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자급자족

내 시에 고승하 선생님이 곡을 붙이다니!

빛숨 2013. 4. 15. 04:57

이번에 나온 <동시마중> 7호를 받았다. 무슨 이야기가 실렸나? 이리저리 뜯어보며 읽어가는 데 ‘아니, 이게 뭐냐?’

내가 쓴 시에 고승하 선생님이 곡을 붙여준 거다. 아, 어찌 이런 일이! 선생님은 ‘아름나라 어린이예술단’을 이끌며 노래를 만들어온 지 40년이 넘으신 분이다. 지난해부터 동시를 쓰기 시작한 나로서는 틈틈이 나 나름대로 노래를 하나 둘 만들어가는 참이었으니 느낌이 더 새롭다.

내가 최근에 완성한 세 번째 노래가 <애호박 늙은호박>이었다. 그 다음 노래로 뭘 지을까를 생각하다가 손에 잡은 시가 바로 이거였다. 나 나름 기본 멜로디를 잡았고, 이리저리 흥얼거리며 얼개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근데 떡 하니 곡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눈으로 대충 악보를 따라 가보니 앞 두 마디는 내가 잡은 멜로디랑 거의 비슷했다. 뒤에 두 마디는 내가 흥얼거리던 리듬보다 한결 밝고 변화가 많은 거 같다.

궁금함에 얼른 그림쟁이를 불렀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5학년쯤엔가 일찍이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 그리고,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고, 부모가 하는 일 도우면서 홈스쿨러로 성장한 친구다. 우리 집에서 지내면서 내가 얼렁뚱땅 노래를 지으면 곧잘 피아노를 쳐주고 작곡에 대한 도움말도 주곤 했다.

나는 살짝 흥분이 되어 얼른 곡을 보여주었다.
“오, 아저씨 축하해요.”

저도 기쁜지, 피아노 앞에 앉아 한달음에 연주를 해준다. 곡에서 아이다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정말 꿈같다.

“자. 이제 녹음할 테니 노래도 부르면서 연주를 해 주면 좋겠다.”
“카페에 올리게요?”
“응.”

얼른 작은 녹음기를 꺼내 녹음을 했다. 녹음된 노래를 컴퓨터에 저장해서 또 다시 들어본다. 조금 빠른 두 박자 리듬으로도 한번더 녹음을 부탁했다.

그러자 우리 집 아이들도 내 옆에 몰려들어 같이 들어본다.
“오, 좋은 데요.”
“축하하는 기념으로 제가 새알심과 땅콩이 들어간 팥죽을 해 드릴까요?”

이런 분위기가 전달되었는지 아내도 어디선가 일하다가 나타나 같이 들어본다.

원래 <동시마중> 6호에 발표한 시 제목은 <자꾸>였다.

<자꾸>

내가 만든 반찬에
자꾸 눈이 가.

내 손으로 했다고
자꾸 손이 가.

식구들도 잘 먹나
자꾸 눈이 가.

식구들도 잘 먹게
자꾸 손이 가.

사실 이 시를 발표하면서 제목 정하기가 좀 어려웠다. 처음에는 <눈이 가, 손이 가> 했다가 또 <내가 만든 반찬>으로도 했다가, 맨 마지막에 <자꾸>로 바꾸게 되었다. 본문에 ‘반찬’도 그냥 달걀찜으로 할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이 시를 쓰면서 바로 노래를 떠올렸기에 더 그랬다.

자신이 손수 만든 거라면 뭐든지 그렇지 않을까. 반찬도 그렇지만 글 한 편도 그러할 것이요, 그림 한 장도 그러할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만들고 또 지어낸 것들에 대해서는 애정이 클 수밖에 없으리라.

이 모든 것의 기본은 역시나 먹는 것일 테다. 주부 한 사람이 식구들 먹을거리를 날마다 다양하게 마련한다는 건 참 고단한 일상이 된다. 그러나 식구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음식을 하루에 한 가지씩만 한다면 삶의 질은 완전히 달라지리라.

우리 탱이가 중학교를 한 달 정도만 다니다 그만 두고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일이 음식 만들기였다. 아이들에게 먹는 일만큼 소중한 게 있을까. 아이들은 부모보다 먼저 배가 고프다. 밭에서 일하는 부모를 기다리느니 먼저 밥상을 차리게 된다.

이렇게 시작하다보니 실력이 부쩍 늘게 되었다. 작은 아이마저 초등학교를 몇 달 다니다 그만두니 남매는 음식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점점 많이 해보게 되었다. 큰 아이는 실력이 부쩍 쌓이자, <개똥이네 놀이터>에 어린이 요리 이야기를 연재하게 되고, 나중에는 이를 묶어  책까지 내게 되었다.

나는 이런 우리 아이들한테 자극을 받아 뒤늦게 요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나로서는 아내처럼 식구들 밥상을 다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 형편껏 한다. 내가 만든 반찬이라 솜씨가 좀 부족해도 나는 잘 먹게 된다. 눈도 자주 가고. 손도 자주 간다. 가만 보니 이렇게 하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이들도 다 그렇다. 누구나 손수한 것들에 대해서는 애정이 많게 마련.

이제 우리 식구는 네 사람 다 음식을 차린다. 그리고는 밥상에 둘러앉으면 아주 특별한 반찬이 아닌 한, 자신이 만든 반찬에 손이 먼저 간다. 이는 거의 무의식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나는 꿈꾼다. 이오덕이 지은 <일하는 아이들>이 지난 60년 대 아이들의 삶이였다면 그 감동을 오늘날에도 온전히 이어가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일은 삶의 뿌리이자, 줄기요, 열매라고 해도 좋지 않는가. 먹고 살기 위해서도 일이 필요하지만 자아를 실현하는 데도 일은 무척 소중하다.

다만 어른이 하는 일과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조금 달라야한다고 본다. 어른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일은 권리이자 배움이라는 뜻에서 그렇다. <일하는 아이들>에 나오는 아이들 일은 대부분 부모 일을 돕는 게 많았고, 그 배경은 절대 가난이었다.

오늘날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상대적 빈곤은 더 심해졌지만 절대 가난은 거의 벗어났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마저 공부가 앗아갔다. 학교와 학원에서 경쟁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일은 귀찮고 짜증나는 그 무엇으로 팽개쳐지기 일쑤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도 자연스런 성장을 방해하는 거지만 자라면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못하게 막는 것도 성장을 억압한다고 나는 믿는다. 자라면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 자라야한다.

만족과 기쁨은 다른 거 같다. 돈을 쓰는 순간은 만족스러울 수 있다. 허나 그 기간은 짧다. 또한 같은 만족을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 근데 기쁨은 뭔가를 손수 만들 때 일어난다. 이건 창조다. 그 느낌은 만족보다 길다. 그리고 똑같은 일이란 세상에 없다. 자연에 깃들여 사는, 창조적인 삶이 그렇듯이 날마다 새롭다. 때문에 일을 통해 느끼는 기쁨은 일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이다.  

나는 <일하는 아이들>의 그 소중한 정신을 근본에서 다시 이어가고 싶다. 이와 관련하여 일을 놀이로, 일을 배움으로, 일을 성장으로 여기는 아이들과 두루 만나고자 한다. 학교를 벗어나 자유롭게 성장하는 홈스쿨러들과 만남도 그렇고, 이 아이들과 글쓰기 소모임을 작게나마 시작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함께 일도 하고, 글도 쓰고, 노래도 만들어 부르며, 춤까지 곁들인 새로운 문화,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가고 싶다. 언젠가 그런 무대를 아이들과 올리는 날이 온다면 고승하 선생님도 초대하고, 내게 시를 쓰게 해준 <동시마중> 여러분들도 모시고 싶다. 무한경쟁으로 잃어버린 주인 자리를 다시 되찾고자 하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도 두루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림쟁이 연주와 노래를 듣고 싶으면 첨부 화일 가운데 mp3화일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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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오 우와...김광화선생님 축하드려요~~~명지양이 부른 노래도 잘 들었고요. 자꾸 손이가아아~~ㅎㅎ
저는 악보는 볼줄 몰라서 처음 악보랑 가사만 보고 이거 어떻게 부른걸까 궁금했는데 마침 노래까지 듣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만든 음식을 잘 먹어주는 식구들을 바라보는 기분이 어떤줄 알기에 더더욱 가슴에 와 닿는걸요? ㅎㅎ
2011/05/19 x
  김미영 와우~~ 정말 goooooooood!! 입니다~~*^^V
가사가 친근하고 정감있어서 그런지 멜로디도 낯설지않고 너무 좋은데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
2011/05/19 x
  김광화 고맙습니다.
식구마다 한 가지 음식을 차려
음식 만들기가 노래요
밥상이 잔치가 되는
그런 문화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2011/05/19 x
  정윤례 예 축하드립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보니
좋은 일이 생깁니다. 김광화님댁처럼 우리가족도
각자 반찬 한가지씩해서 밥먹는 행복한 꿈을 꾸어
봅니다. 사무실 제컴에 스피커거 안달려서 못들어
보내요. 집에 가서 서영이랑 들어 봐야겠어요.
*^^*
2011/05/19 x
  문영규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가 정말 와닿는데요? 2011/05/19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