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4월이다. 3월말과 4월 초에 조금 바쁜 일이 있다 보니 달력 그리는 게 늦었다. 이틀이나 지난 달력이다.
사실 이 달 달력 구상은 지난달 3월 초에 일찍이 나왔다. 그건 바로 짝을 찾는 새 울음소리였다. 그렇다. 짝 울음소리! 해마다 봄이 되면 많은 새들이 짝을 찾아 소리를 낸다. 어떤 새는 맑게, 어떤 새는 우렁차게, 어떤 새는 달콤하게, 어떤 새는 화려하게...
그 어떤 새의 울음소리든 듣는 이에게는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을 느끼게 한다. 사람 마음도 흔드는 소리인데 새 자신들의 짝들에게는 과연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까.
봄에 일어나 밭에서 일하다보면 새들 울음소리가 장관을 이룬다. 집둘레 참새는 삐작삐작. 참나무 둥지에 까치는 까악깍, 이 산 저 산에 꿩은 꿩꿩. 먼 산 비둘기는 구구우 구우...이런 새들 울음소리에 휩싸이다 보니 나는 내 짝을 부르고 싶다. 처음에는 속으로 가만히 불러보고 나중에는 소리쳐도 불러본다. 여어보오! 이게 이 달 달력의 컨셉이자, 나 스스로 무척 만족하는 시다.
<짝을 찾는 울음소리>
까치는 까악깍
참새는 삐작삐작
비둘기는 구구우 구우
꿩은 꿩꿩
나는 여어보오!
자, 이제 그림이다. 그림이 어렵기는 하지만 크게 부담은 안 갖기로 했다. 되는 만큼 하자. 처음에는 새소리를 그림으로 그리고자 했다. 만다라처럼. 근데 소리를 그림으로 스케치를 해보니 느낌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던 규현이가 새를 넣어주는 게 좋다고 조언을 한다.
그럼, 어디 한번 새를 그려봐. 새 도감과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스케치 한다. 기본 그림 실력이 안 되니 여전히 그림은 어렵다. 그래도 자꾸 해본다. 참새는 조금 비슷하게 나온다. 그 맛에 그린다. 역시 그림이 막힐 때면 탱이에게 조언을 듣는다. 한 획 한 획...
차츰 새들 모습이 나타나자, 새들 울음소리가 던져주는 이미지도 좀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되도록 밝은 이미지를 살리되 새 모습과 조금은 닮은 색깔을 선택하게 된다. 근데 새 하나하나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새들끼리 조화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참새가 작고 꿩이 커야하는데 뒤바뀌었다. 꿩은 멀리 있는 모습이고 참새는 가까이 있는 우리네 삶과 닮기는 했지만 그림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살려낼 실력이 안 된다.
그림을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고 이제 달력에 숫자를 그려 넣는 일. 이 달력을 척 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날자가 19일 20일 21일이다. 이게 무슨 명절인가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을 테다. 그렇다. 적어도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명절이다.
그 앞뒤 이야기는 이렇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슴 설레는 날들 가운데 세 가지만 꼽으라면? 첫째가 아내와 결혼이다. 둘째는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이다. 자, 그럼 세 번째는?
거창하게도 ‘사회적 부모로 거듭나기’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나 자유롭게 성장한 지 어느 새 10년이 넘어간다. 아이들이 커가는 걸 가까이서 지켜보니 부모가 키우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우리 둘레 많은 이웃들이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힘이 되어준다는 걸 알았다. 탱이 그림 실력만 해도 그렇다. 나야 그림에 젬병지만 내 둘레 많은 인연들이 이리저리 도움말을 주고 또 탱이 그림을 봐주며 격려해준 덕분에 지금과 같은 사회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이런 일이 어디 그림뿐이랴. 태극권도 가르쳐 주고 탁구도 가르쳐주며 맛난 것들도 기꺼이 먹여주고... 말로 하자면 끝이 없겠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개념을 얻는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을 다른 부모가 대신 해줄 때는 나는 이들을 사회적 부모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사회적 부모 노릇을 하는가.
올 초부터 학교를 벗어나,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들 가운데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한다. 가까운 지역 가정들과는 지역에서 자주 보고, 전국에 걸쳐 흩어져 있는 전체 가정들이 다 모이는 건 일년에 한두 번이다. 4월 19, 20, 21일이 바로 전체가 모이는 그날이다. 사회적 부모와 사회적 형제들이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여 ‘성장잔치 한마당’을 연다. 그러니 그 어떤 명절과 견줄 수 없는 잔치라 하겠다.
그리고 25일은 뭔가? 이 날은 우리 이웃 아이인 초희 생일이다. 열 여섯 살 홈스쿨러인 초희는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 한 곡 부르는 건 책 한 권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단다. 틈틈이 작곡도 하고, 말없이 많은 걸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청소년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서 더 많은 세계가 있다는 걸 일찍이 깨달은 속 깊은 아이다. 나는 초희 앞모습을 그릴 실력도 안 되지만 이 아이 생각을 존중한다면 뒷모습이 제격일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니 새들 노래소리와 노래를 좋아하는 초희 생일과 묘하게 어울린다. 나로서는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찌 그리다 보니 그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다. 이래저래 이 달력에 나는 무척 애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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