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스크랩] 자식한테 밀려나는 기분

모두 빛 2012. 1. 16. 09:17

(큰 글씨 <좋은생각> 원고입니다.)


내가 꼬마였을 때, 우리 아버지는 가끔 심심풀이 바둑을 두셨다. 나는 어깨너머로 구경하다가 아버지한테 바둑을 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이기게 되었다. 그 뒤부터 아버지는 나하고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으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 당시 아버지 마음이 어땠는지를.

 

나는 나이 오십 중반으로 드는 지난해, 기타를 처음 잡았다. 손가락도 아프고, 어렵게 익힌 코드도 곧잘 잘 까먹지만 농사 틈틈이 기타를 배우는 맛이 좋았다.

 

근데 조금 지나자 열여덟 살 아들 녀석도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 나는 잘 되었다고 좋아하며 아들과 함께 기타를 쳤다. 집안 분위기가 한결 활기차다.

 

근데 달이 가면서 나와 아들 사이 점점 실력 차이가 크게 나는 게 아닌가. 나는 지난 일년 동안 칠 수 있는 곡이 기껏 서너 곡. 그나마 연습을 반복해야만 가능하지 일이 바쁘다고 한동안 손을 놓으면 말짱 헛일이 되곤 한다. 근데 아들 녀석은 완전 신이 나서 두들긴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두드릴 정도로. 나는 몇 가지 코드에 맞춰 겨우 반주를 한다면 아들은 핑거스타일이라는 연주를 한다. 기타 한 대로 멜로디와 리듬, 박자를 모두 표현한다. 

 

처음에는 아들이 이렇게 발전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했다. 하지만 갈수록 나는 점점 주눅이 든다. 나도 모르게 기타를 잡는 시간이 줄어든다. 그래도 어쩌다 시간이 나고 또 감정이 살아날 때 기타를 잡아볼까 한다. 그 ‘어쩌다’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막상 아들이 치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러면 기타를 넘겨달라는 소리가 차마 안 나온다. 아들이 열심히 치니 이제는 우리 딸도 기타를 즐긴다. 이래저래 나는 기타를 잡을 기회조차 점점 줄어든다. 생각하다 못해 내가 식구들에게 제안을 했다.

 

“이 참에 식구들마다 돈을 조금씩 내어 기타를 하나 더 사는 게 어때? 지금보다 더 좋은 걸로.”

다른 사람은 다 찬성인데 아들만은 반대다.

“더 좋은 기타가 생기면요, 이 기타는 찬밥이 돼요.”

 

듣고 보니 그럴 거 같다. 한 집안에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있으니 내가 찬밥이 되듯이. 이래저래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난다. 좀더 잘 해드리고 좀더 따뜻하게 이야기를 나눌 걸. 아들이 치는 기타 소리가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바둑판에 돌 놓던 소리를 자꾸 깨운다.

출처 : 홈스쿨링 가정연대
글쓴이 : 아이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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