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니 씨앗을 고를 일이 많다. 볍씨를 소금물로 고르면서 중요한 걸 하나 알게 되었다. 그 앞뒤 이야기를 좀 해보자.
얼핏 보기에는 수많은 볍씨들이 비슷하지만 이 가운데 되도록 속이 알차고 튼실한 걸로 골라내야 한다.
볍씨를 고를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소금물을 이용하는 거다. 한자로 염수선[鹽水選]이라 한다. 소금물을 적당한 비중으로 맞춘 다음 볍씨를 여기에 담가, 가라앉는 걸 씨앗으로 한다.
소금물 비중을 맞출 때 염도계를 쓰기도 하지만 농사꾼들은 보통 달걀을 쓴다. 달걀이 소금물 위로 100원 짜리 동전 정도 살짝 뜰 정도의 비중은 1. 10, 옆으로 누울 정도는 1. 13 소금물 바닥에서 바로 서는 정도는 1.08정도로 본다. 볍씨에 따라 비중을 조금 달리해야한다. 메벼는 비중 1. 13에 가깝게 하고, 찰벼와 검은벼는 이보다 비중을 낮추어 1.10, 밭벼는 1. 08로 한다. 만일 검은벼를 메벼에 가깝게 한다면 거의 다 뜨고, 가라앉는 씨앗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때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과연 이 달걀은 싱싱한가? 우선 손으로 달걀을 잡고 흔들어보면 상한(골은) 건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 상한 달걀은 알끈이 떨어졌는지 겉껍질과 달걀 속이 따로 논다. 흔들면 안에서 꿀렁꿀렁 흔들리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른 봄에 낳은 달걀을 가지고 10개 정도 흔들어보았다. 역시나 낳은 지 두어 달이 지난 거라 그런지 절반 가량이 흔들린다. 이런 달걀들은 다 상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다 싱싱할까? 실험 삼아 맹물에다가 달걀을 몇 개 넣어 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완전히 가라앉는 달걀이 있지만 여전히 물 위로 동동 뜨는 달걀이 있고, 심지어 맹물 중간에 떠있는 달걀도 있는 거다. 조금 당황스러워 가장 최근에 낳은 달걀 하나를 새로 넣었더니 볼 것도 없이 바로 물 속으로 가라앉으며 바닥에서 옆으로 누웠다. 흔들어보는 정도 가지고는 씨앗을 고르는 표준 달걀로 삼기에는 어림도 없다는 증거다.
여기서 번개처럼 생각 하나가 뻗어간다. 달걀도 씨앗이 아닌가. 그렇다. 병아리가 되는 씨(알)다. 이 역시 알이 싱싱하게 살아있어야 어미닭이 21일을 품어 병아리가 태어난다. 예전에 알을 품기다 보면 꼭 한두 알씩은 병아리가 안 되고 골아버리곤 했다. 심지어 어떤 때는 8알을 넣어주었는데 두 마리만 까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 확실하게 그 답을 찾은 거다. 어미닭한테 달걀을 품기기 전에 물에 담가 싱싱한 걸 골라야 한다. 이렇게 해서 넣어준다면 병아리로 깨어날 확률이 한결 높아지리라.
올해 자칫 상한 달걀로 볍씨를 고를 뻔 했다. 씨앗을 고르는 잣대로서 달걀을 이용하자면 이 달걀부터 튼실하고 싱싱한 걸로 골라야하는 데 말이다.
자급자족 농사에서는 볍씨만이 아니라 씨앗을 자급하는 게 많다. 고추, 옥수수, 참깨, 오이, 호박...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자급을 한다. 이 때도 씨앗을 고르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금물로 고르기는 조금 특별한 경우다.
보통은 눈으로 보고 여러 알 심어, 나중에 속아내기를 하는 편이다. 근데 이렇게 하다보면 일이 많다. 비닐이 없던 예전에는 고추를 5월 초에 밭에다가 직파를 했단다. 이 때 줄뿌림을 해서 많이 싹이 나면 이 가운데 튼실한 걸 빼고 나머지는 솎아냈다. 그러니 일이 얼마나 많은가. 씨앗이 되지 못하는 순간, 불필요한 고추 싹은 그냥 풀 대접을 받게 되고, 사람이 다시 하나하나 뽑아내야하니 말이다.
직파를 하더라도 하기 전에 맹물로 씨앗을 고르기만 해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고추 씨앗마다 눈으로는 잘 구분이 안 가지만 물에 담가보면 부실한 것들은 물 위로 뜬다. 좀더 충실하고자 한다면 소금물 농도를 조금씩 높여가면서 하면 더 좋다.
근데 맹물에서도 대부분의 씨앗이 뜬다면 어찌 할 것인가? 검은깨가 그렇다. 흰 참깨는 맹물에서 잘 가라앉기에 소금물로 비중을 높여가면서 고르면 되지만 검은깨는 맹물조차 어렵다는 말씀. 이럴 때 쓰는 방법이 바람이다. 씨앗 자체가 가벼우니 바람 수선, 바람 고르기가 제격이다. 요령은 바람이 불 때, 바가지에 담은 씨앗을 들고 아래 큰 통에다가 서서히 깨씨를 내리는 거다. 그럼, 무거운 순서로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다. 많이 가벼운 것들은 바람 방향으로 비스듬히 멀리 날아가고, 튼실한 것들은 수직에 가깝게 살짝만 날아간다.
우리네 삶을 돌아본다. 튼실하고 충실한 삶, 그 끝은 어디일까? 가만 보면 곳곳이 비어있고, 어설프니 말이다.
'자급자족 > 자급자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 만에 수도 공사 (0) | 2014.09.22 |
---|---|
[9기 보급원] 2013년 제9기 텃밭보급원 과정 개강 안내 (7월8일 개강)| (0) | 2013.07.02 |
똥으로 명상하는 법 (0) | 2013.04.15 |
달력, 나도 한번 해봐? (0) | 2013.04.15 |
내 시에 고승하 선생님이 곡을 붙이다니! (0) | 2013.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