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몸 공부, 마음 이야기

몸살, 그 시작과 끝

모두 빛 2011. 2. 13. 04:46

요 며칠 동안, 비실비실 골골골. 몸살감기였다. 시골 내려와 살면서 처음으로 겪는 감기였다.

그 앞뒤를 밝히자면 좀 창피하다. 그래도 기록해두는 게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지 싶다.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자기 다짐이라고 해야겠다.

 

몸살이 난 발단은 일도 아닌 놀이였다. 올 이월 들어, 우리 식구들은 탱이를 빼고는 다 탁구를 배우려 다닌다. 이웃 동향면으로. 국가 대표급을 코치할 만큼 뛰어난 탁구 선생이 있는데다가 면사무소 이층 주민 공간이 탁구 연습장이라 여러모로 좋다. 

 

연습 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 저녁에 두 시간씩. 그 시간 대부분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탁구를 치며 보낸다. 개인지도는 그 사이 사이 한 사람씩 10분에서 20분 단위로 잠간씩 받는다. 내 탁구 실력은 어릴 때 평상을 탁구대 삼고, 작은 나무 판대기를 탁구 라켓으로 삼아 익힌 솜씨라 기본기마저 아주 엉망인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 교습을 받다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공 따라 쳐야지, 자세 바로 잡아야지...게다가 간단한 훈련을 넘어 탁구대를 좌우로 옮겨가면서 한번은 스매싱, 또 한번은 바로 옆으로 빠지면서 짧게 넘기는 쇼트, 다시 오른쪽으로 옮겨 스매싱...이걸 반복하는 데 점차 숨이 차오르고, 땀이 나고,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싱싱한 청춘이 아니라 나이가 있는 몸이 아닌가. 이렇게 몸이 무리한다 싶었는데도 참고 계속 했다. ‘곧 내 차례가 끝나겠지. 놀이 삼아하는데 이 정도야 뭐 대수일까.’ 하면서...

 

시간으로 치면 20분도 채 안 된다. 그런데 평소 격렬하게 움직이지 않던 몸이라 무리를 했나 보다. 탁구가 끝나고 찬 밤공기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니 몸이 무겁다. 자고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몸이 더 가라앉는 거다. 드디어 몸이 탈이 났구나. 이게 바로 몸살이다.

 

아무런 의욕이 없다. 마냥 드러눕고만 싶다. 그렇다고 계속 드러누워만 있기도 어렵다. 어지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일을 해야 시간이 잘 가는 데 일할 몸은 전혀 아니다. 아침 밥하는 거조차 아들한테 맞기고 이리저리 뒹군다. 책이라도 보면 그나마 한두 시간을 죽일 수 있는데 책마저 머리가 받아들이질 않는다.

 

인터넷은 그나마 조금 도움이 된다. 이러 저리 서핑을 해보지만 딱히 나를 사로잡을 만한 꺼리들은 없다. 몸 상태가 안 좋으니 인터넷 집중도도 떨어지나 보다. 이리저리 빈둥거리다가 다시 드러누워 잠을 청한다. 얼핏 잠들고 깨면 기껏 한 시간쯤 잔 거 같다.

 

몸은 여전히 무겁다. 누런 콧물이 나온다. 가끔 기침도 나오고, 머리에는 살짝 열도 있다. 도대체 몸을 어디에 두어야할 지를 모르겠다. 점심을 굶으면 좋겠다 싶은데 막상 밥상을 앞에서 보니 굶게 되질 않는다. 반 그릇 정도 비우고 다시 어슬렁어슬렁. 기타를 잡아보지만 고통스런 감정이 바로 노래가 되어 나오지는 않는다. 목도 잠겨있다. 몸 전체가 가라앉는 느낌. 음식보다는 물이 많이 당긴다. 아내가 몸살에 좋다고 생강 대파 무 대추들을 같이 넣고 약물을 다려준 게 있어 수시로 마시곤 했다. 안방 군불 지피는 일마저 아내가 대신했다.

 

저녁에는 아내한테 채근을 해서 드라마를 보자 했다. 아플 때 드라마는 내게 보약 같은 존재다. 그리 심각하지 않는 <연애시대>라는 드라마. 이혼한 부부가 헤어진 뒤 일상에서 자주 만나며 서로를 그리워하는 그런 내용이다. 그냥 멍하니 시간 때우기 좋다. 그래 봤자 한 시간 남짓이지만.

 

밤에도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새벽녘이 되니 몸이 조금 달라진다. 몸살이 바닥을 쳤구나 싶은 느낌. 온몸이 무너져 내리다가 바닥에 닿은 느낌. 이제 서서히 회복되어 올라갈 거 같다. 아침에 밥을 하고 시래기 국을 끓였다. 식욕은 그다지 없지만 습관이란 무서운 것인지 반 그릇 먹었다.

 

그렇다고 낮 동안 일을 할 수 있는 몸은 아직 아니다. 밖에 바람은 여전히 겨울바람이다. 안방을 치우는 일은 가능했다. 그리고는 뒹굴 거리다 다시 자고 낮더니 몸이 40%쯤 회복된 느낌이다. 이제 기타 정도는 칠 수 있는 몸이 된 거 같다. 목이 잠겨 노래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이 날 저녁도 내 몸은 으슬으슬하여 군불 역시 아내가 지폈다. 틈나는 대로 나는 물을 계속 마셨다. 몸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절로 든다. 여기다가 점저에는 아내가 내 몸이 빨리 나으라고 제철 나물 반찬을 해주었다. 지금 밭에서 겨울을 나는 광대나물, 개망초, 냉이들을 칼로 뜯고 다듬고 무쳐낸 ‘약 반찬’이다.

 

그 덕인지, 저녁에는 간신히 글은 쓸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마감이 코앞에 닥친 밥상 원고 하나를 마무리했다. 닥치면 다 되나 보다. <연애시대> 드라마를 이어서 보고, 이젠 책도 조금 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 다음날, 자고 일어난 삼 일째. 한 70% 회복된 느낌이다. 일에 대한 의욕이 조금씩 살아난다. 먼저 아내가 먹고 싶어 하던 순두부를 콩을 갈아서 하여 아침을 차려먹고, 아들이 해둔 장작을 도끼질로 갈랐다. 일을 한다는 건 정말 좋은 거 같다. 성취감도 좋지만 시간을 잊게 해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저녁이 되니 한결 몸이 더 나아진 느낌. 한 90%쯤 회복된 거 같다. 이 날은 군불도 지피고 싶다. 날마다 지피는 군불이라 보통 때는 좀 지겹다는 느낌인데 이 날만은 하고 싶은 일이었다. 이젠 하루 더 자고 나면 몸이 다 나을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다음날 아침, 몸살이 난 지 4일째가 되니 몸이 다 나았다. 처음에는 한 일주일쯤 고생하리라 예상했다. 근데 생각보다 빨랐다. 몸살이란 응축된, 또는 억압되었던 몸을 자연 그대로 풀어주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자기 몸은 오래 강하게 억압할수록 몸살을 크게 앓을 것이요, 가볍게 억압했을 때는 가볍게 몸살을 하고 넘어갈 듯하다.

 

십여 년 만에 앓아본 몸살. 최소한 앞으로 10년 동안은 몸살을 하지 않을 몸과 마음으로 거듭나면 좋겠다. 아니, 몸을 존중하여 더 이상 몸살을 하지 않는 몸이어야겠다. 이 글을 쓰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으니까.

 

몸을 있는 몸 그대로 존중하자면 마음도 더 솔직해야할 듯하다. 남 눈치 보지 말고, 내 욕망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