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강좌를 다녀왔다. 내게 주어진 주제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교육>. 한 시간 반 정도 기본 강의를 끝내고 질문 시간.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만 한다면 인내력을 키우기가 어렵지 않나요? 세상을 살다보면 참고 견뎌야할 때가 많은 데.”
질문을 받고는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 자신부터가 요즘은 인내에 대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니 내 고등학교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자라던 고등학교 시절, 유행하던 말이 있었다.
“네 시간 자면 합격,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
그러니 집에서는 물론이요 학교에서조차 존다는 건 큰 억압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나 점심 시간 뒤 5교시에 쏟아지는 졸음과 싸움은 힘이 들었다. 졸아서는 안 된다는 인내력과 쏟아지는 생리적인 욕구와의 싸움. 수시로 머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거나 허벅지를 꼬집거나 심지어 스스로 자기 뺨을 살짝 때리기까지 하며 졸음과 싸웠다. 수업 내용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잠과 싸움만 하다가 비몽사몽 시간이 흘렀다. 특히나 재미없는 수업일수록 거의 본능적으로 잠이 쏟아지곤 했다. 5교시에 체육이라도 들었다면 그 많은 학생 누구도 졸지 않았으니까.
자, 이쯤에서 인내를 다시 생각해보자. 인내란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거다. 살다보면 누구나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겪게 마련. 그렇다고 인내력을 미리 키울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어려움에 부딪칠지도 모르는데 그 모든 어려움을 다 경험해볼 수도 없지 않는가. 또한 어려움이 닥치면 대부분 그 순간에 자기 나름대로 인내나 그 어떤 지혜가 나와서 이를 견디거나 지혜롭게 해결해간다. 때로는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하고. 그러니 일부러 어려움을 만들어서 겪을 필요는 없으리라.
여기서 인내를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스스로가 만든 상황이 아닌 주어진 상황이다. 아이들을 보기로 들어보자. 가기 싫은 학교지만 억지로 가야하고, 일어나기 싫지만 억지로 일어나야 하고, 하기 싫은 공부지만 억지로 해야 한다.
근데 이 세 가지는 그 뿌리가 하나다. 하기 싫은 공부니까 잘 일어나지 않게 되고, 수업 시간도 싫게 된다. 근데 여기서 더 깊어 들어가 보자. 도대체 하기 싫은 공부라는 게 자라는 아이들한테 말이나 되는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란다면 어떤 학문이 하기 싫다기보다 관심이 없을 수는 있다. 세상 모든 지식이나 일에 대하여 다 관심을 가질 수는 없지 않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출발하여 점차 그 관심분야가 넓어가고 또 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학문은 깊이 들어갈수록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각 학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적 탐구와 깨달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문의 출발은 교과나 나이에 따른 학년의 차이를 두는 것은 그리 좋은 방식은 아니다. 아이 자신의 호기심과 관심분야에서 시작해야한다.
둘째는 아이 스스로가 만든 어려운 상황에 따른 인내다. 여행을 보기로 들어보자. 여행을 아이가 원해서 한다면 여행을 준비하고 떠나고 잠자고 먹고 하는 일들에서 여러 가지 불편하고 어려운 일에 부딪힌다. 근데 아이가 선택했기에 그런 어려움은 도전이나 자극이 된다. 보통 때는 늦잠을 자던 아이도 여행가는 날은 알람시계 도움 없이도 새벽같이 일어난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건 ‘선택이 가능하다면’ 인내보다 몰입이다. 인내는 대상과 밀고 당기는 다툼이라면 몰입은 대상과 하나 됨이다. 그냥 하나 되는 게 아니라 주인으로서 하나 됨이다. 몰입이 인내보다는 한결 더 성장을 돕고 행복을 가져다준다. 인내는 게으름이란 유혹을 늘 받는다.
몰입은 자신이 원하는 걸 배우고 원하는 일을 할 때 가능하다. 억지로 하게 하는 건 몰입을 방해하는 첫걸음이다. 호기심과 탐구심 그리고 자신 안에 우러나는 열정이 몰입을 가져온다. 부모가 기타를 치라고 사줄 때는 치는 둥 마는 둥하다가 기타 줄이 녹이 슬고 소리통에는 거미가 살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제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니 다른 사람 기타를 빌려서라도 열심히 친다. 기타를 처음 익힐 때 손가락이 겪는 아픔 정도는 성취동기로 인해 참을 만 하게 된다. 또 점점 깊이 들어가면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벽을 넘고자 도움말을 줄 사람도 만나고, 전문 서적도 구해서 읽는다. 또 다른 보기를 든다면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싫어하던 아이가 한 이년 쯤 손을 놓고 있다가 어느 순간 다른 학문과의 접점에서 수학을 다시 발견하고 꾸준히 수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한 가지만 한다는 건 아니다. 역시나 그 기준은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열정과 성취동기다.
몰입을 하자면 동기부여 못지않게 시간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놓는 건 몰입을 흩트려놓는다. 학문이나 일에 따라 때로는 5분 몰입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두어 시간씩 푹 빠질 수도 있는 게 몰입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점점 더 몰입하는 쪽인지 아니면 산만하거나 인내하는 방향인지.
끙끙대며 학문을 익힌 사람은 이 다음에 끙끙대며 일할 확률이 높다. 반면에 몰입해서 기쁘게 배우고 익힌다면 역시나 기쁘게 몰입하면서 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에 부딪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를 이겨내면서 계속 나갈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몰입할 수 있는 걸 선택할 지를 결정하는 것 역시 그때그때 본인 몫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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