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반딧불이가 부쩍 많이 보인다. 환경이 살아나면서 점점 많아진 건가 아니면 우리네 사는 게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이를 볼 수 있는 여건이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풀에서도 반짝반짝 공중에도 반짝반짝. 어떤 때는 잠을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반딧불이가 반짝이곤 한다. 온 식구가 잠도 못 자고 흥분한다.
반딧불이는 깜깜한 밤일수록 잘 빛난다. 그런데 밤이라도 집안에 전깃불을 켜고 있으면 그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 반딧불이 빛을 약하게 만든다. 전기불이 다 꺼지고 그믐이 된 밤. 이 때 반딧불이 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너울너울 이리 휘익 저리 휘익.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반딧불이 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그런데 여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우선 깜깜한 밤이라야 한다. 우리 집은 물론 조금 떨어진 이웃 어느 한 집이라도 불이 켜 있으면 반딧불이가 내는 빛을 잡기가 어렵다. 전깃불이 자연의 빛을 얼마나 가리는 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전깃불이 다 꺼지기를 기다리기에는 내 몸이 너무 고단하다. 무얼 하는 지 12시까지 불을 켜놓는 가정들도 있다. 그렇게 몇 날 잠을 참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졸려 잠이 들곤 했다. 그렇다면 깜깜한 밤에 일어나면 되지 않을까. 잠을 자다가 오줌이 마렵거나 하면 잠깐 일어나게 된다. 이 때는 세상이 다 고요하고 아주 멀리서 점멸등만 외롭게 빛을 낸다. 반딧불이는 제 세상을 만난 거 마냥 밤하늘을 수놓는다. 아. 그런데 도저히 카메라를 가져다가 찍을 만큼 정신이 맑아지지 않는다.
마음은 찍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다.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때 좀더 참고 찍을 걸 하며 후회가 되기도 한다. 이러다가 사진 한 장 못 찍고 여름을 나는 건 아닌가. 게다가 점차 달이 밝아진다. 오늘도 초생달이 초저녁에 서쪽 하늘에 걸린 걸 보았다. 내일은 더 밝은 달이 더 오래 밤을 비출 거다.
그런 조바심에 어제는 초저녁부터 카메라를 준비했다. 밤 아홉시쯤, 우선 우리집 전깃불 가운데 방 하나만 남겨두고 다 꼈다. 한결 낫다. 그리고는 삼각대를 설치한 사진기를 들고 나셨다. 이웃 집 불빛이 흐르기는 하지만 우선 풀숲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라고 찍어보자.
차츰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반딧불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니 풀숲에 온통 반딧불이다. 두어 마리가 거의 붙어 있는 것도 있다. 우선 사진기를 갖다 대고 찍는다. 얼마 전에 사진기자 분한테 배운 대로 조리개를 잔뜩 조이고, 초점을 정확히 잡을 수 없으니 수동으로 놓고 찍는다.
밤이라 찰깍 하는 시간이 한참 걸린다. 쪼그리고 앉아 기다린다. 풀 속에 반딧불이는 움직임이 느리다. 빛도 깜박이는 게 일정하지는 않다. 여러 장 찍다 보니 한두 장은 건질만 하다. 이제 하늘을 나는 반딧불이를 찍어보자.
그런데 이놈들은 찍기가 정말 어렵다. 저기다 싶어 카메라를 돌리면 벌써 휘익 지나고 있다. 위로 아래로 옆으로 너울너울 잘도 난다. 아. 이 모습을 담고 싶은데.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카메라를 들고 따라갈 수도 없고, 가만히 앉아 반딧불이 따라 방향을 돌릴 수도 없고. 그런 내 모습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반딧불이는 잘 만 난다.
이따금 달라붙는 모기도 성가시다. 반딧불이 나는 모습을 사진으로 잘 담는 법이 없을까. 다음에는 그냥 똑딱이로 찍어볼까. 아니면 비디오를 빌려다가 찍어볼까. 자연환경은 너무나 좋은데 이를 담아낼 실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한 밤이었다. (2007.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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