잖게 나온다. 개구리는 아직 활동하기에는 이르지만 겨울잠에서 깨어나 흙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한다. 땅 거죽 가까이서 웅크리고 있다. 이 녀석들도 날이 좀더 따뜻해질 동안은 거세미를 잡아먹을 듯하다. 개구리가 새삼 식구가 된 듯 하다.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딱! 따딱! 따!”
딱새 소리다. 수컷이 암컷을 부른다. 먹이가 있으니 오라는 신호다.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면 그 둘레에는 벌레가 있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사람을 경계는 하지만 크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사진기를 꺼내 찍으려고 하면 살짝 날아갔다가 다시 온다. 사진은 내게서 한 2미터 거리에 있는 딱새다. 이 새는 반갑기 그지없다. 밭에 있는 벌레를 곧잘 잡아먹으니까. 이맘 때 딱새는 산란을 하는지 벌레들을 아주 좋아한다.
아마 밭을 기계를 간다면 이 모든 과정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무경운 농사가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보고 느끼는 건 참 많다. 무경운은 자연에 좀더 깊이 다가가는 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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