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눈이 휩쓸고 지나갔다.
태풍을 자주 겪지만 겪을 때마다 가슴 졸이게 된다. 이번에는 주로 밤에 겪었다. 어제 초저녁부터 오늘 오전까지. 특히나 새벽에 심했다.
“덜거덕 덜거덕 탁 탁 탁”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잠이 깼다. 마당과 창고 불을 켜고 한바퀴 돌았다. 마당에는 고양이 밥그릇이 뒹굴다 한곳에 처박혀 있다. 창고에 가니 이건 완전 난장판이다. 바람이 집 앞쪽에서가 아니라 뒤쪽에서 불어, 더 그런 거 같다. 효소 담을 페트병 한 상자가 통째로 날아가 페트병들이 여기저기 널브려져 있다.
그리고 덜거덕거리던 소리 주인공도 찾았다. 지난번에 공사하고 남은 합판 한 장을 창고 벽에 세워 두었는데 이게 바람 따라 계속 벽면을 때리는 거다. 합판을 가로로 하여 목재 사이에 끼워두었다.
그리고는 우선 집 가까운 곡식들에게 큰 피해는 없는 듯하다. 고추 토마토 가지 다 멀쩡한데 해바라기만 조금 기울었다. 이만하기 다행이다 하고 다시 잤다.
아침에 다시 눈 떠, 논밭을 둘러본다. 멀리 옥수수가 조금 누운 것이 보인다. 참깨 역시 걱정 된다. 밭가는 길에 전선줄이 내려앉아, 길을 가린다. 막상 밭에 가보니 참깨는 꿋꿋하고 늦옥수수가 많이 쓰러졌다. 복숭아를 비롯하여 과일나무도 대부분 멀쩡하다.
많은 비에 논둑이 터지지는 않았을까. 둘러보니 다행이다. 거센 바람이 팔뚝만큼 자란 벼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때마다 벼는 바람을 받아준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선다. 촤르르륵 넘어갔다가 스스륵 일어선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그 덕에 우리가 밥 먹고 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태풍 치고 이만 하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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