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집 거실 달력을 아내가 그렸다. 처음 한다고 했을 때는 설마 했다. 곁에서 조심스레 지켜보는 데 계속 해 가니 참 신기했다. 그림을 잘 그려야 맛이 아닐 것이다. 삶 속에서 즐기면 되는 것 아니겠나.
아내가 이렇게 용기를 내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탱이다. 그러니까 지지난해 달력을 탱이가 처음으로 그렸던 것이다. 그림에 재주가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자신이 갖고 있는 작은 재주를 삶 속에 풀어내는 모습 자체가 참 좋아보였다. 그렇게 일년 그려낸 달력을 보면서 아내는 감탄도 하고 부러워도 하다가 지난해 손수 그려냈던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은 마찬가지 마음이다.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용기를 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산에서 땔감을 하다가 본 나이테. 문득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는 거다. 그 모양새가 해마다 달랐고, 차곡차곡 쌓인 모습이 아름다웠다. 앞날을 특별하게 계획하지 않고도 그렇게 자랄 수 있고, 그 모양 그대로가 자연스러웠다.
나는 어떤가. 올해 꾸는 꿈이 많다. 음식도 잘 하고 싶고, 기타도 좀더 잘 치고 싶고, 시집도 한 권 내 보고 싶고. 사람 관계도 더 돈독하게 더 따뜻하게 해가고 싶고...그러다 물끄러미 바라본 나이테는 내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었다. 나도 나무처럼 꿈꾸지 않고도 나이테를 가질 수는 없을까.
그 마음을 되새기며 달력을 그린다. 내 그림 솜씨가 얼마나 서툰가. 그래도 그냥 한번 그려보겠다는 마음으로 덤빈다. 나이테를 연습 삼아 밑그림으로 그리다 보니 나무마다도 나이테가 참 다르다. 이 나무는 아카시다. 소나무는 껍질이 아주 얇다. 나이테도 참 신비로울 정도로 다 다르다.
이걸 그림으로 그린다는 게 참 어렵다. 마음먹은 느낌을 표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그나마 내 곁에는 탱이가 있어 도움말을 듣곤 한다.
“그림은 되도록 크게 그리는 게 좋아요. 나이테를 그릴 때 선을 끊지 말고 죽 이어서 하세요.”
“테두리 선을 좀 진하게 해 봐요. 그리고 너무 매끄럽기보다 약간 굴곡지게”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그림이 나아지는 걸 느낀다.
어찌어찌 나이테를 완성하고는 빈 여백과 날짜를 채우는 일이 남았다. 짧은 시를 넣어, 그림과 어울렸으면 좋을 텐데. 내 느낌만 강했지 충분히 글로 표현이 안 되는 거 같다.
<나이테>
앞날을 꿈꾸지 않아도
자란다. 나무는
해마다
다 다른
나이테를 그리며
나름 만족을 해야지. 그 다음, 기념일을 넣는 일이다. 달력에다가 생일이라고만 하기에는 심심했다. 먼저 1월 14일이 아내 생일. 정면보다는 옆모습을 연습장에 간단히 스케치했다. 이 역시 어렵다. 두어 번 해 보고서야 조금 닮았다. 그러다 다시 이를 달력에 옮겨 그리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것은 아이들 얼굴이다. 사진을 보고 스케치를 하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실제 모습만큼 예쁘지 않다. 절망스럽다. 다섯 번 정도 스케치를 해보았지만 안 된다. 그래서 되도록 누구 얼굴인지 표가 안 나면 좋겠다는 기분으로 간단히 테두리만 그리는 걸로 끝내기로 했다. 이 달력에 이 그림이 누구이며, 이 날이 그 사람 생일이라는 건 아는 사람만 알 테니까.
날짜를 다 그려 넣고는 이제 보름과 그믐을 표시하는 것. 먼저 보름달은 환하니까 날짜에다 노랗게 칠을 했다. 그믐은 어둡기에 남색으로. 나이테는 콩테로 그리고, 날짜는 연필 파스텔로 했다. 이 역시 탱이가 추천한 것들이다.
내가 일년 계속 해서 달력을 그려낸다는 보장은 없다. 그냥 이번에는 떠오른 게 있어 한번 해 본 것뿐이다. 뿌듯하다. 다음 달도 뭔가 영감이 떠오르면 좋겠다. 그런 게 없으면 마는 거지. 즐겁자고 그리는 거 아니겠나.
'자급자족 > 노래 그림 중독, 삶의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3 아르페지오 주법_1 (0) | 2011.01.23 |
---|---|
[스크랩] 27 손톱으로 스트로크하기 (0) | 2011.01.23 |
[스크랩] <똥을 따라 가라> 시와 악보와 연주 (0) | 2010.10.12 |
아내가 그리는 달력 (0) | 2010.06.04 |
오랜 만에 대보름 놀이 (0) | 2009.02.09 |