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여기 있었구나.
미처 몰랐어.
예전부터 이 자리에 늘 있었던 너를 이제서야 보게 돼.
하루에도 수차례 들락거리는 길목에 항상 있었던 너를 이제서야 보다니
이제서야 너를 본 나도 이상하고 이제서야 눈에 띄는 너도 놀랍다.
어쩌면 계속 너를 못 보았을 수도 있었겠다.
아무 목적 없이 그냥 무심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라면,
네가 그 순간 강렬한 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우리가 눈을 딱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미안하구나.
내가 하루에도 수차례 네 앞을 지나칠 때마다 어쩌면 너는 나를 수없이 불렀을지도 모르는데
그 소리를 못 들었구나.
아니다. 그렇지가 않구나.
이런 마음도 내 위주의 마음이구나.
너는 그저 네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을 터인데.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말이지.
그저 이제서야 문득 너를 본 것일 뿐.
그러니 미안해 할 이유조차 없구나.
넌 늘 있던 그 자리에서 나라는 존재에 아무런 신경조차 쓰지 않겠지만
난 말이지, 이제라도 너를 보니 좋다.
네 붉은 빛이, 네 짙은 초록이, 네 단단한 줄기가 그 자리에 항상 있다는 그 사실을 알아버린 순간
넌 이미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니까.
매일 지나칠 때마다 너에게 눈길을 보낼 것이고 너의 작은 변화에도 난 설레일 수 있을 테니까.
너와 난 이제 관계를 맺은거야.
그런데 말이지,
문득, 정말이지 문득....
너를 미처 보지 못하다가 알아본 그 순간에 말이지
내 안에, 내가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 안에, 그리고 그 사람들과 나 사이에
거기에 있는 네가 보이더구나. 늘 있었지만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너 말이야.
거기엔 네가 있을거라 생각치 않았는데.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너무나 자신있던 관계 속에도 네가 숨어있더구나.
그 강렬한 빛으로 말이야. 그렇게 강렬한 빛을 몰라보았다니...
참 이상도 하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던 너를 처음 발견했을 땐 설레이더니
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이나 나에게서 네 모습을 발견하니 겁이 나더라.
내가 나에 대해서, 다른 이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 자신이 없어졌다고나 할까.
두렵다. 안다고 하기가 조심스럽고 내 믿음이 불안하다.
내 안에 있는 너를 꺼내 보인다면 기왕이면 설레임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너를 꺼내보이고 싶다.
또한 사람들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너를 발견한다면
마찬가지로 너로인해 내 믿음이 불안해하지 않고 설레임과 감동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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