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어둑어둑 저녁 무렵. 포도가 얼마나 익었나 싶어 포도나무를 보러갔다. 우리 집 포도나무는 기껏 두 그루다. 그래서인지 아내와 나는 포도나무에 손이 안 간다. 그나마 아이들이 포도 봉지를 씌웠기에 올해는 수 십 송이 맛을 볼 수 있다.
봉지를 살그머니 뜯으니 익었다. 검은 빛에 가까운 하얀 분가루가 예쁘다. 이 가루가 보이면 잘 익은 거다. 자연산 포도주는 이 가루가 효모가 되니, 주정을 넣지 않아도 술이 된다. 우리 포도의 색깔은 처음에는 풀빛이 나다가 점차 검붉어지며 다 익으면 남색에 가깝다.
그런데 포도 빛깔을 말로 설명하자니 참 어렵다. 그게 어디 포도뿐이랴. 자연의 빛깔은 사람의 언어로 온전히 나타내기가 어렵다. 사진을 찍었다.
LCD창으로 다시 보니 파랑 빛이 강하다. 눈으로 보는 그 빛이 아니다. 해가 지고난 뒤라 더 그런 거 같다.
플래시를 사용하니 조금 비슷하기는 하다.
하지만 너무 인공의 빛이라 실물답지가 않다.
몇 송이 따다가 집안에서 형광등 불빛 아래 찰깍! 역시 번들거린다.
사진 실력이 부족한 점도 있지만 자연의 빛깔을 온전히 담는 거는 어렵다.
사진은 햇살이 오를 때 또는 해질 무렵이 좋다기에 다음날 아침 햇살 오를 때 찍었다.
눈으로 보는 거에 조금 가깝다.
포도 빛깔에 대해 말로 한다면 어떤 말이 적절할까. 식구들에게 물었다.
아내는
“남색이 강하지 않아요?”
탱이는
“보랏빛이 섞여있지요”
상상이는
“검은 색이지요. 붉은 빛을 머금은 검은 빛”
이렇게 식구마다 포도를 느끼는 빛깔이 다르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걸까. 우리 언어가 불완전하다는 게 첫째일 테다. 자연에 있는 무수한 빛깔을 몇 가지 언어로 밖에 분류할 수밖에 없는 한계. 무한을 유한으로 재단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둘째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사람마다 어떤 빛깔을 얼마나 더 많이 받아들이는가 하는 마음. 같은 포도를 보고 식구마다 다르게 느끼는 그 마음이 궁금하다.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아직 나는 사진이 서툴다. 사진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포도 빛깔을 내 마음에 다시 담는다.
'들나물산나물 쑥 취 냉이 > 내 사랑 DSL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을 좋아하는 잠자리 (0) | 2007.09.28 |
---|---|
어미 (0) | 2007.09.15 |
승용차 위에 고양이 포즈 (0) | 2007.09.07 |
누워자는(?) 구름 (0) | 2007.08.22 |
사랑을 하려면?(오이 호박 덩굴손) (0) | 2007.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